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오전 정리해고 철회를 주장하며 공장 점거농성중인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노동자 가족이 '점거농성 중단'을 요구하며 공장밖에서 시위를 벌이는 사측 직원들의 방송차량을 가로막고 '함께살자'고 호소하고 있다.
권우성
지난 세월이 떠오릅니다. 1999년 군대를 제대하고 평택에 올라와 구한 첫 직장은 자동차 정비소였습니다. 군대 가기 전 자동차와 인연을 맺었던 경험을 살려 2000년 쌍용차에서 1년 정도 일을 하다, 여러 직장을 떠돌았고, 2003년 다시 쌍용자동차로 들어왔습니다.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제가 하는 일은 자동차의 차체를 용접하는 것이었습니다. 무쏘, 코란도, 로디우스, 렉스턴이 제 손을 거쳐 용접되어 밖으로 나갔습니다. 사우디 국왕이 탔다는 무쏘를 시작으로 렉스턴까지 밤낮으로 일했지만, 비정규직이라는 굴레는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비정규직의 월급으로는 제가 만든 차를 살 수도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희망을 놓지 않고 살았습니다.
기술이 뛰어난 쌍용차가 중국 상하이자동차로 넘어가고, 2006년 상하이자본의 대규모 정리해고에 맞서 정규직 노동자들이 공장 점거파업을 했을 때 비정규직인 저와 동료들은 공장 밖에서 무심히 TV를 통해 이 소식을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투쟁이 끝나고 600여 명의 비정규직이 공장 밖으로 쫓겨났습니다. 저와 함께 일하던 형님들, 한솥밥을 먹던 동료, 후배들이 하루아침에 '끽' 소리 한 번 하지 못하고 해고됐습니다. 그것도 노사 합의로 말입니다. 그 때 저는 살아남았지만 동료들을 지키지 못하고, 싸우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습니다.
비정규직 자르고 찾아온 평화는 2년 넘지 못하고그렇게 찾아온 공장의 평화는 채 2년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작년 가을부터 공장은 술렁이기 시작했고, 흉흉한 소문이 돌았습니다. 2년 전의 기억이 떠올랐고, 우리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2년 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노조를 만들어야 겠다고 다짐했고, 금속노조에 가입해 '쌍용자동차비정규직지회'를 만들었습니다.
지난해 10월 쌍용차 정규직 집행부는 또 다시 정규직 전환배치로 우리 비정규직 동료 350여 명을 '희망퇴직'이라는 이름으로 공장 밖으로 쫓아냈습니다. 우리는 강력히 항의하고 싸웠지만 동료들을 지켜내지 못했습니다.
집행부가 바뀌고, 비정규직의 목을 겨누던 칼날은 이제 정규직에게 겨누어졌습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같이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저는 이곳 70m 높이의 굴뚝에 정규직 동지들과 함께 있고, 아래에는 비정규직 동지들이 정규직과 함께 공장을 지키고 있습니다.
회사에 끌려나온 정규직 동지들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