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황석영씨
권우성
하지만 황석영이 보여온 언행에도 석연치 않은 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20여 년 전에 자기가 쓰지도 않은 <어둠의 자식들>이라는 수기 소설에 자신의 이름을 달아 베스트셀러로 만든 적이 있다는 비판을 받은 적이 있었다.(이후 <어둠의 자식들>은 원래 작가 이철용의 이름으로 다시 발간되었다.) 또한 1980년 당시 광주를 증언했다는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도 그가 쓴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당시 나는 그가 '광주'를 가지고 장사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나는 더 이상 진상을 알아보지 않았다. 왜냐 하면 좋은 작가를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2007년 2월 8일, 황석영의 '개똥폼 잡지 말고 현실의 저잣거리로 내려오라!'를 보고, 황씨의 말을 직접 들었다는 후배 시인 이승철(당시 민족문학작가협회 이사)이 <오마이뉴스>에 아래와 같은 반박글을 기고했다.
나는 진보진영의 대표적 작가로 일컬어지는 황씨가 보수언론사 대표들을 만났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황씨가 몇년 전 '동인문학상' 문제를 둘러싸고 <조선> 보도 태도에 반기를 든 칼럼을 써서 '안티조선' 작가로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 사실이 불현듯 떠올랐다. 이후 그가 <조선>과 화해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명망높은 작가라고 해도 조중동 3개 언론사 사주를 잇따라 회동했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무슨 일로 만났는지 묻자 황씨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중앙일보> 사주를 만났고, 얼마 전 <조선> <동아> 사주도 만났지. 한국문학의 발전, 아니 세계문학의 부흥을 위해 큰 그림을 한번 그려보라고 권유했지. 예컨대 노벨문학상 상금이 현재 100만달러인데, 당신들이 나서서 300만 달러의 상금을 주면 세계 최고의 문학상을 만들 수 있는 것 아니냐. 그래서 프랑스의 르 끌레지오 같은 작가를 제1회 수상자로 하고, 나를 2회 수상자로 한다면 노벨문학상에 필적하는 세계 최고의 문학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냐고 권했지. 그러면서 나는 <조선> 사주에게 내가 이름 팔 일이 생기면 이제 글을 써주겠다고 했어." '안티조선' 작가로 세간에 알려진 황씨가 <조선>에 자청해서 기고문을 쓰겠다는 말에 나는 귀가 번쩍 열렸다. 그렇다면 작가로서의 그의 용기에 박수를 친 사람들에게 어떻게 변명할 것인가. - 이승철 시인의 "작가 황석영은 진실의 광장으로 나와라!" 중에서나는 이런 말이 사실이 아니기를 정녕 바랐다.
'광주가 나'라고? 민주화 이후 가장 황당한 말최근 그는 이명박 대통령을 수행해 카자흐스탄에 갔다 왔다. 그는 이 대통령이 중도 실용주의자라고 말했다. 나는 그가 냉전으로 인한 남북 대치 국면의 '중도'와 지금 보수 정당 체제의 '중도'를 혼동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말하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여전히 '아까운 작가' 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파문이 확산되자 <한겨레> 지면을 이용해 자기변명을 시도했다. 그런데 긴 인터뷰 기사에서 내 눈에 띈 것은 단 두 가지뿐이었다. 그는 14일 귀국한 날 걱정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아 수면제를 먹고 잠들었다고 했고, 자기 부인의 말을 빌려 세상일에 모두 간섭하고 다니는 자기를 은근히 변명했다. 하지만 나는 그에 대한 비판을 여전히 유보하기로 했다. 왜냐하면 그는 과거에 매력 있는 작가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17일 운전 도중 MBC 라디오를 듣다가 나는 깊이 놀라고 말았다.
"내가 광주 중심에서 뼈를 깎은, 그걸 다 겪은 사람이다. 광주가 나고, 나의 문학이다."황석영은 분명히 '광주가 나'라고 말하고 있었다. 아니 '광주가 나'라니,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그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망언이었다. 그것은 민주화 이후 내가 들어본 말 중에서 가장 황당한 말이었다. 나는 '짐이 곧 국가'라고 한 프랑스 절대왕정의 군주가 떠올랐다. 광주는 이 나라의 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용어이다. 결국 황석영은 '민주화운동이 곧 나'라고 말하는 것이나 진배없이 들렸다.
그러고 보니 다음 날이 바로 5월 18일이었다. 황씨는 '민주화운동'이라는 녹슨 훈장을 이용해먹고 있었다. 그것도 한껏 부풀려서 써먹고 있는 것이었다.
황석영은 18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제가 이명박 정부를 중도실용이라고 한 것은 이 정부가 말 그대로 중도실용을 구현하기를 바라는 강력한 소망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 순간 그의 소설 <장길산>을 읽고 김일성 주석이 했다는 말이 떠올랐다.
"동무는 어찌 그리 말재간이 좋소?"나는 이명박 정부의 특임대사로 내정되었다는 황석영을 성의 있게 비난하고 싶지도 않다. 그저 단순하고 무식하게 비난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그가 일전에 조정래와 고은에게 했던 말을 조금 각색하여 되돌려주기로 했다.
"황석영이여! 개똥폼 잡지 말고 광주에서 내려오라." 덧붙이는 글 | 필자 김갑수는 소설가로서 오마이뉴스에 <전쟁과 사람>을 연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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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개똥폼' 잡지 말고 광주에서 내려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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