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통섭하지 않으면 어려움 겪는 사회가 왔다"

[인터뷰] 이화여자대학교 에코과학부 최재천 석좌교수

등록 2009.06.06 13:17수정 2009.06.06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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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화여대 최재천 교수의 책 <통섭, 지식의 대통합>
이화여대 최재천 교수의 책 <통섭, 지식의 대통합>사이언스북스
'학문 간 융합', '통섭적 교육과정' 등 최근 사회 곳곳에서는 통섭이라는 단어를 쉽게 들어 볼 수 있다. 원래 '통섭'이란 성리학과 불교에서 이미 사용돼온 용어로 '큰 줄기를 잡다'라는 뜻으로 사용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통섭은 '큰 줄기를 잡다'라는 말보다 이화여자대학교 에코과학부 최재천 교수의 역서 <통섭, 지식의 대통합>이라는 책을 통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자연과학을 전공한 최 교수는 10여 권에 이르는 책을 출판하며 대중적인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또한, 호주제 폐지, 생태계 문제, 고령화 문제 등 사회적 화제가 되는 문제에도 거침없는 발언을 통해 현실참여형 학자로 불리기도 한다. 한국 통섭 학문의 대가인 최 교수를 지난 3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나봤다.

융합은 우리말 사전에 보면 '하나 이상이 녹아서 하나 됨'이라고 뜻풀이가 돼 있다. 이에 일부 사람들은 학문 간의 벽을 완전히 허물고 학문을 융합하면 통섭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최 교수는 심리학·진화생물학·컴퓨터과학·철학과 같은 학문이 통섭을 통해 인지과학이라는 학문이 태동한 것처럼 "통섭은 융합과 다르다. 통섭은 단순히 서로 다른 것이 하나로 합쳐지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며 "학문의 만남으로부터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분석체계와 설명체계가 만들어지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통섭은 단순한 학제간(inter-disciplinary) 연구의 수준을 넘고, 학문 간의 장벽을 충분히 낮춰 자유로운 교류가 일어나는 범학문적(trans-discilpinary) 접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학문 간의 통섭을 통해 인문학위기, 이공계 기피와 같은 학문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최 교수는 "학문의 위기는 다양한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며 "기존의 분과학문들이 개별적으로 좁고 깊게 파오던 노력이 상당부분 한계에 도달했다. 따라서 사회적 문제들은 거의 모두 한 학문분야가 해결하기에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통섭은 하면 좋은 정도가 아니라 하지 않으면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단계에 왔다"고 전했다.

"현실참여형 학자? 내가 하는 학문을 모르는 이상한 소리"


 이화여자대학교 에코과학부 최재천 교수
이화여자대학교 에코과학부 최재천 교수김형규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속담이 있듯이 최 교수의 어린 시절은 오늘날 통섭 학자가 된 그의 모습을 대변한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한 가지 일에 오랫동안 집중하기보다는 여러 가지 일을 벌이고 다녔다고 한다. 최 교수는 "부모님이 실속 없는 팔방미인이라고 부르기도 했다"며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최 교수는 학창시절 시인을 꿈꾸며 문과로의 진학을 결심했다. 하지만 최 교수의 담임선생님이 이과로 배정하여 그곳으로 진학하게 됐다. 이과로 진학한 최 교수는 고3이 돼서는 조각가를 꿈꾸기도 했다. 학창시절의 최 교수는 자연과학과는 거리가 먼 미래를 꿈꾸며 인문학적 사고를 키워왔던 것이다. 그는 "문과가 아닌 이과로 배정받은 것이 오늘날 나를 있게 한 것 같다"며 "만약 문과로 진학했다면 평범한 인생을 살고 있지 않았을까"라고 전했다.

대학에 진학한 후에도 최 교수는 전공인 자연과학만을 공부하기보다는 독서, 사진동아리 활동을 하고 여행을 다니며 전공뿐만 아니라 다양한 경험을 했다고 한다. 최 교수는 "서울대 사진동아리의 초대회장으로 일할 만큼 전공공부에만 얽매이지 않았다"고 했다.

학부를 졸업하고 미국의 대학원으로 진학하게 된 최 교수는 '사회생물학'이라는 학문을 접하게 됐다. 사회생물학이란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의 사회구성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최 교수는 사회생물학이라는 자연과학적 요소를 통해 호주제 폐지, 생태계 문제, 고령화 문제와 같은 인문학적 문제에 접근했다.

최 교수의 접근이 각종 언론사 기고문이나 강연회를 통해 사회적으로 화제가 되고 영향을 미치자, 언론에서는 최 교수를 현실참여형 학자로 불렀다. 이에 대해 그는 "나를 현실참여형 학자라고 부르는 것은 내가 하는 학문을 모르고 하는 이상한 소리"라며 "사회생물학이란 현실과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에 여성·생태계·고령화 문제 같은 연구가 곧 사회생물학의 연구"라고 사회생물학을 연구하면 자연스럽게 현실문제에 참여하게 된다고 전했다.

최 교수는 인문학적 요소인 사회과학적 현상을 자연과학적 요소와 연관 지어 학문 간의 통섭을 실현했다. 예를 들어 호주제 폐지문제를 사회과학적 요소로 접근하던 기존의 학자와는 달리 최 교수는 생물학적 근거를 들어 여성의 우수성을 주장하는 식이었다. 최 교수는 "언론 기고와 강연을 통해 나의 학문이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게 돼 기쁘다"며 "학문이 상아탑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실과도 관련돼 금상첨화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자기 우물을 확실하게 파라, 그래야 깊은 우물 팔 수 있다"

최 교수는 미국에서 교수생활을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 모교인 서울대에서 강의하다가 이화여대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우리 생물학계가 작은 생물학(분자생물학)에만 치우쳐 이것을 깨트리기 위해 옮겼다"며 "작은 생물학과 큰 생물학(생태 및 진화생물학)이 공존하며 쌍두마차 역할을 해야 생물학의 발전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화여대도 최 교수 영입을 위해 국내에서는 최초로 큰 생물학의 전공도입과 에코과학부를 신설할 정도로 노력을 기울였다. 최 교수는 대학에서 큰 생물학 전공의 도입을 보류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학교는 비주류인 큰 생물학 전공에 입학하는 학생이 있을지 걱정한다"며 또한 "큰 생물학 전공자가 졸업 후 취업을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려와는 달리 최 교수의 큰 생물학 도입은 이미 어느 정도의 성과를 보이고 있다. 에코과학부는 생태계의 보존을 통섭적으로 연구하는 전문가를 양성할 목적으로 설립됐다. 최 교수는 "최근 정부에서 발표한 '저탄소·녹색성장'을 위한 전문 인력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며 "에코과학부 졸업자들이 그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결코 여러 개의 우물을 파라고 하지 않았다. 자기 우물은 확실하게 파되 다른 우물이 어떻게, 무얼 위해 파헤쳐지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서로 남의 우물에 대해 충분히 알게 되면 우리 모두 함께 넓은 우물을 팔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야 결국 깊은 우물을 팔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경희대학교 학보사 <대학주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경희대학교 학보사 <대학주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최재천 #통섭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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