▲아버지의 비자금을 후원받아 뽑은 선거 팸플릿.
배성민
어버이의 날 전날인 7일 오후에 어머니로부터 문자가 왔다.
어머니: "아들, 내일이 어버이의 날인데 집에 안 오냐?"나: "가긴 가야 하는데 내일은 일이 있어서 못 갈 것 같은데."어머니: "네가 무슨 홍길동이냐! 빨리 집에 와라!"나: "그럼 오늘 밤늦게 갔다가 내일 오후에 학교 수업 가야 하는데 괜찮아?"어머니: "그래 얼굴이나 보자! 빨리 와!"나: "카네이션이나 선물 사줄까?"어머니: "네가 무슨 돈이 있냐. 그냥 얼굴이나 보자. 사지 마라!"엄마와 문자를 하면서야 나는 어버이의 날이 내일인지 알게 되었다. 자취를 해서 밖에 나와 사니 부모님을 찾아뵙기가 쉽지 않다. 정규 학교 수업, 동아리 활동, 각종 세미나, 사회참여 등의 활동을 하다 보면 부모님을 만나러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못하고 살 때가 많았다.
"네 얼굴이 우리에게는 선물이야"이번에도 생각하지도 못한 어버이날이 다가와서 빈손으로 집에 가게 됐다. 카네이션이라도 부모님 가슴에 달아드리고 싶었지만 꽃은 시들면 버려야 하니 돈 아깝다고 어머니가 신신당부를 하셔서 살 수 없었다.
어머니: "너 선물 안 사도 된다고 해서 정말 안 샀구나? 꽃이라도 사오지 그랬어?"나: "꽃은 시들어서 절대 사오지 말라며? 지난번 생일 선물 때 좋은 속옷 사줬잖아. 이번에 한번 봐주세요."아버지: "아들은 몸만 와도 좋아. 얼굴이라도 이렇게 비추고 술 한잔 같이 하는 게 선물 아니겠어?"어머니: "그래. 선물보다 네가 이렇게 집에 와서 우리랑 함께 술을 자주 마셨으면 좋겠다. 학생운동한다고 바쁜 건 알겠는데 우리 가정을 올바르게 세우지 못한다면 세상도 올바르게 못 바꿀 걸?"나: "엄마도 참…. 집에 자주 올게." 매번 '학생운동'을 한다는 핑계로 집에 오라는 부모님의 말에 못 간다고 대답을 한다. 그리고 바쁘지 않을 때 집에 꼭 간다고 대답하고서는 1-2개월은 집에 못 갈 때가 많다. 내 딴에는 바쁘다고 지난 24년 동안 매일 같이 봐왔던 부모님과의 만남을 차일피일 미룬다. 부모님께서는 24년간 잘 키웠더니 아들이 집안일을 등한시한다며 매번 섭섭한 마음을 감추지 않으셨다.
"아들, 꼭 학생회장 되라!"
대학에는 매 11월(혹은 3월) 학생회 선거가 있다. 2007년 11월 나는 인문대 학생회 회장후보로 출마했다. 단과대학 선거에 나가기 위해서는 폭 넓은 인맥뿐만 아니라 선거운동을 할 돈이 필요했다. 하지만 주위에 아는 사람은 전부 학생이기 때문에 선거운동비를 마련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집에 찾아가 매달 10만 원씩 받고 있는 용돈을 한 달만 당겨 쓸 수 있도록 부모님께 부탁드렸다.
나: "이번에 학생회 선거 한다고 돈이 많이 드는데 다음 달 용돈을 미리 당겨 쓸 수 있게 해주세요."어머니: "이번 달 지출은 엄마가 다 계획을 잡고 쓴 상태라서 남은 돈이 없는데 어쩌지. 이렇게 갑자기 불쑥 찾아와서 이야기하면 돈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줄 아냐?"아버지: "허허, 아들이 학생회장으로 출마한다는데 호통만 치지 말고 돈을 마련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 보자. 이런 일을 대비해서 아빠가 돈을 좀 모아두었지. 비자금이라고 알지? 이 돈 뽑아서 아빠가 지원해줄게. 10만 원 가지고 되겠냐. 100만 원 가져가서 도와주는 친구들 밥도 사줘라."나: "와우! 아빠 최고! 다음에 꼭 갚을게요."어머니: "너 학교 졸업하고 돈 벌면 엄마 용돈 꼭 줘야 해! 약속해? 그리고 꼭 당선되라!"나: "당연하지!""아빠에게는 비밀로 해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