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잎 떨어지면 가을 온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정치다 11] 정치권력과 언론권력의 관계

등록 2009.06.25 17:55수정 2009.06.26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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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권우성
"오동잎이 떨어지면 가을이 온 줄 알아야 한다?"

한여름 오동잎 타령이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 진원지가 청와대 대변인이라는 점에서 상당한 파장이 읽힌다.

전혀 뜬금없는 타령이 아니다. 천성관 전 서울중앙지검장과 백용호 전 공정거래위원장을 검찰총장과 국세청장에 임명해 놓고 흘린 것이어서 긴장할 만하다. 아니 오싹할 만하다.

'힘센 두 기관장의 친위대 발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잘 해석하고 행동하라'는 복선이 짙게 깔려 있다.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회의적 평가로 방점을 찍기엔 이르다. 서거정국을 종식시키고 이참에 정국을 더욱 바짝 죄어보려는 의도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공정위 "신문고시 폐지여부 8월까지 결론"
   
가뜩이나 무서운 통제로 약자와 소수자들의 오금을 저리게 하더니 '공안통' 검찰총장을 임명한 이 정부가 앞으로 얼마나 더 '민주'와 '법치'를 내세워 '공안통치'를 강화하려는지 속을 좀처럼 알 수 없다. 법질서 확립에 초점을 둔 '공안통' 전진배치라고 하지만 이 같은 선택은 어지러운 시국에 잔인한 처방과 진배없다.

초강력 한파가 몰아쳐 정국을 더욱 냉각시킬 것이라는 전망을 충분히 가능케 한다. 거센 풍랑 예고는 '공안호'에 그치지 않는다. 언론의 재벌화, 권력화 강화다. 미디어법에 이어 이번엔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로 하여금 총대를 메게 했다. 8월 안에 신문고시 폐지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당찬(?) 각오다.

공정위는 지난 23일 "총리실에서 정부 모든 부처의 훈령 중 5년 이상 개정이 없었고 불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규제에 대한 존치 여부를 검토하라는 지침이 내려왔다"며 "이에 따라 신문고시도 폐지 여부를 검토하고 있으며, 8월 말까지 결론을 내릴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서 잠깐 주목해야 할 대목 한 가지. 왜 하필 백용호 공정위 위원장이 국세청장에 내정된 시점과 맞물려 신문고시가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을까? 그건 이미 예고된 바다. 지난해 4월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그가 현행 신문고시에 못마땅한 반응을 나타내기 시작한 시점이다. "신문고시를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시민사회단체의 거센 반발을 샀지만 그건 서막에 불과했다.

당시 백 위원장은 취임 1개월을 맞아 <연합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과도한 신문시장 규제 주장에 대해 "시장의 반응을 충분히 알고 있으며 신문고시를 전면 재검토할 것"이라며 "아직 어떤 방향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신문협회와 상의하는 등 충분한 여론수렴 과정을 거쳐 방안을 만들 것"이라고 말해 불씨는 지펴졌다. 그 후 공정위는 1년 2개월여 만에 폐지를 향한 골격을 드러냈다.


백용호 날자, 신문고시 폐지 위기... 왜?

 국세청장으로 내정된 백용호 공정거래위원장이 22일 오전 서울 서초동 공정거래위원회 별관에서 열린 공정거래위원장 퇴임식에서 퇴임사를 하고 있다.
국세청장으로 내정된 백용호 공정거래위원장이 22일 오전 서울 서초동 공정거래위원회 별관에서 열린 공정거래위원장 퇴임식에서 퇴임사를 하고 있다.유성호
공정위가 올 3월말까지 신문 불법판촉 신고를 접수하고도 과징금을 부과한 비율이 지난 노무현 정부에 비하면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미미하기 짝이 없다는 점도 예사롭지 않았다. 경고나 시정명령 등 솜방망이만 휘두른 셈이니 시장이 바로잡힐 리 없었다.

그러더니 결국 불씨를 공들여 키웠던 백 위원장이 국세청으로 날자 신문고시가 떨어져 나갈 위기에 처한 꼴이 됐다. 이를 어찌 해석해야 한단 말인가.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속담처럼 됐으니 말이다. 거기에다 뜨거운 기름을 부은 건 문화체육관광부(문광부)다. 지난달 유가부수 인정기준을 반값(50%)로 낮추겠다고 밝히면서부터 사실상 신문고시 운명은 다했음을 예고했다.

