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세 할머니, 손자 부부가 모신대요

변점옥 할머니의 파란만장한 삶에 대한 경외

등록 2009.06.23 09:48수정 2009.06.23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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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세 할머니의 삶은 파란만장 그 자체입니다. 일제시대에 태어나서 해방을 맞고 6.25동란을 거쳤으며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가정을 온전히 꾸려오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것도 30세 중반에 남편을 잃고 3남 2녀의 자녀을 혼자 키우다시피 한 여성의 길은 험난함 그 자체였을 것입니다. 가끔 신앙에 의지하려고 한 적도 있지만 빡빡한 삶의 조건이 신앙조차 멀어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래도 정말 힘들 땐 가까운 사찰을 찾아가서 넋 놓고 울부짖곤 했다고 합니다. 아주 가끔 간헐적이긴 하지만 사찰과의 이런 관계로 불도(佛道)를 비교적 가깝게 느끼며 지내왔다고 합니다. 자녀들이 또 자녀의 자녀들이 모두 출가하여 가정을 이루고 난 뒤, 덩그런 집을 큰 아들과 그의 모친인 할머니가 지키고 살아왔습니다. 두 모자(母子)는 그 나이에 결코 적지 않은 농사를 놉(품팔이 일꾼) 하나 사지 않고 해결해내는 억척을 보였습니다. 그것도 건강하니까 가능한 일이라며 매사를 감사함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벌써 재작년(2007년) 말입니다. 저희 교회에서 성탄절을 맞이하여 마을 노인분들을 초청해서 경로잔치를 열었습니다. 50여 분이 참석해서 아주 흥겨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때 참석하신 할머니들 중 10명이 교회에 정식으로 등록하고 신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주일 낮 예배만으로 만족하시지 않아 수요일 낮에 따로 노년부 예배를 드리고 점심 식사를 함께 하는 프로그램을 2년째 해 오고 있습니다. 

 

위에서 말한 92세 되신 변점옥 할머니도 노년부 10명 중 한 분이십니다. 90세가 넘어서 교인이 되신 것입니다. 솔직히 말씀 드리면 신앙생활도 생활이지만 비슷한 처지에 있는 노인들이 모여 함께 식사하고 노니는 것에 더 마음을 두셨습니다. 우린 그 사이 가까운 곳으로 나들이도 갔었고, 또 세계 명화체험전 관람을 다녀오는 등 좀 색다른 문화를 즐기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그렇게 좋아하실 수 없었습니다. 

 

두 달 전입니다. 변점옥 할머니가 넘어져 다치는 사고가 났습니다. 급히 병원으로 수송을 했습니다. 대퇴부 상단 뼈가 금이 갔다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젊은 사람이 이런 사고를 당했다면 회복이 빠를 것입니다. 하지만 아흔이 넘으신 분이 입은 상처라 생각보다 회복이 아주 더뎠습니다. 뼈의 상처는 아물었어도 그것으로 인해 다른 부위가 굳어 아주 고생이십니다.

 

오늘(22일) 변점옥 할머니를 뵙고 왔습니다. 지금은  한 노인복지요양원에서 생활하고 계십니다.  집 수리로 인해 한 달 정도 집을 떠나 노인요양원에서 생활하시는 것입니다. 할머니는 다치기 전까지 가정 살림은 말할 것도 없고 농사일도 자근자근 잘 해내셨습니다. 연로한 모자의 성실한 생활을 마을 사람들이 모두 경외의 눈으로 쳐다보았습니다. 할머니의 낙상 사고는 그런 가정에 균형을 잃게 만들었습니다. 할머니의 사고 뒤 살림, 농사 일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 때 어려움에 힘을 보탠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둘째 손자 가족이 그들입니다. 내외가 직장을 다니는 견실한 사람들입니다. 편리함을 추구하는 젊은이들답게 두 자녀와 함께 아파트에서 생활을 하고 있던 그들이 결단을 내린 것입니다. 할머니와 홀로 되신 아버님을 모시기로 마음을 모으는 것은 결코 쉬은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참으로 쉽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고생한 만큼 대우를 받지 못하는 우리나라 노년층입니다. 아흔 할머니와 일흔 아버지를 거두지 않는다고 해서 손가락질하는 세상이 이미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 손자 부부는 낳아주고 길러주신 아버지와 아버지의 어머니(할머니)의 은혜를 잊지 않고 모시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변점옥 할머니의 집은 구옥입니다. 손자 가족이 들어오면서 구조를 좀 바꿀 필요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내부 공사 중입니다. 즉 리모델링 공사 중입니다. 한 달여를 예정하고 지금 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길지 않은 기간이지만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야 하는 것은 또 다른 아픔입니다. 할머니는 노인요양원, 아버지(할머니의 아들)는 마을회관 그리고 손자 가족은 또 그들대로 임시 거처를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나누는 사랑과 인정은 함께 살 때보다 더 짙다고 합니다. 주위에서 볼 때 너무 자주이다 싶을 정도로 발걸음을 하며 서로를 챙기고 있으니까요.

오늘 할머니가 계시는 노인요양원을 방문해서 이런 내용의 말들을 전해 들었습니다.

 

할머니는 아주 해맑은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목욕도 자주 시켜 드리고 또 말 벗도 해드리는 요양원 분위기에 아주 흡족해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연세가 연세이니만큼 생각이 깜박깜박하실 때가 있다고 합니다. 처음엔 저를 잘 알아보지 못하시더군요. 같은 방을 쓰고 있는 다른 할머니가 큰 소리로 교회 목사님이라며 그의 기억을 되살려 주려고 애를 썼습니다. 할머니는 말했습니다.

 

"하머, 하머, 내가 알고 말고. 남전 우리 법사님이 오셨네."

 

할머니에겐 목사님보다 더 친근한 용어가 법사님이라는 사실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불교의 영향력이 큰 지역에서 그 문화에 젖어 생활해오신 할머니입니다. 힘들 때 사찰을 찾아 자신의 처지를 눈물로 하소연한 우리 변점옥 할머니에겐 호칭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 나오신 지는 2년밖에 안 됩니다. 그런 저간의 사정을 헤아린다면 목사님을 법사님으로 부르는 할머니를 탓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우린 손을 잡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우리 변점옥 할머니 빨리 낫게 해 주셔서 정상적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주시고 교회에 나와서 다시 재미있게 신앙생활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준비해간 수박을 전체가 나누어 맛있게 먹고, 몸짓을 다 동원해(귀가 어두우셔서) 할머니들과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함께 생활하시는 할머니들이 너무나 좋아하셨습니다. 자녀들이 찾아와서 대화하는 것을 그분들은 가장 좋아한다고 합니다. 자주 방문해서 대화 상대가 되어주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노인 요양원을 나섰습니다.

 

"할머니, 계시는 동안 편히 생활하세요. 또 찾아 뵐께요. "

 

"고마와요 법사님, 잘 가세요."

 

목사인 나에게 법사로 호칭하며 받는 인사에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곳을 떠나면서 왜 나에게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성어(成語)가 생각났는지 모르겠습니다.

2009.06.23 09:48ⓒ 2009 OhmyNews
#할머니의 부상 #노인요양원 #온고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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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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