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 강화론'은 왜곡과 무지에 의한 억지

[동향과 분석] 그들이 삼각화 전략과 온정적 보수주의를 거론하는 참뜻은?

등록 2009.06.29 09:23수정 2009.09.08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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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중도 강화론'을 내세우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이 25일 서울 이문동 골목시장을 찾아 상인들과 점심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최근 '중도 강화론'을 내세우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이 25일 서울 이문동 골목시장을 찾아 상인들과 점심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청와대브리핑
최근 '중도 강화론'을 내세우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이 25일 서울 이문동 골목시장을 찾아 상인들과 점심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청와대브리핑

 

청와대가 '중도 강화'를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 클린턴 대통령의 '삼각화'(triangulation) 전략을 국정에 도입하겠단다. 과연 진심일까?

 

'삼각화'는 클린턴의 선거참모를 지낸 딕 모리스(Dick Morris)의 조어(造語)다. 그는 1994년 중간선거에서 대패한 클린턴 구출에 나섰던 인물이다. 그는 클린턴에게 좌우 구분에서 탈피할 것을 주창했다. 민주당 정책도 아니고, 공화당의 그것도 아닌 제3의 대안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걸 삼각형에 빗댔다. 삼각형의 아랫변 좌우 꼭지점 중 하나를 선택할 게 아니라 위쪽 꼭지점에 해당하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비유다.

 

삼각화 전략의 실체는?

 

이렇게만 들으면 삼각화 전략은 그럴싸한 논리다. 괜찮은 중도실용론으로 들린다. 그런데 모리스가 삼각화 전략을 거론한 데에는 숨겨진 배경이 있었다. 당시 초미의 관심사는 '어떤 정책'에 대한 클린턴의 가부 결정이었다. 정치권을 비롯해 국민들은 숨을 죽이고 그의 결정을 주시했다. 모리스는 이 정책을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그 정책이 공화당이 주장하고, 민주당이 반대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모리스가 동원한 논리가 삼각화 전략이었다. 즉, 대통령에게 공화당의 정책을 수용하라고 요구하기 위해 짜낸 수사였다.

 

그 '어떤 정책'이 바로 균형예산(balanced budget)이다. 워낙 재정적자가 컸기 때문에 여론의 대다수가 이를 지지했다. 이 정책은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압승한 핵심 이유이기도 했다. 세입과 세출의 균형을 맞추자는 것이 균형예산이다. 그것은 곧 정부의 지출을 줄이자는 것이고, 다시 그것은 복지재정을 축소하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민주당과 클린턴은 당연히 복지재정 축소에 반대했다.

 

모리스의 삼각화 전략에 따르면, 클린턴은 균형예산이라는 원칙을 수용해야 했다. 실제로 클린턴은 그렇게 했다. 후에 공화당이 주장한 복지개혁도 이 전략에 따라 받아들였다. 다만, 클린턴은 균형예산을 달성하고, 복지개혁을 이루는 데 공화당과 다른 방법을 제시했다.  

 

요컨대, 삼각화 전략의 핵심은 민심에 반하는 본래의 입장을 접으라는 것이다. 국민이 선호하는 것이라면 반대쪽의 주장이라도 수용하라는 것이다. 내켜하지 않으면서도 클린턴이 마지못해 공화당의 정책을 수용했던 것도 그 정책에 대한 여론의 지지 때문이었다. 

 

삼각화 전략을 MB 정부가 국정에 도입하면 어떻게 되나. 지금까지와 달리 여론에 따라야 한다. 국민이 반대하는 정책을 포기해야 한다. 예컨대, 미디어법이나 부자감세 등 대다수의 국민이 거부하는 법안들을 스스로 폐기해야 한다. 여론의 70% 가까이 요구하는 대통령 사과나 국정기조 쇄신을 당장 받아들여야 한다. 이렇게 해야 모름지기 삼각화 전략에 따랐다고 할 수 있다. 그래야 중도 터닝이 진심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청와대가 하고 있는 모양은 이와 정반대다. 사과하라는 요구에 콧등이 신 것 같다. 인사개편에는 콧대를 세우고 있다. 삼각화 운운하면서 미디어법, 비정규직법 등 이른바 MB법안들을 힘으로 밀어붙일 태세다. 앞에서 어기대지 말라는 투다. 이건 삼각화 전략이 아니다. 전혀 무관한 것이다. 따라서 청와대의 중도강화론은 사실 왜곡을 통한 사기일 뿐이다.  

 

'온정적 보수주의'(compassionate conservatism)의 진실

 

중도를 말하면서 청와대는 또 '온정적 보수주의'(compassionate conservatism)를 언급했다. "굳이 따진다면 미국의 공화당 정권도 표방했지만 온정적 보수주의 쪽에 많이 닮아 있다." 대변인의 말이다. 과연 무슨 의미일까?

 

부시가 온정적 보수주의를 표방하기는 했다. 그러나 한때 대선 '후보'로서 그랬을 뿐이다. 그는 2000년 대통령 선거에서 온정적 보수주의를 내세웠다. 클린턴 집권 8년 동안 경제 성적이 워낙 좋았고, 공화당이 독선적 이미지 탓에 몰려 있던 터라 들고 나온 중도노선이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부시는 대선 결과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이 나오기도 전에 이 온정적 보수주의를 폐기해 버렸다. 따라서 부시 '정권'이 온정적 보수주의를 표방했다고 하는 것은 정말 무식한 설명이다. 부시 정권은 시종일관 온정적 보수주의와 정반대의 정책을 펼쳤다. 