현재 ABC 협회는 구독료의 80% 이상을 받아야 유가부수로 인정하고 있고 신문고시도 구독료의 80% 밑으로 할인해줄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이를 대폭 낮추겠다는 방침을 문광부는 밝힌 것이다. 신문고시 폐지를 공정위에 촉구하고 나선 것과 다름없다.

일련의 과정을 정리해 보면 '신문고시 무력화'라는 따가운 비판이 채 가라앉지 않은 가운데 공정위가 바통을 이어받아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한 형국이다. 당장 불똥을 맞아야 하는 쪽은 비재벌신문들, 특히 지역신문들이다.

지역신문들은 '기어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최악의 시나리오다'며 장탄식하고 있다. 일부 지역신문들은 참담한 기분을 사설에 담았다. 자괴감과 박탈감을 동시에 뿜어냈다. 공정위가 일차 비토의 대상이 됐다.

"한국처럼 신문시장이 약육강식 전쟁터 된 곳은 없다"

"건전한 신문시장 형성을 위한 최소한의 제어장치인 신문고시를 허문다면, 그 파장은 여론시장의 심각한 왜곡으로 나타날 것이다. 또한 중앙지의 공세에 맞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지역신문들은 신문고시 폐지 부작용으로 인해 그 존립마저 위협받을 수 있게 된다. 공정거래위는 부작용이 큰 신문고시 폐지라는 '역주행'을 당장 멈춰야 한다."

<부산일보>는 24일  사설 '신문고시 없애면 경품·무가지 난무한다'에서 이처럼 주문했다. 아울러 "신문시장의 현실을 너무나 모르는 무지의 소치라고밖에 달리 해석이 되지 않는다"며 한마디로 무책임한 발상이라고 비난했다.

신문고시 폐지라니... <국제신문> 25일 사설.
신문고시 폐지라니...<국제신문> 25일 사설.국제신문

"선진국 어느 나라도 우리처럼 신문시장이 '약육강식'의 전쟁터가 된 곳은 없다. 애초 신문고시를 1997년 처음 제정하게 된 동기가 중앙지 지국장끼리 칼부림으로 번진 신문 확장 싸움이었고 그런 과열과 혼돈은 지금도 변하지 않고 있다. 자유시장경제에서 경쟁이 없을 수는 없다. 공정위가 신문고시를 폐지한다면 여론의 독과점을 조장하는 것이다. 공정위의 존재 이유에도 어긋난다."

<국제신문> 25일 사설 '신문고시, 더 엄격해도 모자랄 판에 폐지라니'에서 분을 삭이지 못했다. 언론자유 확보에 큰 재앙이 될 수 있는 신문고시 폐지는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불·탈법 더욱 부추기겠다니 공정위가 제정신인가?"

이상한 공정위... <광주일보> 25일 사설.
이상한 공정위...<광주일보> 25일 사설.광주일보

"메이저 신문은 자본력을 바탕으로 포화상태의 신문시장에서 무차별적인 독자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건전한 신문시장 형성을 위한 최소한의 제어장치인 신문고시를 허문다면 여론시장의 심각한 왜곡으로 나타날 것이다. 공정위는 신문고시 폐지라는 '불공정 행위'를 당장 멈춰야 한다. 시장에서의 탈·불법 행위는 공정위가 엄히 단속해야 할 일이지 장려할 일은 아니다."

<광주일보>도 이날 '신문시장 불·탈법 부추기는 이상한 공정위'란 제목의 사설에서 불만을 쏟아냈다. "신문 시장에 만연한 불법경품이 신문고시와 신고포상제 실시에도 줄어들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되레 신문시장의 불·탈법을 더욱 부추기겠다니 공정위가 제정신인지 묻고 싶다"고 꼬집기도 했다.

"최소한의 룰도 허물어버림으로써 수도권 메이저 신문사만 살아남는 심각한 여론 독과점 현상을 초래할 것이 분명하다. 사정이 이런데도 신문고시를 없애겠다는 것은 '부자 언론' '힘센 언론' '중앙 언론'의 눈치나 살피겠다는 말과 다름없다. 신문고시 폐지는 신문업계를 불공정 무한경쟁의 사지로 내모는 시대착오적인 처사다."

