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서평] 후불제 민주주의 (유시민)

등록 2009.06.09 10:37수정 2009.06.09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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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에 어느 인터넷신문에서 유시민의 '후불제 민주주의' 광고를 보았다. 논리적인 정치인으로 인정(?)하는 사람이고, 후불제 민주주의라는 표현에 함축된 의미가 공감이 되어 관심이 있었으나, 늘 다른 책에 순위가 밀렸다.

노공(노 전 대통령을 필자가 부르는 말)의 서거 이후, 술자리이든, 어느 자리에서 정치이야기가 나올 때, 후불제 민주주의의 개념을, 단어 그대로 이야기하면서 속으로는 원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고민되기도 하였다. 그런 부채감을 안고 읽은 책이었다.

유시민의 후불제 민주주의를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그의 헌법에 대한 애정과 이해였다. 어쩌면 그것이 그를 '스스로 사회자유주의자'로 규정지을 수 있는 근거이자 방어막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후불제 민주주의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의 책에서 아쉬운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독후감'을 쓴다.

유시민의 후불제 민주주의는 다분히 MB정권하의 실태를 염두에 두고 쓴 것 같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MB정권의 문제를 민주주의 위기, 경제 위기(서민경제 위기), 남북 평화 위기라고 명쾌하게 표현했다. 후불제 민주주의는 그 중에서 민주주의 위기에 대해 쓴 것이다.

87년 최초의 여야 합의에 의한 헌법개정에 따른 현재의 헌법은 헌법의 정신, 국민의 기본권 신장과 권력의 견제와 균형을 통치구조의 원리로 담았다.(물론, 아직도 대통령의 권한 집중이 문제되고 있으나, 87년 이후 어느 정부도 강력한 자신의 정책기조를 실천하지 못했다는 측면에서는 역설적으로 사후적인 견제, 최종적인 국민에 의한 견제는 있었다.)

후불제 민주주의 1부는 헌법의 당위라는 제목하에 헌법이 추구하는 것과 규정된 것을 여러 항목에 걸쳐 쉽게 풀이하며, MB정권의 실태와 비교하고 있다. 여기에는 국회의원 및 보건복지부 장관으로서의 행정각료의 경험도 곳곳에 녹아 있어 글을 읽는 재미도 괜하다.


유시민은 헌법의 당위(當爲 ; sollen – 마땅히 어떠해야 하는 것 또는 해야 하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나는 대한민국이 '아직은' 민주공화국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아직 할부금을 다 치르지 않은 채 타고 다니는 승용차와 비슷하다. 우리는 아직 민주주의를 온전히 우리 것으로 만드는데 들어가는 비용을 다 치르지 않았다. 헌법 제 1조는 '존재(sein)'를 서술한 것이 아니라, '당위(sollen)'을 선언한 것일 뿐이다. 후불제 민주주의, 유시민, 59쪽]


나는 그의 후불제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과 그러한 인식 배경에 공감한다. 김대중과 노무현을 선택한 국민이 어찌 이명박을 뽑을 수 있을까, 그리고 선거로 뽑힌 권력이 어떻게 헌법정신과 헌법의 규범을 무시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아직도 희생 또는 값을 더 치르면서 민주주의를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그의 인식에는 공감을 한다. 또한, 행간중에 표현되지 않은 그의 울분과 분노를 본다.

그러나, 동시에 그와 이견(異見)이 있음을 숨길 수 없나니, 애초, 헌법은 논리적으로 당위규범인 것이다. 흔히 회사의 VISION은 지속적으로 추구하며 그 질과 양을(Qulaity & Qunatity)를 높일 수 있을 뿐이지,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어느 단계의 목표일 뿐이지, VISION이나 목적이 아닌 것이다. 그의 표현을 빌미로 비판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후불제라는 표현속에는 이미 민주주의의 완성이라는 사고가 전제되어 있지 않은가 한다. 심지어, 혹자가 말하는 잃어버린 10년 동안에 우리는 '과분한' 민주주의를 땡겨 쓴 것 같다는 느낌까지 들게 한다.

