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순 사장님, 정말 '일자리가 희망'입니까?"

KBS, 89명 자르는 비정규직 대책 곧 확정... "공영방송이 사기업보다 못해"

등록 2009.06.17 22:08수정 2009.06.17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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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이병순 KBS 사장이 17일 오후 이사회가 열린 서울 여의도 KBS 본관 3층 제1회의실 앞에서 무기계약직 전환을 요구하는 비정규직(연봉계약직) 노동자들의 피켓 시위를 애써 외면한 채 회의실에 들어가고 있다.

이병순 KBS 사장이 17일 오후 이사회가 열린 서울 여의도 KBS 본관 3층 제1회의실 앞에서 무기계약직 전환을 요구하는 비정규직(연봉계약직) 노동자들의 피켓 시위를 애써 외면한 채 회의실에 들어가고 있다. ⓒ 선대식

이병순 KBS 사장이 17일 오후 이사회가 열린 서울 여의도 KBS 본관 3층 제1회의실 앞에서 무기계약직 전환을 요구하는 비정규직(연봉계약직) 노동자들의 피켓 시위를 애써 외면한 채 회의실에 들어가고 있다. ⓒ 선대식

 

"우리는 KBS의 가족이라 믿었습니다.", "이제 나가라 합니다."

 

17일 오후 4시 KBS 임시이사회가 열린 서울 여의도 KBS 본관 3층 제1회의실 앞에는 이같은 팻말들이 빼곡했다. 엑스(X)표가 그려진 마스크를 쓴 KBS 비정규직(연봉계약직) 노동자 20여 명은 회의실로 향하는 이사들에게 팻말을 통해 자신의 심정을 전했다.

 

함께 피켓시위를 하던 KBS 노동조합 관계자들이 "잘 부탁드립니다", "무기계약직 전환이 정답입니다"라고 외쳤지만, 이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사는 많지 않았다. 이병순 KBS 사장은 연봉계약직 노동자들과 노조원들의 피켓 시위를 애써 외면한 채 회의실로 들어갔다.

 

이날 이사회는 이사들이 경영개혁단에서 마련한 비정규직 대책을 보고받는 자리였다. KBS의 비정규직 대책은 오는 7월 1일 비정규직법 시행 2년을 앞두고 비정규직 처리의 풍향계가 된다는 점에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2년으로 제한한 비정규직법에 따라 300명 이상의 노동자를 고용한 기업이나 공공기관은 7월 1일부터 2년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하지만 KBS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보다는 계약 해지·자회사 이관에 무게를 싣고 있다.

 

89명 자르는 KBS 비정규직 대책... "공영방송이 사기업보다 못하다"

 

KBS 경영개혁단에서 마련한 비정규직 대책은 17일 이사회 보고와 24일 이사회 논의 등을 거쳐 다음 달 1일 이전에 최종 확정될 예정이다. 경영개혁단은 이병순 사장 취임 이후 정연주 전임 사장의 방만 경영을 바로잡겠다는 목표로 만든 곳이다.

 

KBS 비정규직 대책은 연봉계약직 420명 가운데 7명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고 32명에 대해서는 계약을 유지하는 대신, 나머지는 계약 해지(89명)나 계열사 이관(292명)을 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KBS 직원들의 반발로 계약 해지자 숫자는 당초 계획보다 다소 줄었다.

 

연봉계약직 노동자의 연봉은 전문기자 등 일부 직종을 제외하면 보통 2천만~3천만 원 대다. 2천만 원이 안 되는 직종도 적지 않다. 이는 KBS 정규직 노동자 연봉의 절반 정도로 그만큼 열악한 처우에서 일한 연봉계약직 노동자들이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번 비정규직 대책에 대해 사측은 구조조정 방안의 일환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연봉계약직 노동자들은 "이번 방안은 KBS가 비정규직법 시행 2년을 맞아 정규직 전환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봉계약직 노동자들과 함께 KBS 기간제 사원 협회를 구성한 김효숙 회장은 "자회사로 보낸다고 하지만, 안 그래도 적자인 자회사에서 고용불안은 되레 심화될 것"이라며 "적은 월급 받으며 열심히 일했는데, 너무 억울하다"고 밝혔다.

 

또한 회사는 연봉계약직 노동자들에게 지금까지 해고나 자회사 이관과 관련해 어떠한 통보도 하지 않았다. 김효숙 회장은 "힘없고 약한 사람들이라고 대화 한 번 없이 일방적이고 졸속적으로 대량해고를 강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KBS 노조 역시 회사가 시도하고 있는 연봉계약직 노동자의 해고를 강하게 비판했다. KBS 노조 비상대책위원회는 12일 결의문을 통해 "이병순 사장이 취임 1년도 되지 않아 대량해고의 칼춤을 추고 있다"며 "연봉계약직 전원에 대한 구제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  KBS 이사회가 열린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본관 3층 제1회의실 앞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노조원들이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KBS 이사회가 열린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본관 3층 제1회의실 앞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노조원들이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 선대식

KBS 이사회가 열린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본관 3층 제1회의실 앞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노조원들이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 선대식

 

"다른 기업 비정규직 위해서라도 끝까지 싸울 것"

 

이날 만난 연봉계약직 노동자들은 하루아침에 자회사·도급회사로 가거나 해고당할 처지에 놓인 것에 대한 억울한 심정과 회사에 대한 분노를 나타냈다. 이들은 살생부를 쥐고 있는 회사 앞에서 이름을 밝히지 못했다.

 

시청률 조사 업무를 맡고 있는 최현우(가명)씨는 "'일자리가 희망입니다'라는 방송을 하는 공영방송이 내부에서는 어떻게 비정규직을 자를 수가 있느냐"며 "사회적 책임이 있는 공공기관이자 언론인데, 비정규직을 해고하겠다는 것은 돈 벌기에 바쁜 사기업보다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TV 편성제작에 참여하고 있는 김진혁(가명)씨는 "FD 시절부터 10년 동안 일했다, KBS는 젊음을 다 바친 곳"이라며 "비정규직에 대한 고통 전가는 수신료를 인상해 깨끗하고 공정한 방송을 하겠다는 이병순 사장의 주장이 허울뿐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KBS 전시관 해설원으로 일하고 있는 이지연(가명)씨는 "연봉 1600만 원 받아가며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전시관을 다른 방송국에서 벤치마킹하러 올 정도로 만들어 놓았다"면서 "저임금에도 항상 KBS의 얼굴이라고 생각하고 자부심 있게 일했는데,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난다"고 밝혔다.

 

김효숙 KBS 기간제 사원 협회장은 "KBS 비정규직이 해고되면, 다른 사기업 비정규직도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된다"며 "여기서 물러서지 않겠다, 연봉계약직 노동자의 고용안정을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2009.06.17 22:08ⓒ 2009 OhmyNews
#KBS 비정규직 해고 #KBS 비정규직 대책 #이병순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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