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오마이뉴스 이종호
"대통령 개인으로서는 (대체복무제도를) 수용해야 한다는 확실한 생각을 갖고 있는데, 군이나 국방부, 병무청은 나와는 생각이 다른 것 같다. 국방부 등의 입장이 최종적인 것이라면 내가 어떻게든 설득해보겠지만, 국방부 등이 아직 최종 입장을 내놓은 것은 아닌 것 같아 그냥 대통령 개인의 소신으로 두고 있다.국회의 논의과정을 지켜보면서 꼭 필요하다면 국방부 등을 설득하겠다. 그러나 당장은 국민적 논의가 중요한 것으로 보이니, 좀 두고 보면서 했으면 좋겠다. 어느 경우에나 국방력 약화나 군 복무자에게 박탈감을 주는 것은 아니었으면 한다. 정치적 결단은 좀 미루면서 군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적절한 타협점을 찾기 위해 같이 노력하도록 하자."
2005년 청와대에서 열린 '국방부 병영문화 개선대책 위원회'의 대통령 보고 자리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서 언급한 내용이다.
이후 국방부는 2007년 9월 병역거부자들에게 대체복무제를 허용해주겠다는 '역사적'인 발표를 하게 된다. 청와대의 의지가 강력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그랬을 것이다. 그랬기에 정권이 바뀌자마자 국방부는 이 일에서 손을 뗐다. 2008년 12월 24일 국방부는 여론조사를 근거로 대체복무제 도입을 무기한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언론은 이를 '백지화'이라고 표현했다.
필요하다면 국방부를 설득하겠다노무현 정권과 대통령 노무현에 대한 평가는 다양할 수 있다. 평화운동을 하는 내 입장에선 이라크 파병 이후 노무현 정권에 대한 시선이 좋을 수가 없었다. 특히 이라크에서 피랍된 김선일씨가 사망했을 때에는 "전범 노무현"이라고, 아니 그보다 훨씬 심한 표현도 써가면서 그를 비판했다.
그럼에도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에 있어서 노무현 대통령의 결단은 분명히 평가받아야 할 지점이다. 이 문제의 민감성과 대통령이라는 위치로 인해 온전하게 부각되지는 못했지만, 그는 광복 이후부터 60년 넘게 이어진 병역거부자들의 처참한 감옥행을 종결하고자 노력했던 유일한 대통령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인권 대통령이라고 불렸던 김대중 대통령은 이 사안을 양심적 병역"기피"라고 지칭하며 해결의 실마리를 잡지 못했었다. 그러나 앞선 발언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노무현 대통령은 이 문제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으며, 평소 스타일대로 뚜렷한 입장을 밝혔다.
"꼭 필요하다면 국방부 등을 설득하겠다."
한국 사회에서 병역거부만큼 오해와 왜곡이 많은 사안이 또 있을까? 국제사회에서는 한 나라의 인권수준을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이지만, 군사주의적인 한국사회에서는 여기저기서 뭇매 맞기 십상인 병역거부문제에 대해서 노무현 대통령이 보인 단호한 모습.
이 모습이 채 평가받기도 전에 그는 누구도 원망하지 말라며 떠났다. 진정 이렇게 보내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운 사람이다.
빨갱이보다 못했던 병역거부자한 사회의 인권은 그 사회의 가장 바닥에 있는 사람들 보면 된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한국사회에서 병역거부자들의 위치가 가장 멸시받았던 '빨갱이'만도 못했다고 평가한다. 광복 이후 병역거부자들의 감옥행은 계속 이어졌지만, '빨갱이'라고 불렸던 비전향 장기수 문제가 해결된 이후인 2000년대에 들어서야 비로소 공론화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미 1만 명이 넘은 이들이 자신의 청춘을 감옥에서 보낸 이후였다.
병역거부자 중에서는 10년에 가까운 세월을 감옥에서도 보낸 이들도, 심지어 총을 잡으라는 구타에 목숨을 잃은 이들까지 있었지만 이들은 침묵 속에서 견뎌야만 했다. 여호와의 증인에 대한 사회적인 이단시, 군대와 병역이 신성화되어온 한국사회의 군사주의, 군대라는 공간의 특수성으로 인해서 이 문제는 인권사안으로조차 인식되지도 못했다. 1년에 수백 명의 젊은이들을 감옥에 보내면서 그것이 문제인 줄도 몰랐던 것이다.
2000년 이후 사회운동이 등장했고, 일부 개혁적 국회의원들이 이 문제에 주목했지만 한국사회의 강고한 군사주의를 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역시 국회가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상의 입법 권고를 하면서 이 문제를 본인들이 해결하지는 못하겠다고 선언했다. 주무부처인 국방부는 초지일관 불가방침을 반복할 뿐이었다. 또한 한국사회의 특수한 조건 속에서 '빨갱이만도 못한 병역거부자'의 인권은 그것을 옹호한다고 정권의 지지도가 상승하지도, 정치적 지지층을 결집시키지도 못하는 이슈였다.
그럼에도 노무현 정권은 결국 결단을 내렸다. 2007년 9월 18일 국방부가 발표한 '병역이행 소수자의 사회복무제 편입 추진 방안'. 이 발표 이후 또 다시 좌파정권, 빨갱이정권, 국가의 근본을 부정하는 정권이라는 비판이 이어졌지만, 인권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다. 95% 반대한다 하더라고 지켜져야 하는 것. 많은 이들의 눈물과 노력으로 이룬 성과이지만, 노무현 대통령이었기에 가능했음은 분명하다. 이제 일제 치하에서 할아버지가 감옥에 가고, 군사독재 정권에서 아버지가 감옥에 갔음에도, 민주화 정권 밑에서 아들까지 감옥에 가는 비극이 끝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노무현과 이명박, 병역거부야 말로 이 둘을 나누는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