후불제 민주주의라는 말이 지난 10년의 공치사 수준을 넘는다면, 나는 MB정권을 잉태하고 만들어낸 지난10년간의 민주주의는 과연 무엇인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유시민이 말하듯이, 민주주의는 선의의 권력자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면, 동시에 악의의 권력자에 의해서도 좌우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즉, 지난 10년 역시 민주주의와 헌법정신을 구체화하기 위한 과정이었을 뿐, 민주주의의 완성이 아니었으며, 또한 국민들은 그 시대정신에 맞게 값을 치렀다고 본다.

거시적으로 본다면, 대한민국의 짧은 민주주의 역사에서 지난 10년과 현 MB정권은 대한민국 국민의 민주주의 역량을 강화하고 축적하고 반면 교사할 수 있는, 우리가 (선거를 통해) 선택한 역사의 단계이다. 마치 변증법적 발전 모습인 듯 한다. 민주주의는 결코 완성될 수 없는, 그러나 꾸준히 진보해야 하는 개념이며, 실체이며, 역사적 생활이 아니겠는가? 그곳에 어찌 부침이 없고, 반역과 저항이 없겠는가?

그의 기분은 이해하지만, 그의 책 행간의 의미에 대해 우려하는 것은, 그가 한국 사회 전체를 통합적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미시적인 측면에서의 분별을 거시적인 사고단계에까지 끌고 온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적을 명시하고 대립하는 전술을 넘어, 목적과 목표인 국민을 향한 통합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고, 상식적으로 사회 통합의 agenda는 애초 극소수인 그들의 것이 아닌, 국민 다수에게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국민 다수를 섬기고자 하는 자가 agenda를 가져야 한다.

국가 수준은(민주주의) 국민 평준 수준을 추월하지 못한다는 그의 인식에 공감하면서도, 방점은 소위 평균 이상이라는 사람들이,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 평균 수준을 어떻게 향상시킬 것인가에 있어야 한다고 본다. 또한 그것이 고인이 된 노공이 추구하는 시민 민주주의, 참여 민주주의 아니겠는가?

후불제 민주주의라는 훌륭한 이슈성 제목과는 달리, 1부 헌법의 당위는 일반인들에게 헌법 규범을 체계적으로 전달하기에는 미흡하며, 2부 권력의 실재는, 헌법의 당위와 대비되는 목차로서 부족한 듯 하다. 훌륭한 프롤로그만큼 그 내용이 따르지 못한 본문이다. 밤늦게 화장실에서 3시간에 걸쳐 쭈욱 읽어내린 책이지만, 감동(?)보다는 실망이 많았고, 아쉬움이 많았다. 그렇지만 지식'소매상'으로서 헌법 '에세이'임을 감안하고, 후불제 민주주의라는 용어의 저작권료를 주었다고 생각하면 그리 실패한 구매는 아니었다.

나는 차기 대선에서 그가 King이 될 것인지, Kingmaker가 될 것인지 모른다. 다만, 지금까지 유시민이 민주주의 역사의 정당성에 포함된 것 이래, 리더로서 미래의 가치를 보여준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미래 agenda를 제기하고, 자신의 꿈을 이야기할 수 있는 자만이 리더가 된다. 현실을 비판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미래의 당위를 이야기하고, 대한민국 국민에게 그 꿈을 설득하는 것, 그것이 통합의 리더쉽이 아닐까 한다.

나는 그가 지금까지의 신념과 실천정신을 그대로 견지하되, 거시적인 측면에서 통합의 리더쉽을 가지고, 국민들에게 비판의 목소리가 아닌, 꿈을 연설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덧붙이는 글 | - 후불제 민주주의 (유시민,돌베개,2009.03 출간)
- 제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http://blog.daum.net/minpoet


덧붙이는 글 - 후불제 민주주의 (유시민,돌베개,2009.03 출간)
- 제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http://blog.daum.net/minpoet
#후불제민주주의 #유시민 #사회통합 #통합리더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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