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순간 속으로 "정치는 폭력"이라고 자문자답을 했다. 참 엉뚱 맞은 사색이다. 이 순간에 왜 "정치는 폭력"이라고 자문자답을 하는가 말이다. 그리고 스스로 확인한다. 그래 맞아! 정치는 폭력의 다른 말이다. 우리가 아는 정치인 레닌은 정치인인가? 사상가인가? 아니면 폭력적인 인간인가? 나는 아직 그를 잘 알지 못한다. 흔히 아는 보통사람들보다 더 모르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그의 폭력보다 더한 무시무시했던 짜르의 공포정치를......, 왜? 세계의 사람들 그리고 현재의 우리들은 그 광포한 정치를 이겨내고 새로운 역사를 썼던 레닌은 기억하지 못하는가? 아니 외면하는 것인가? 정치는 폭력이라면 그도 폭력을 행한 사람이 맞다. 다만 광폭한 전제군주에 맞선 폭력으로 그의 희생도 그의 동지들에 희생도 당대의 가치로 보아서는 아름다움이었을 것이다. 수많은 세월을 자본과 결탁한 전제군주의 공포정치의 통제 속에서 살아야했던 소비에트연방의 국민들은 그를 왜 영웅으로 맞이하였던가 말이다. 그리고 그는 아직도 버젓이(?) 이 나라 도시의 중심에 건재한 기상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는가?
나는 많은 것을 모른다. 허나 보이는 것을 볼 시력 좋은 눈은 갖고 있다. 육신이 건강하다는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질문을 던져보게 된다. 마음속으로 확인해본다. "그는 문화와 예술을 심어 놓은 사람이구나. 저 사회주의 리더 레닌이 어찌 폭력주의자이겠는가?" 물론 난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았다. 반대자들에게 정치적으로 가혹한 폭력을 행사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내가 지금 보는 것은 그가 이루어놓은 과거다. 그것이 아름답게 이 도시의 중심에 명맥이 되어 있다. 현재의 것은 지난 과거의 것을 누리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을 누리는 사람들은 모두다. 이런 나라에서 이것을 누리는 사람들은 바로 서민과 모든 국민들이다. 그리고 수도 키예프의 혼란스러움은 없다. 정치는 없고 문화 예술의 가치가 인정되는 곳이다. 달리말해 평화와 사랑이 넘치는 문화 예술의 거리를 나는 걷고 있는 것이다.
어제는 한국종합예술학교의 황지우 총장의 사퇴 기자회견문을 보았다. 광주에서 비무장 시위대에 전제군주 '짜르'처럼 광포한 무장을 휘둘렀던 군인들이 있었다. 그처럼 문화판에서 까지 정치가 갖는 폭력성은 다시 어김없이 되살아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씁쓸한 슬픔이 가슴 언저리에 스며들었다. 비무장한 문화에 잘 조직된 국가의 정치폭력이 밀어닥치는구나! 내가 보는 바로 그런 폭력은 후진권력의 세계에서나 보는 것이다. 힘을 가진 절대권력자의 비무장한 문화조직에 대한 실력행사 혹은 폭력을 행하는 것은 얼마나 비겁한 짓인가? 다시 말해 비겁한 권력이 되는 것이다. 굳이 말하자면 60만 대군과 수만의 경찰과 검찰과 법원 등 이루 말로 다 못할 권력을 가진 정치집단이 적어도 문화 부문 만이라도 좀 너그럽고 여유있는 시선으로 볼 줄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물론 그런 기대하는 것도 정신나간 일인지 모르겠다. 이제 알만큼 안 권력이기 때문이다. 포털의 뉴스에서는 국가경쟁력이 30위권에서 20위권으로 진입했다고 한다. 그러나 진정한 경쟁력은 선전하는 경쟁력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느끼는 자긍심 안에 있으리라. 우리 국민 중 지금 이 순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우리의 현재에 대해 자긍심을 느낄 수 있을까?
나는 생각한다. 국가경쟁력이란 외부로 비춰지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자신을 인정하는 데 있다고 믿는다. 스스로가 우리는 안 돼! 우리는 어려워! 그런 가운데 선전되는 경쟁력은 무의미하다. 그렇다면 우리의 상황은 심히 우려되는 상황이다. 정말로 경쟁력이 있는 나라에서는 우리나라에서 행해지는 국가의 조직폭력은 없다. 나는 믿는다. 국가의 권력이 약자인 국민을 상대로 "네가 치니까? 나도 친다. 그러니 입 다물고 날 따르라!" 전제 군주 짜르의 통치 방식 그리고 전두환과 박정희의 절대 권력이 행했던 것과 뭐가 다른가? 이곳에도 경제난이 있고 수도 키예프에서 간헐적 시위도 있다. 그러나 사회주의 국가의 기틀 속에 자본주의 세계로 빠른 속도로 진입하려는 정치인들과 달리 이곳 사람들은 평화롭고 국가의 조직폭력에서 해방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나는 다시 생각한다. 뿌쉬킨의 말을 믿고 따르자. 그의 노래를 다시 부르자. 지금 생각하면 앞 뒤로 큰 의미를 담은 이발소 시(詩)였던 느낌이 든다. 70년대였다. 그리고 80년대까지 우리네 생활에 함께했던 뿌쉬킨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결코,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어쩌면 이도 그들이 국민을 훈육하겠다는 의도로 퍼뜨린 하나의 바이러스가 아니었나? 나는 지금 뿌쉬킨의 거리에서 뿌쉬킨에게 미안한 사색을 하고 있다. '삶이 죽겠는 사람들이 그 말에 의지하여 슬퍼해서도 노해서도 안 된다고 교육받고 있는 현실'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해피수원뉴스에도 게재 됩니다.
2009.05.21 10:18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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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사람의 사막에서" 이후 세권의 시집, 2007년<히말라야,안나푸르나를 걷다>, 네팔어린이동화<무나마단의 하늘>, <길 위의 순례자>출간, 전도서출판 문화발전소대표, 격월간시와혁명발행인, 대자보편집위원 현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 홈페이지sisarang.com, nekonews.com운영자, 전우크라이나 예빠토리야한글학교교사, 현재 네팔한국문화센타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