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제작소 호프메이커스 클럽회원들이 천리포수목원 생태교육관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오문수
▲ 희망제작소 호프메이커스 클럽회원들이 천리포수목원 생태교육관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오문수 |
|
천리포 수목원!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1만 오천 종류의 수목을 보유한 곳이다. 6~70년대를 살았던 분들에게는 천리포 보다는 박경원이 노래한 흥겨운 폴카 풍의 '만리포 사랑'을 연상하면 쉽다.
천리포는 만리포와 맞닿은 아름다운 해변으로 주변에는 해변의 길이에 따라 십리포, 백리포, 천리포, 만리포가 있다. 중국 쪽으로 툭 튀어나온 태안반도에 자리한 이곳은 은빛 모래와 섬으로 이어져 외국의 어느 해변 못지않은 절경이다.
폭염이 내려쬐는 금요일 오후 희망제작소 50여명의 호프 메이커스 클럽(Hope Makers Club)회원들은 서울 부산 광주 제주도 심지어 홍콩에서도 만사를 제치고 모임에 참석했다. 천리포 수목원 생태교육관에 모인 이들은 직업도 가지가지다. 정치인, 법조계, 학계, 종교계, 기업가, 학사 농부 등. 이들을 모이게 하는 구심점은 무엇일까? 시골이장 같은 웃음을 짓는 박원순 변호사 때문일까? 아니다. 양극화와 절망에 빠진 우리사회에서 희망을 찾기 위해서다.
우리나라의 빈부격차를 나타내는 지표인 지니계수는 0.325에 달해 1990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니계수는 0과 1 사이의 값을 가지는데 값이 1에 가까울수록 소득분배의 불평등 정도가 높다는 의미이며 통상 0.35 이상이면 소득분배가 매우 불평등하다고 평가한다.
호프메이커스 클럽은 각계각층의 전문가들이 모여 우리사회 갈등의 벽을 허물고 토론하면서 비전콘텐츠를 나누는 모임이다. 프로그램 중에는 호프메이커스 클럽회원 중에서 미래지향적이고 지속가능한 단체를 선정하여 소개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희망소기업에 날개를 달자'라는 코너가 있다.
(주)자미원 에프엔지(대표 양희정)는 '우리 아이들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닭고기는 없을까?'하고 궁리하다가 무항생제 닭고기를 개발했다. 무항생제 닭은 천연물질 등으로 면역성을 높이고 사육 전 과정에서 항생제, 성장촉진제, 호르몬제를 먹이지 않아서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
설립 당시 홍쌍리 여사의 청매실 농원에서 버려지는 매실을 닭에게 먹이면서 매실닭이 탄생했다. 닭들은 적절한 사육밀도와 깨끗한 사육환경에서 위생적으로 생산해 닭고기 고유의 맛도 살아있다. 특히 모든 제품에 생산자 이력제를 실시하고 있다.
참석자 대부분은 초면이다. 하지만 이상을 같이하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오래된 지기처럼 밤새 얘기꽃을 피운다. 수목원에 대한 기대와 설렘은 또 다른 기쁨을 던져줬다.
최동석 교수! 몇 년 전 내가 읽은 책 중 가장 감명 깊게 읽었던 저자 중 한 분이다. 만나보고 싶었던 분을 뜻하지 않은 곳에서 만나 흥분된 마음으로 이것저것 듣고 물으며 늦게 잠들었지만 익숙지 않은 새소리가 잠을 깨운다.
새벽 5시. 요란하게 울어대는 어치와 끼룩끼룩 소리를 내며 우는 갈매기 소리에 잠을 깨 숙소인 아담한 한옥으로 예쁘게 지은 배롱나무산장을 나섰다. 마당에는 백년 쯤 되어 보이는 배롱나무 한 그루가 온 마당을 포근하게 감싸고 있었다.
울퉁불퉁한 그루터기에서 뻗어 내린 가지에 압도될 것 같은데 삼십여 미터 쯤 쭉쭉 뻗어 올라간 홍송과 이름 모를 나무들이 배롱나무를 왜소케 한다. 소나무 와 산죽 숲 사이로 난 오솔길을 십여 미터쯤 내려가 후문을 열고 바닷가를 내려 봤다.
