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금 받고 그만두는 게 여성 탓인가?

[주장] '육아휴직 급여, 복귀 후 지급'이라니... 답답하네

등록 2009.05.15 21:34수정 2009.05.15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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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에 대해 깊게 고민해 본 것은 임산부가 되고나서다. 임산부가 되기 전엔 그저, 사회적 약자인 여성으로서 정책을 수용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출산을 앞둔 내게 곧 들이닥친 '육아'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심각하게 고려되어야 함에도 국가가 극단적으로 방임하고 있는 사안인 듯하다. 

며칠 전 '육아휴직 급여'를 직장에 복귀하면 준다는 기사는 또 하나의 절망감을 안겨주었다. 신문기사에 따르면, 정부는 여성 노동자의 직장 복귀를 촉진한다는 명분으로 육아휴직급여의 일정 부분을 떼어 직장 복귀 후 지급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라고 한다.

국민을 위한다는 정책들이 오히려 독이 되어 사회를, 가정의 안위를 좀 먹는다는 사실이 이제는 너무도 팽배한 진실이어서 더 이상 새롭게 다가오지도 않는다. 현재 육아휴직급여는 12개월 동안 매월 50만원씩 지급되는 방식이다.

육아휴직 급여, 복귀 후 지급... 말이 되나

왜 육아휴직 급여를 복귀 후 준다는 게 문제가 될까. 사실상 출산 후 수많은 여성들은 권고사직을 당한다. 출산 후 여성은 최소 6주~8주의 산욕기를 거쳐서 산후조리를 하게 되고, 그 이후 직장으로 복귀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는 갈림길에 놓이게 된다.

그런데 이것이 자의적인 결정으로만 가능한 일인지 의문이다. "여성들이 육아휴직 급여를 받고 직장 복귀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 총리실 관계자의 말과 "육아휴직을 끝내고 바로 그만두는 여성 근로자의 비율이 23%에 이른다"는 노동부 여성고용과 관계자의 말은 현실적으로 출산 이후 여성들에게 복직 기회를 주는 기업은 지극히 소수라는 사실을 외면한 채, 모두 여성들이 자의적으로 회사를 그만두는 것으로 해석하는 정책적 꼼수를 보여주고 있다.

출산 후 여성이 사실상 권고사직을 당하는 폭력이 비일비재하고 그것에 저항할 수 없는 게 또 우리 현실이다. 여성들은 이를 무력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일방적 폭력을 폭력으로 인정하지 않고 굳어져 버린 국가의 타성이다.


출산한 많은 직장맘들은 본인 대신 육아를 담당해줄 대상을 찾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른다. 내 아이를 가장 믿고 맡길 수 있는 탁아소를 찾았다고 하더라도 고액의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또 시댁, 친정에 아이를 떠맡기고 생이별을 하고 있는 여성들의 현실은 너무도 비근하다.

제대로 모유를 수유하지도 못하고 자신도 산후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직장을 찾아야 하는 경우, 한 가족이 겪는 고통이 사회적 문제로 번질 수 있다는 사실에 국가는, 정부는 깊은 성찰을 해야한다.


여성의 힘은 국가의 미래

육아휴직 급여가 정작 필요한 시기는 돈을 벌지 못하고 있는 때이다. 출산 전후에는 최소한의 생활비 보장이 필요하다. 육아휴직 급여가 50만원임을 상기할 때 이 액수를 떼어내어 복귀를 권장할 수 있다는 논리는, 신체적·경제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시기를 유기하는 발상이다.

물론 기타 개인적인 사정으로 같은 회사로 복귀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개인별로 상이한 사정으로 육아휴직 기간 1년을 넘길 수도 있고, 같은 회사로 복귀를 못하거나 이직을 시도하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정부는 육아휴직 급여의 대상과 기간을 확장 적용하는 현실적 정책을 제공해야 한다. 비정규직의 기혼여성들에게도 최소한의 생계유지를 위한 육아휴직 급여를 제공해야 한다. 육아휴직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그나마 행복한 것이다. 고용보험을 가입하지 않고 비정규직,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는 경우는 언감생심 그런 생각을 품을 수조차 없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국민들이 복지혜택의 사각지대인 비정규직으로서 자리하고 있는 현실속에서 특히 기혼 여성들에게는 그것이 얼마나 제한적인가. 복지는 가장 어려운 환경에 처한 대상에게 절실한 것이다.

육아휴직 기간을 늘려야 한다. 한국 여성 공무원의 경우 육아휴직을 3년까지 쓰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사실상 아이를 기르는 일이 1년으로 가능한가. 신생아의 정서는 생후 3년이 되면 성인에게서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정서가 발달된다고 한다.

그래서 엄마와 아기가 친밀감을 유지해야 하는 최소한의 기간을 3년으로 보고 있다. 이것은 반드시 사회가 안아야 할 인식의 문제이다. 그 기준과 수준에 대해서는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한 것이겠지만 이런 인식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육아휴직급여를 복직 이후에 지급하겠다는 정책은 출산장려정책에 역주행하는 정책이다. 현실적 육아문제에 외눈박이 시선으로 정책 제안을 하는 정부의 몰이해와 껍데기 정책에 신물난다.

제발 삶의 원형을 회복하는 기본적 복지정책을 내놓기를 바란다. 또 여성의 고용이 촉진 되지 않는 정책은 성장을 수반할 수 없다고 확신한다. 질적으로 우수한 교육을 받은 여성들의 고용을 포기하는 정책에 국가의 미래를 긍정할 수 있겠는가?

아이에게 젖 물리지 못하는 속사정에 관심을

곧 내게도 육아휴직 이후의 현실을 수습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나와 같은 현실을 다른 여성들은 어떻게 극복하고 있는지를 인터넷에서 찾아보다가 장 지글러의 <탐욕의 시대>의 일부를 발견하고 인용한다.

브라질 북부 판자촌에 사는 주부들은 저녁이면 냄비에 돌을 넣고 물을 끓이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있다. 어머니들은 배가 고파서 보채는 아이들에게 "조금만 기다리면 밥이 될 거다"라고 말하면서, 아이들이 기다리다가 그냥 잠이 들기를 바라는 것이다. 배고픔에 시달리는 자식들을 보면서도 그 아이들을 배불리 먹이지 못하는 어미가 느끼는 수치심을 감히 무엇으로 가늠할 수 있겠는가? (<탐욕의 시대> 10쪽)

기아에 허덕이는 브라질의 현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면서도 이 글속에 비친 어미가 갖게 되는 자식에 대한 고통은 우리가 아이에게 모유를 주지 못하는 우리네 속사정을 떠올리게 한다.

생계를 이어가기 위한, 아이를 양육해야 하는 본능적, 당위적 현실을 떠안고 있는 우리들에게 정작 필요한 정책이 인권이란 이름으로 시행되는 일은 요원한 것인가? 이런 문제에 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단체들은 이런 문제들을 거대 담론화하고 부당한 정책에 저항하는 실천적 연대를 통해 현실을 바로잡을 수 있기를 바란다.

나아가 우리 모두 삶의 원형을 회복하는 진정성을 가진 정책 대열에 자발적으로 움직일 수 있기를 희망한다.
#육아휴직급여 #여성 직장복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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