<대전일보>의 25일 사설 '신문고시 없애면 지방신문 시장 다 잠식된다'의 일부 내용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정부는 신문 고시 폐지가 곧 신문시장에서 불공정한 불법· 탈법 거래를 부추기는 최악의 선택임을 알아야 할 것이라고 신문은 쏘아 붙였다.

그러나 신문고시 폐지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예견된 일이다. 지난해 10월 전국언론노조는 성명을 통해 "신문시장이 더할 수 없이 혼탁하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이를 바로잡기 위해 제정한 신문고시 폐지를 검토한다니, 궤변도 이런 궤변이 또 있을까"라며 공정위를 비난했다. 국정감사에서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 질의에 대한 공정위 백용호 위원장의 '신문고시 전면적 재검토' 발언이 그때도 화근이 됐다. 4월에 이어 쐐기를 박는 발언이었다. 

정치권력과 언론권력, 결코 한 배일 수 없다  

조중동을 위해? 신문고시 폐지 방침과 관련한 민언련의 성명.
조중동을 위해?신문고시 폐지 방침과 관련한 민언련의 성명.민언련

그도 그럴 것이 2007년 신문고시 위반으로 적발된 사례 중 70건에 대해 직권조사를 실시했던 공정위는 지난해에는 한 차례도 직권조사를 실시하지 않았다. 신문고시 위반에 따른 과징금 부과율도 2007년 47.4%에서 지난해(9월 기준)는 8.2%에 불과했다. 공정위가 '직무유기'를 하고 있는 사이, 신문시장은 더욱 혼탁해졌다.

특히 <조선><중앙><동아> 등 신문재벌과 재벌신문들의 신문고시 위반사례는 단연 선두를 차지해 왔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신고포상제가 실시된 2005년 4월 이후부터 최근까지 실시한 불법경품 실태를 재집계한 결과를 보면 이들 세 신문사의 위반사례가 단연 높다.

특히 신고포상제가 실시된 직후인 2005년 4월과 6월에 조사한 결과를 제외하면 <동아>, <조선>, <중앙>의 신문고시 위반 비율은 각각 78.75%, 74.79%, 73.13%를 차지했다. 신고포상제 실시 반년 만인 2005년 11월부터 대형 신문의 신문고시 위반 비율은 80%를 육박하는 등 그 후 2006년 3월 조사부터는 3개 신문사의 신문고시 위반비율이 모두 90%를 넘어섰다.

불법경품을 통한 독자 확장은 시장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은 물론 자본이 뒷받침되는 신문사의 여론 독점을 공고히 한다는 측면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이처럼 거대 재벌신문 지국들이 불법경품으로 소비자를 매수하고 신문 판매시장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지만, 이를 감시해야 할 공정위는 신문고시를 폐지하겠다고 나섰다. 백주 거리에서 현금과 상품 등을 주며 신문구독을 강권하는 풍경을 이제는 더 자주 볼 수 있게 됐다.

무법천지를 방불케 하는 시장의 실태야말로 신문고시가 폐지는커녕 강화돼야 할 당위성을 말해주고 있지만 정부는 기어코 무력화할 작정이다. 과연 누굴 위함일까? 흐뭇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몇몇 신문을 위해 그 많은 신문들을 끝없는 나락으로 밀칠 태세다. 신문고시 무력화는 미디어법에 이어 이 정부가 그들 편에 있음을 재삼 확인시켜 준 사랑의 증표에 다름 아니다.  

결국 재벌신문, 신문재벌의 불법·탈법적 신문시장 교란행위를 법으로 보장해 주겠다는 저의가 입증된 것이다. 이명박 정권은 그들 신문의 도움 없이는 정권을 유지할 능력도 없는 것일까. 그렇다고 정치권력과 언론권력이 끝까지 한 배를 같이 타고 갈 순 없다. 그건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것과 같다. 역사의 시간은 절대 멈추는 법이 없지 않은가. 오동잎이 떨어지면 가을이 오고,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온다. 권력도 마찬가지다.
#신문고시폐지 #백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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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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