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당신으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는 고통이 너무 크다'고 하셨습니다. 왜 당신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사람들이 받는 희망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습니까. 왜 당신으로 말미암아 이 나라 민초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용기에 대해서는 모른 체 하십니까. 당신은 짐짓 이런 것도 헤아릴 줄 모르는 바보란 말입니까.
비록 말씀은 안하셨지만, 사람들은 당신으로 말미암은 고통은 고통이 아니라 이 나라를 바로세우기 위한 진통이라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런 시대적 고뇌에 함께 할 수 있다면 자랑스럽고 흐뭇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만 죽음을 거두고 일어나십시오. 정녕 되돌릴 수 없는 길로 들어서셨다면 가시는 길 편안히 가십시오.
무엇이 촌로로 살아가겠다는 소박한 꿈마저 죽음으로 마감하게 했습니까. 우리나라는 한번 표적이 되면 무엇으로도 보호받지 못해 끝내 살아남지 못하는 사회란 말입니까. 기득권 유지를 위해서라면 어떤 치졸함이라도 마다하지 않는 파렴치 권력사회입니까.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라는 당신의 마지막 말씀처럼 종교적 초탈로 억울함과 분노를 삼켜야만 합니까.
21세기 첫 대통령에 대한 과도한 기대
사람 사는 세상이기에 지도자를 필요로 합니다. 한반도에 사람들이 무리지어 살기 시작한 이래로 지도자는 늘 있어 왔습니다. 역사 속의 그 수많은 지도자들 가운데 마음으로 기릴 수 있는 분들이 과연 얼마나 될지 누구나 한번쯤은 품어 봤던 아쉬움일 것입니다. 그런 빈곤 속에서 당신 노무현은 확실히 걸출했습니다.
지난 2002년 12월 당신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직후 저는 어느 신문 기고문에서 외람스러운 주문을 했습니다. 그 때 저는 당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낸 국민운동은 일종의 변화를 향한 혁명 같은 것이며, 당신의 대통령 당선으로 그런 변화의 혁명이 시작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당신에게 무례하게도 '3·1운동 당시 민족지도자들처럼, 백범 김구처럼, 아니 민중을 이끌고 외세와 봉건지배층에 맞선 전봉준 같은 구실을 기대'한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국민들은 녹두장군 전봉준처럼 시대를 앞서가면서 질곡을 타파하려는 예지, 역사적 과제를 회피하지 않고 정직하게 도전하는 원칙, 역사를 위해 삶도 포기할 수 있는 희생정신을 원했습니다.
21세기 첫 대통령이 되신 당신에게 국민들은 좀 과도한 기대를 했던 것을 당신은 이해하셨을 것입니다. 국민들은 21세기가 지난 20세기와 다르길 바랐습니다. 식민지 침탈, 민족분단, 동족상잔의 참혹한 전쟁 그리고 연이어지는 독재, 부패하면서 무능하기조차 한 정치권 등 절망의 나락에서 벗어나길 원했습니다. 그런 과제들은 일순간에 해결될 수 없기 때문에 과도한 기대가 다소 부담이 되었을 것이라 짐작합니다.
국민들과 마찬가지로 그런 기대를 했던 저 또한 지난 5년간의 치적에 대해 만점으로 평가하지는 못했습니다. 때로는 솔직히 실망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당신 혼자 책임질 일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치라는 것이 어찌 한사람 지도자만의 힘으로 좌우되는 일이겠습니까.
당신은 시대의 요구를 앞서 듣고 탈출로를 짚어 주었다
그러나 당신은 시대의 요구를 앞서 들었고 국민이 무엇을 바랄 것인지 미리 파악했습니다. 때로는 성급한 심정에 성큼 앞서다가 뒤따르지 못한 국민을 놓치는 일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천지사방 갇혀있는 동굴 속의 우리들에게 동굴 밖의 세상을 내다 볼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비록 둘러싸고 있는 장벽을 걷어내고 유폐로부터 해방되지는 못했습니다만 탈출로를 짚어 주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당신은 지금까지의 어떤 정치인들보다 뛰어난 업적을 남기신 것입니다. 지난 5년간의 상황을 되돌아본다면 어떤 지도자도 그 이상의 업적을 이룩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당신으로 인해 역사의 뒷전으로 밀려나게 된 세력들의 반발은 무섭습니다. 다시 장벽을 돋우고 열린 틈을 닦달하고 칼집의 칼을 꺼내 갈고 있습니다. 광풍의 먹구름으로 짙게 내리는 어둠속에서 길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이미 당신은 누구보다 이를 안타까워했습니다. 또 투항을 강요당했습니다. 당신이 투항한다면 저들의 잃어버린 10년은 몇 곱절로 보상받을 것이라는 얄팍한 속셈이겠지요.
이런 치졸한 상황을 돌파할 방도가 당신의 육신을 던지는 희생 말고는 달리 없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무튼 저는 당신의 선택에 동의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당신의 죽음 이후에 한 사람의 힘이 아니 노무현의 감각적인 예지가 얼마나 위대한 가를 다시 확인합니다. 이제 당신의 희생으로 희망의 문이 열리고 그 틈새로 밀려오는 신선한 바람이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순간 저들을 이끌기 위해 다시금 당신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어쩌지요. 당신은 우리가 이제 스스로 헤쳐나갈 수 있을 것으로 믿기 때문인가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짤막한 인사만 남기고. 이미 떠나 버렸군요. 떠나보낸 가슴 휑한 아쉬움은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도록 큽니다.
이승의 짐은 벗고 하늘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십시오. 모두 함께 손 모아 명복을 빕니다.
2009.05.27 19:02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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