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09.06.09 11:33수정 2009.06.09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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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6일) 오랜만에 짬을 내 강화도로 자전거 방랑을 떠났었습니다. 일찍 집을 나서 김포 대곶면을 지날 때 우연히 길가에 하늘거리는 노란 물결이 눈에 띄어 바퀴를 멈추고 둘러보니, 참 오랜만에 보는 밀밭이 널찍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벼과의 한해살이 풀인 밀은 소맥이라고도 부르는데, 세계 곡물 생산량에서 옥수수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간 국내에서 유통된 대부분의 밀가루는 수입산인데, 우리밀을 되살리려는 농부들의 노력이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삭에는 대개 낟알이 30-50개가 맺히는데, 이것을 밀기울이라 합니다. 꽃이 핀지 약 30-60일이 지나면 날씨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무르익는데, 다 익은 낟알은 품종에 따라 흰색, 붉은색, 노란색, 파란색, 자주색 등 색깔이 다양합니다.
어렸을 적 동네에는 젖소농장이 많이 주변에 밀밭이 참 많았습니다. 밀가루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봄에 심은 파릇파릇하고 싱싱한 봄밀로 젖소들의 먹이를 주려고 말입니다.
강화도 북단 송해면 대산리 민통선의 작고 평화로운 마을과 논길을 지날 때도, 아담한 농가 앞에 솔바람에 춤추는 작은 보리밭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지자체나 농촌진흥청 등이 보리밭의 정취를 느껴보라고 공원 등 부지에 심어놓은 전시용 보리가 아니라, 농부들이 공들여 지난 가을 파종해 추운 겨울을 견디고 자라 탐스럽게 익은 보리밭이었습니다.
외떡잎식물 벼목 화본과의 두해살이풀인 보리는 옛부터 봄의 희망을 기대하는 농부가 늦가을에 파종해 매서운 추위 속에서 강인하게 생명력을 키운 싹이 모내기를 하기 전까지 푸르게 자라 누렇게 무르익어, 쌀이 떨어져 먹을거리가 부족했던 옛사람들에게 식량이 되어주던 고마운 작물이었습니다. 보릿고개(춘궁기)란 말은 다들 아실겁니다.
보리에는 겉보리와 쌀보리가 있는데, 쌀에 섞어서 쉽게 밥을 지을 수 있도록 가공한 것에 납작보리와 할맥이 있다 합니다. 보리밥은 특히 비타민 B가 쌀밥보다 많아 각기병 예방에 좋고, 섬유질이 많아 변비에도 좋습니다. 그래서 요즘 웰빙이다 뭐다 해서 보리밥을 찾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저희 가족들 특히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는 보리밥을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태어나 자라면서 하도 꽁보리밥만 먹어왔기에 보리를 넣은 밥은 거들떠도 보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보리는 힘겨운 삶 속에서도 묵묵히 땅을 지켜온 농부들의 순박함과 영원함 그리고 결실을 상징해 주기도 합니다.
1971년 출판된 한흑구님의 첫 수필집 <동해산문>에는 보리를 소재로 삼아 정직하게 살아가는 이 땅의 농부의 덕성과 노동의 가치를 예찬한 수필 <보리>가 있기도 합니다.
평생을 가난 속에 살면서도 심한 주벽을 버리지 못했지만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신앙심과 순수성을 잃지 않았던, 작곡가 윤용하님의 대표 가곡인 <보리밭>은 1951년 한국전쟁으로 피난온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박화목 시인과 술을 마시다 "살벌한 전쟁속에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가곡"을 만들자"며 의기투합해 3일만에 작곡했다 합니다.
강인한 생명력을 품은 보리처럼 우리들의 고단한 삶 속의 희망을 찾아 나선 길, 보리밭 사잇길을 나아가며 콧노래를 흥얼거려 봅니다.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춘다
옛 생각이 외로워 휘파람 불면
고운 노래 귓가에 들려온다
돌아보면 아무도 보이지 않고
저녁 놀 빈 하늘만 눈에 차누나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뉴스와 블로거뉴스에도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9.06.09 11:33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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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농부의 강인한 삶처럼 무르익은 밀-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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