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헬소툰 궁전을 향해 걷고 있는 우리 집 자매. 작은 애는 배가 아프다고 하더니 궁전 안으로 들어오자 말끔히 나았는지 씩씩하게 잘 돌아다녔다.
김은주
체헬 소툰 궁전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지도에서 보면 금방 찾을 수 있을 것처럼 감이 잡히는데 그게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사막에서 갈증으로 정신이 혼미해진 사람한테 나타난다는 신기루처럼 거긴가 해서 달려가면 아니고, 저긴가 해서 쫓아가면 또 아니어서 점점 지쳐갔습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작은 애가 배가 아프다고 했습니다.
먼저 화장실을 찾아봤습니다. 그런데 하도 다급하게 굴어서 으슥한 곳을 찾아서 급한 볼일을 해결하는 게 나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으슥한 곳이라고 생각하고 작은 애를 밀어놓은 곳이 뜻밖에도 버스 정류장 근처라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곳이었습니다.
나무 사이에 들어가 있는 작은 애를 기다리고 있을 때 한 남자가 다가와 말을 시켰습니다. 남자의 출현은 정말 반갑지 않았습니다. 나보다 작은 애는 더 긴장했겠지요. 작은 애가 들키지 않도록 작은 애 쪽을 몸으로 슬쩍 가렸습니다.
남자가 얼른 사라져주기를 기대하면서 말을 시켜도 아무 대꾸도 않았습니다. 말이 시작되면 길어질 테고 그러면 나의 초조한 상황이 들통 날 것 같아 영어라고는 한 마디도 못하는 사람처럼 외면했습니다.
그런데 눈치 없는 큰 애가 잘난 척 하면서 나섰습니다. 요즘 한창 영어 쓰는 재미에 맛을 들인 큰 애는 자기가 나서서 이 남자와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큰 애에게는 동생의 다급한 사정 보다는 자신의 영어 실력을 뽐내고 싶은 욕망이 더 큰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것저것 떠듬거리는 영어로 말을 나누던 이란 남자의 한 마디가 나의 예민한 신경을 누그러뜨리고 폭소를 일으켰습니다.
"너의 언니는 말을 못하니?" 이란 남자가 큰 애에게 나를 가리키며 물어본 말입니다. 나를 큰 애의 언니로 착각한 것도 웃겼고, 아무 말 않고 있다고 나를 벙어리로 아는 사실도 웃겼습니다.
"그녀는 영어를 전혀 못해요."
큰 애의 재치 있는 대답도 나를 웃겼습니다. 그래서 상황에 안 맞게 터져 나오는 웃음을 입술을 깨물며 참아야 했습니다.
큰 애와 한참 떠들던 이란 남자가 떠나고 마침 내 작은 애가 나왔습니다. 남의 집 담이라도 넘은 아이처럼 조심스럽고 겁먹은 표정이었습니다. 배는 여전히 아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작은 애 기분은 엉망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