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질꼬질 낡은 운동화. 러시아 바이칼 호수, 몽골, 카자흐스탄, 키르기즈스탄, 마다가스카르를 누빈 운동화는 마침내 우즈베키스탄에서 터진다.
솔지미디어
오랫동안 사막을 걸은 후유증은 어느 정도일까. 오른발 뒤쪽 굳은살은 메마른 논바닥처럼 갈라져 피가 배어나온다. 뒤꿈치엔 상처가 생겼고, 커다란 물집이 생겼다. 무엇보다 안면몰수증이 생겼다. 아무 집 평상에나 들어가 벌러덩 드러눕는다. 그러곤 곧장 잠을 자거나 주인에게 재워 달라 부탁한다.
글쓴이는 사막을 보기 위해 갔으나 가도 가도 끝없는 풍경에 마침내 분통을 터트린다.
"이놈의 얼간이 같은 사막은 도대체 언제 끝나나. 사막이 보고 싶어서 우즈벡 도보여행을 계획했건만, 이제는 이 사막 좀 그만 보았으면 좋겠다. 마약 같은 사막의 더위가 머릿속까지 텅 비게 만든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묵묵히 걷기만 했다." (136~137쪽)글쓴이는 거의 매일 술을 마신다. 맥주도 마시고 보드카도 마신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사람 사귀는 재주가 놀랍다. 도대체 말도 통하지 않는 이들과 어떻게 술을 마시고 잠을 청하고 잠을 잔단 말인가. 현지 회화 책자를 갖고 있다고 하지만 놀라울 뿐이다.
술을 마신 내용 중 압권은 1박2일로 벌인 술판. 글쓴이는 오후 6시경 술을 시작한 뒤 2차를 간다. 술은 맥주와 보드카. 새벽까지 마신 다음날 아침 8시경 눈을 뜨자마자 다시 술을 마신다. 점심 때 보드카로 2차를 한 뒤, 마친 시간은 오후 3시. 그러곤 뻗었단다.
술이 질릴 만도 한데 글쓴이에게 여행과 술은 한 몸이다. 고된 여행을 술의 힘으로 이겨낸 것인가. 아무래도 긴 머리카락의 힘으로 괴력을 발휘한 삼손처럼 글쓴이는 술로 괴력을 발휘한 게 아닌가 싶다.
그런 생활이 가능했던 것은 친절한 우즈베키스탄 사람들 덕분인 듯하다. 외국인, 특히 한국인에게 친절한 우즈베키스칸 사람들은 글쓴이에게 쉽게 방을 내주고 술과 밥을 대접한다. 대낮에 과일을 얻어먹은 것도 부지기수다. 아무래도 후한 인심에 목말라하는 사람들에게 우즈베키스탄이 신흥관광지로 떠오를 것 같다. 무엇보다 치안이 그렇게 훌륭하단다.
술 냄새 폴폴 풍기는 여행기지만 글쓴이가 나름대로 조사한 우즈베키스탄 이야기가 재밌다. 이 지역을 중심으로 중앙아시아를 호령한 티무르제국과 몽골제국, 치과가 공짜이고 여자는 술을 못 마시게 하는 우즈베키스탄 문화 등 낯설지만 매력 있는 나라가 생생하게 다가온다.
한국에서 6년을 일한 뒤 지역에서 부자로 떵떵거리며 사는 알리, 한국에서 일하고 싶어 초청장을 원하는 사람 등 코리안드림을 꿈꾸는 이들에게선 또 다른 한국을 엿보게 된다.
여행을 마치고 온 동안 한국에선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고 글쓴이는 털어놓았다. 롯데 자이언츠가 포스트시즌에 진출했고 최진실은 자살했다. 미국에서 시작한 금융위기 때문에 아이슬란드는 국가부도 위험에 처했고, 한국 경제는 휘청거렸다.
책을 다 읽고 글을 쓰는 지금 나도 많은 일을 겪고 있다. 전직 대통령과 택배노동자가 목숨을 끊었고, 화물연대는 총파업을 결의했다. 연예인 마약수사가 이뤄진 가운데, 가수 구준엽이 검찰 인권탄압 기자회견을 열었다.
키질쿰 사막은 지긋지긋하도록 조용하지만 이 땅은 시끄럽다. 글쓴이가 사막을 그리워하는 게 그 때문이 아닐까. 문득 사막이 그리워진다.
오래된 길, 우즈베키스탄을 걷다 - 실크로드 1200km 도보횡단기
김준희 글.사진,
솔지미디어,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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