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엉이 바위.노무현 전 대통령이 어디엔가 있을 것같아 자주 그를 찾았다.
강기희
지난 10일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49재가 있던 날입니다. 그가 부엉이 바위에서 몸 던진 5월 23일부터 7월 10일까지 봉하마을은 해방구였습니다. 봉하마을에서는 그 어떤 말을 해도 공허하지 않았습니다. 노무현이 걸었던 길을 따라 걸으며 혹은 그가 올랐던 봉화산에서 그 어떤 다짐을 한다 해도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그가 뿌린 씨앗을 발아 시키는 몫은 살아남은 자들노무현을 마지막으로 떠나보내는 49재. 그 하루 전인 9일(목) 봉하마을로 갔습니다. 추모 예술제 행사인 <노무현 전 대통령 49재 추모예술제 '부활하는 푸른 님이여!'>를 진행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누군가는 영광스런 자리라고 했지만 전혀 그렇지 못했습니다. 웃을 수도 없는 자리에서 눈물 감추며 사회를 보는 일이 얼마나 힘든 지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행사에 참여한 문화예술인들은 버스 두 대에 나눠 타고 봉하마을로 갔습니다. 거칠게 내리는 비를 뚫고 봉하마을에 갔을 때 거짓말처럼 비가 그쳐 있었습니다. 비가 오면 행사를 어떻게 하나 싶었던 한국문학평화포럼과 추모행사위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의 생가 앞에 이르렀을 땐 구름이 잔뜩 몰려왔습니다. 곤궁하게 살았던 소년 노무현이 짐작되었습니다.
일부 언론에서 '아방궁'이라고 떠들어대던 노무현의 사저 앞을 지날 때에는 바람이 몹시 불었습니다. 농부가 된 그가 밀짚모자를 눌러 쓰고 대문을 나서는 듯 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기다리던 이들에게 손 흔들어주며 "또 비가 온다니 논에 물보러 가야합니더. 함께 가실랍니까?" 하는 듯도 싶습니다. 다시 바람이 불었고, 그는 물 고인 논으로 그렇게 떠났습니다.
예술제를 준비하는 중 전국에서 참여한 시인 100여명은 정토원으로 갔습니다. 시인들은 대한민국 시인 262명이 쓴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시집인 <고마워요 미안해요 일어나요>(화남출판사 발행)를 대한민국 16대 대통령 앞에 헌정했습니다.
하나의 거대한 우주를 품고 살아가는 시인들이 한 사람에게 보낸 추모의 노래는 대한민국 문학사에서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세계문학사라고 그 유래를 넘어서지 못할 것이라 믿습니다. 눈물로 또는 피끓는 마음으로 써내려간 시인들의 추모의 시는 노무현의 또 다른 역사입니다.
그날 오후 5시, 추모예술제가 시작되었습니다. 마을 곳곳에 남아있는 노무현의 흔적을 찾던 추모객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습니다. 의자도 마련되지 않은 광장 바닥에 앉은 이들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한 것은 시인들의 울음섞인 시가 토해질 때였습니다.
그리하여 한 사람이 떠나고또 한 사람이 돌아오고 있다한 사내가 가고 또 한 사내가 오고 있다한 바보가 가고 또 한 바보가 돌아오고 있다한 시대의 의인이 가고비운의 풍운아, 고독한 승부사가 가고순명의 혁명가 노무현이 돌아오고 있다단 하나의 노무현이 떠나고노무현 같은 바보들이 하나 둘 돌아오고 있다마침내 수십만 수백만 명의 노무현들이 돌아오고 있다- 이원규 추모시 '마침내 바보들이 돌아왔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