그제야 꿈속 같은 분위기를 방해하는 밤늦은 폭죽 소리의 원인을 알았다. 해수욕장에 놀러온 관광객들이 늦게까지 놀았던 것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해변이 기름으로 파묻혔던 처참한 현장이었던가?
다음날 일행은 아침을 먹고 팀을 나눠 수목원을 둘러보기로 했다. 수목원 설립자 민병갈( 본명: Carl Ferris Miller)은 미국 펜실바니아주 웨스트피츠턴에서 태어나 24세 미군장교로 한국에 왔다. 한국은행에 근무하면서 직원들의 신뢰를 받기도 했던 그는 57년 동안 이땅에 살며 한국과 나무 사랑에 헌신했던 영원한 푸른 눈의 한국인이다.
민병갈 대표가 돌아가신 후 2대 이사장으로 재직 중인 문국현씨는 "만 오천종을 다 보려면 3일은 걸려야 하는데, 몇 시간만 보고 가면 사람을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사람으로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냥 나무로 부를까 염려 된다"고 했다.
수목원에는 크리스마스트리에 사용하는 호랑가시나무가 350여 종이 있다. 또한 세계 600여 품종의 목련 중 400여 종이 자라고 있어 세계 식물학계가 인정하는 수목원이다. 완도 호랑가시나무는 호랑가시와 단풍나무의 교잡종이다. 보통 호랑가시나무의 끝은 일정하지만 완도 호랑가시나무는 잎마다 끝의 생김새가 다르다.
삼색 참죽나무는 중국이 원산지다. 새순을 먹는나무라 하여 '참죽'이라 부른다. 참죽처럼 생겼지만 봄에 새로운 잎이 날 때 처음에는 밝은 붉은색에서 여름에는 아이보리색 그리고 초록빛으로 잎이 세 번 변한다.
나무의 지혜가 놀랍다. 카스피연안의 이란이 원산지이며 국내 주엽나무와 사촌인 가시(이란)주엽나무는 낙타와 같은 야생동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낙타가 닿는 부분까지만 날카로운 가시가 있다. 우리나라 목련은 봄에 꽃부터 핀다. 하지만 노란 목련은 잎과 꽃을 동시에 틔운다.
북미 원산으로 가로수로 많이 심는 낙우송은 깃털같은 잎이 떨어지는 나무라는 뜻으로 가을에 노랗게 물든 후 잔 가지째 떨어진다. 나무 주변에 종유석처럼 생긴 기근(공기 뿌리)이 있는데 기근은 물을 좋아하는 낙우송이 물 주변 땅속에서는 필요한 공기를 확보할 수 없어 숨을 쉬기 위해 내보낸 뿌리이다.
북미 원산의 닛사는 일명 키스나무라 부른다. 나뭇잎은 4월에 달리는데 우산살처럼 밑으로 퍼져 나무 안쪽에 들어가면 밖에서 안 보인다. 이따금 젊은 연인들이 나무 안쪽으로 들어가 사랑의 밀어를 나누기 때문에 이보식 원장이 아예 앉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놨다. 스칸디나비아에서는 물을 사랑한 꼬마 요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건국대학교 교수로 희망제작소 부소장을 겸한 김재현 교수는 "우리나라에는 4천여 종의 식물이 자랍니다. 외래종 식물로 인한 생태계 교란을 막기 위해서는 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수목원에서는 함부로 씨앗을 가져가든지 허락 없이 식물을 파가서는 안 되는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며 관리의 중요성에 대해 말했다.
한 사람의 힘이 우리사회를 이렇게 아름답게 변화시킬 수 있다. 평생 한국을 사랑하며 생을 마친 후 수목원 뒷동산 양지쪽에 고이 잠든 민병갈씨의 무덤 앞에서 일행은 숙연해졌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교육과 인권, 여행에 관심이 많다. 가진자들의 횡포에 놀랐을까? 인권을 무시하는 자들을 보면 속이 뒤틀린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