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학 경원대 경제학과 교수는 1986년에서 1988년 이후 우리 경제가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며 추세를 바꿀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성호
최 : 보수도 하강하는 경제성장의 추세를 돌릴 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원인은 뭐라고 보는가.
홍 : 미국에서 중국의 기술 수준이 과연 미국을 앞질렀느냐에 대한 논란이 있다. 어느 조사에서는 중국이 앞섰다는 결과도 나오고 또 아직 멀었다는 통계들도 있다. 하지만 다들 동의하고 있는 것이 중국이 미국의 기술 수준을 뛰어넘을 날이 멀지 않았다는 점이다. 현재 우리 대기업들은 중국이라는 넓은 시장이 옆에 있어서 좋다는 입장이지만 전기를 마련하지 못하면 중소기업이나 저임금 산업 뿐 아니라 대기업들도 곧 중국에 따라잡힐 날이 멀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이는 우리 경제 발전사상 처음 겪는 일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미국, 일본 등을 쫓아가기만 했는데 중국이 우리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유럽과 미국은 이런 추격을 당해본 경험이 있다. 그래서 마련한 경제 전략이 신자유주의였다. 레이건이나 대처 입장에서는 제조업을 후발국가에 빼앗기니까 규제 완화와 금융 산업을 강화해서 전 세계로 진출했는데 이제는 이 전략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됐다. 그리고 가장 안타까운 게 우리나라가 성장전략으로 두바이를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누가 두바이를 이야기하나. 그래서 우리나라는 아직도 성장하기 위해 강을 파고 100층 빌딩을 올리는 등의 전략밖에 나온 게 없다. 이 책이 우리 사회에 의미가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최 : 책을 보면서 들었던 우려는 진보가 성장을 이야기하게 되면 보수 쪽에서 드디어 진보도 성장이라는 보수의 패러다임에 투항했다고 할 수 있겠다는 점이었다. 그런 위험성은 없나.
홍 : 물론 있다. 하지만 지난 20년간의 성장 전략은 분명 잘못됐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난 20년의 성장 모형은 '박정희식 개발독재'를 그대로 지속했던 것에 불과했다. 결국 경제 성장 추세도 떨어지고 양극화까지 발생했다. 미국에서는 이미 양극화를 해결하지 못하면 성장도 당성하지 못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성장과 분배에 대한 이분법에 빠져있고 진보가 성장을 이야기하면 보수에게 투항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니까 정말 답답하다.
최 : 우리나라 보수들은 관치를 시장경제로 착각하고 있다. 관치와 재벌 중심 성장이 가장 합리적인 정책이라고 보는 현실이 안타깝다.
홍 : 함께 번영할 것인가, 따로 망할 것인가, 이걸 생각해야 한다. 중국의 성장을 보면서 대기업들은 생산성이 낮은 중소기업 쪽만 문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닐 것이다. 부품 기업들이 모두 중국으로 넘어가게 되면 중국 기업이 우위를 갖게 될 것이다. 그러면 우리 대기업들도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중국과 저임금 경쟁? 고기술 산업으로 재편해야"최 : 이 책에서 신자유주의와 관련해서 가장 논란이 되는 세계화도 다루고 있다. 이 책에서는 어떤 입장인가.
홍 : 우리나라는 작은 경제다. 그리고 세계화의 추세를 우리가 바꾸거나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우리 경쟁 상대는 중국인데 더 이상 중국과 거래하지 않겠다고 할 수 없다. 중국과 무역마찰 생겨도 우리가 큰소리 낼 수 없는 입장이다. 세계화는 계속 확장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에게 중국이 커다란 시장일 수도 아니면 우리 경제를 삼켜버리는 괴물이 될 수도 있다.
커다란 시장이 되려면 우리가 중국과 경쟁을 피할 수 있는 고부가가치 고기술 산업으로 올라가야 한다. 우리 노동자 생산성이 중국 노동자들의 10배 이상이 돼야 한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큰 시장을 맘대로 향유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산업을 재편하고 노동자의 생산성을 높이는 것은 국가의 성장전략이 담당해야할 몫이다. 미국은 세계화는 특정 분야, 소수에게 피해를 끼치기 때문에 이들에게 그 피해를 다 전가하면 세계화에 대한 저항이 강해지고 국가의 성장동력이 줄어든다고 봤다. 그래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분야에 대해서는 이미 10년 전부터 집중 투자해서 경쟁력을 높이는 데 주력했다.
최 : 전통적으로 성장론자들은 적하효과(트리클 다운)를 내세운다. 아랫목이 따뜻해지면 윗목도 따뜻해진다는 것인데 특히 우리 나라에는 경쟁만이 살 길이고 이긴 사람들이 모든 것을 갖는 게 맞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이 책은 성장의 열매를 함께 나눠 갖자는 입장인데 이 책이 전통적인 성장론자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웃음)
홍 : 설득 돼야죠.(웃음) 안되면 정말 심각해 질 수 있다. 세계화 시대, 지식정보 사회에서는 더 이상 적하효과가 없다. 그래서 과거의 불균형 성장전략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예전에는 대기업이 잘되면 중소기업이 혜택 받고 내수가 살아나는 선순환이 됐는데 지식정보화 사회에서는 그 선순환이 끊어졌다. 계속 과거의 전략을 고집하면 쇠퇴할 수밖에 없다. 그게 답답해서 이 책을 번역한 것이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