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을 들추면 숱하게 달린 참외가 드러난다. 노란빛을 띠기 시작한 것도 있다.
전갑남
사실, 그렇다. 작물은 거둘 때 가봐야 안다. 자라면서 열두 번도 더 변한다. 입찬소리는 금물!
텃밭은 수시로 표정을 달리한다. 한낮 따가운 햇살에는 잎이 쳐지면서 시들시들해지다가 해거름에는 기운을 차린다. 이른 아침이면 싱싱함을 더한다.
가뭄이 심할 때 작물의 얼굴과 적당히 비를 맞은 뒤 얼굴은 딴판이다. 열매를 맺을 때까지는 표정이 싱그럽다. 장대비나 센 바람에는 폭격을 맞은 것 같이 푹석 주저앉기도 하지만 며칠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일어난다. 자연은 스스로 복원하는 힘이 있다.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병충해에 시달릴 때도 약을 치고 영양을 공급하면 깨어나기도 한다.
그리고 결국, 무성하게 자라 꽃을 피우고, 결실을 맺어 자손을 퍼트린다. 사람한테는 수확의 기쁨을 주면서….
손님과 함께 발길을 참외밭으로 옮겼다. 줄기가 뻗어 판지를 메우고 자라는 기세가 등등하였다.
"어! 참외도 가꿀 줄 아나봐?""그럼. 해마다 스무 포기 남짓 가꾸는 걸!""참외는 기술이 있어야 된다던데. 순을 잘 쳐줘야 크게 달리지?""그거야 기본! 손이 좀 많이 가지!"내가 손자덩굴을 집어 순을 쳐주자 손님도 따라했다.
참외 원 줄기를 엄마덩굴이라 부른다. 엄마덩굴에서 아들덩굴이 서너 개만 뻗도록 유인한다. 아들덩굴에서 수도 없이 곁가지를 친 게 손자덩굴이다. 손자덩굴에서 암꽃이 피며 열매가 달린다. 손자덩굴은 보통 세 잎 정도 남기고 순을 잘라야 튼실한 열매를 기대할 수 있다.
벌은 중매쟁이. 암꽃, 수꽃을 옮겨 다니는 벌이 눈에 띄었다. 이파리를 들쳐보는 손님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널찍한 잎 뒤에 숨은 푸른 참외가 숱하게 드러난 것이다.
"와! 뭐가 이리 많이 달렸나? 벌써 굵어진 것도 많네! 며칠 있어야 따먹을 수 있을까?"그러고 보니 참외가 정말 많이 달렸다. 벌써 어른 주먹크기로 굵어진 놈은 누런빛을 띠기 시작했다. 크고 작은 열매들이 엄청나다. 굼실굼실! 손자덩굴에 달린 암꽃에서도 기대되는 것들이 숱하다.
자손을 퍼트리는 자연의 능력은 참 대단한 것 같다. 절로 감탄사가 난다. 손님은 다음에 오면 참외서리를 해야겠다고 한다. 노란 참외가 지천일 때 꼭 연락을 주란다.
작년 전철을 또 밟으려나? 흰가루병이!비가 그친 아침, 태양이 눈부시다. 아내와 함께 참외밭에 나왔다. 참외밭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아내의 표정이 좋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