 

2000년 선거 직후 최종 승자가 아직 가려지지 않았을 때였다. 매트 다우드(Matt Dowd)라는 여론조사가(pollster)가 부시의 전략가 칼 로브에게 메모를 보냈다. 정치적 중도는 특정 정당이나 이념에 소속감을 느끼지 않는 층을 말한다. 부동층(swing voter)이다.

 

다우드의 조사에 따르면, 부동층이 24%에서 6%로 줄어들었다. 때문에 중도노선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니 중도를 포기하라는 것이 다우드의 메시지였다. 로브와 부시는 이 조언에 충실히 따랐다. 그 뒤 정치적 양극화 전략으로 나갔다. 한순간도 흔들리지 않았다. 실제로 부시와 로브는 집권기간 내내 의도적으로 보수와 진보, 좌․우가 극단적으로 대립하게 만들었다. 

 

이쯤 되면 온정적 보수주의 운운하는 청와대의 주장이 뭘 뜻하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그들의 중도는 말로만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다. 25%에 불과한 국정운영 지지도(KSOI 6월 조사) 등 최악의 여론상황에서 벗어나보려는 정치적 담론공세인 것이다. 부시처럼 나라를 온통 분열과 대립의 수렁에 몰아넣겠다는 자기고백인 것이다. 

 

이제, 이렇게 정리할 수밖에 없다. 청와대가 말하는 중도는 허언(虛言)일 뿐 진심이 아니다. 황석영의 소설 <어둠의 자식들>에 "있는 구라 없는 접시 풀고 돌리면서"라는 표현이 나온다. 청와대가 내세우는 중도강화론은 '있는 구라 없는 접시 풀고 돌리는 사기'다. 따라서 더 지켜볼 것도 없다. 이런데도 청와대보다 더 무식한 몇몇은 MB를 탄핵해야 한다고 분기탱천하고 있다. 이런 걸 두고 도 긴 개 긴이라고 하는가 보다. 

 

깅리치의 몰락에서 배워야

 

어쨌든 기왕에 클린턴을 거론했으니, 그가 어떻게 중도노선을 견지했는지 마저 살펴보자. 클린턴이 중도로 선회하자 민주당 내 강경좌파들은 격렬하게 반대했다. 변절, 배신이라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민주당 의원들 중 일부는 콜린 파월이 출마하면 그쪽으로 가버리자며 쑥덕공론했다. 어떤 이는 클린턴이 자신의 지역구에 얼씬도 못하게 하겠다는 악담도 공공연하게 내 뱉었다. "클린턴, 이 우라질 놈! 그놈이 우리 당을 말아먹었어." 당시 민주당 소속 현역 하원의원의 말이다.

 

클린턴은 이런 '깡'진보의 반대를 이겨냈다. 일시적으로 흔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끝내 중도노선을 고수했다. 복지개혁안이 논란이 됐을 때다. 딕 모리스가 이 법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현재의 17% 지지도 우위가 3% 열세로 바뀔 것이란 여론조사 결과를 들이대면서 압박했다. 클린턴은 심정적으로 저항했다. 그러나 그는 결국 복지개혁법안을 수용했다. 국민이 원했기 때문이다. 국민 뜻에 따름으로써 그는 재선에 성공했다. 지금도 국민이 사랑하는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있다.

 

만에 하나, MB가 정말 중도로 선회하겠다고 하더라도 그가 과연 '꼴'보수의 협박에 버텨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작년 5월 촛불이 켜지자 지레 겁먹고 이른바 '아스팔트 우파'의 품으로 달려갔던 그다. 그때 그를 꼭 안아줬던 그들이 중도 한마디에 MB 탄핵을 외치고 있다. 정신착란이라는 말까지 서슴지 않는다. 이런 판에 그가 중도 선회는커녕 중도라는 말조차 고수하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1994년 미국 중간선거에서 화려하게 등장했던 인물이 뉴트 깅리치(Newt Gingrich)다. 선거에서 압승했다고 해서 마치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것처럼 기세등등했다. 정책을 관장하는 총리로 행세했다. 대통령까지 윽박지르기 일쑤였다. 하원의장이 아니라 혁명군 사령관이었다. 그러다가 2년 만에 씁쓸하게 퇴장했다. 그가 후에 그때의 교훈을 묶어 책으로 냈다. 고통스럽게 배운 10가지 원칙을 적시하고 있다. "경험에서 배우라." 제1 원칙이다. "경청하라." 제2 원칙이다.

 

이런 기대를 하면 욕하려나. MB가 1년여의 경험에서 배우고, 깅리치의 충고를 경청하면 좋겠다. 클린턴처럼 반대를 물리치고 정말 중도로 이동하면 좋겠다. 'mad for business'가 아니라 'man for basics'의 MB가 되면 좋겠다.

 

아무래도 무리이지 싶다. 한영애의 '조율'이나 들어야겠다.

 

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덧붙이는 글 | 이철희 기자는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수석애널리스트입니다

2009.06.29 09:23ⓒ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철희 기자는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수석애널리스트입니다
#MB #중도 #삼각화 전략 #온정적 보수주의 #이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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