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의 사람
드디어 방동약수터다. 갈래길에서 박준성 선생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가 오기로 한 곳이다. 5시 반에 올라가기 시작해 2시 반에 내려왔다. 9시간 30분. 휴 이젠 끝? 나도 그런 줄 알았다. 오늘 고생 끝. 행복 시작. 그런데 오늘 내가 느낀 위험 중 가장 위험한 일이 터졌다. 내린천에서 버스로 래프팅을 할 뻔했다.
무슨 얘기인지 들어보시라. 내린천 어딘가에서 밥을 먹고 나왔다. 소주도 한잔 하고 배도 부르고 차엔 따뜻한 히터 틀고, 뭐 이젠 집으로 가는 일만 남았다. 식당 밖에 나와서 담배를 한 대 물고 강을 바라보니 심각했다. 강물이 다리 목구멍까지 차고 있었다. 바다에서 폭풍우가 치는 걸 직접 보지 못한 나는 당연히 그렇게 무섭게 소용돌이치며 흘러가는 강물을 처음 봤다. 온 세상을 뒤덮을 것 같았다.
드디어 버스가 출발했다. 아, 그런데 그 앞에서 웬 경찰들이 나와 있다. 버스가 그 옆을 지나가 천천히 움직였다. 회원들이 잠을 자려고 눈을 붙였다. 나는 창문 옆으로 강을 바라보면서 회원들에게 떠들었다.
"지금 잠이 와? 와, 저거 봐. 무섭다. 와! 왓!"
도대체 궁금해서 못살겠다는 웃음을 보이면서 눈을 감았던 하명수씨가 눈을 뜨고 안경을 찾아 쓴다. 나는 옆을 보면서 갔는데 그 강물이 점점 내가 가는 도로하고 가까워지고 있었다. 어, 어. 저 강물이 넘치네. 앞은 어떠지? 하는데 뭔가 꽝 소리가 나고 차가 섰다. 앗! 앞쪽을 보니 길바닥으로 넘친 강물 한 가운데 차가 서 있었다. 도로였지만 강이 된 도로였다.
나는 순간 맨발로 차 운전석으로 뛰어갔다. 운전을 하던 김성수씨가 새파랗게 질렸다.
"뒤로 빼요! 앞으로 못 가겠구만!"
후진 기어를 넣고 엑셀러레이터를 밟아 보지만 부릉부릉 소리만 나고 차가 움직이지 않는다. 아, 어디 차 바퀴가 빠진 거 아닌가? 앞문을 보니 문틈으로 황톳물이 차 들어오고 있었다. 순식간에 왼쪽 저 강물과 하나가 되나 싶었다. 버스 타고 레프팅하게 생겼네. 이런 긴박한 순간에 왜 그런 농담이 생각나는 거야. 참 나도.
김성수씨가 다시 액셀러레이터를 밟는다. 부릉부릉 쿨럭! 차 시동이 꺼진다. 아, 절망! 강물이 마후라(소음기)까지 찬 건가? 그럼 차 시동은 물 건너 간 것. 김성수씨도 새파랗게 질린 얼굴이다. 다시 시동을 걸었다. 부릉! 걸린다. 아, 살았다. 하지만 차 바퀴가 어디 빠져 못 나오면 끝이다.
"뒤로 살살 빼 봐요."
부릉부릉! 뭐에 걸렸는지 데스크가 헛돌아 타는 냄새가 나고 움직이지 않는다. 어떡하지? 이젠 여기 물이 차는 건 순식간일 거다. 앞문으로는 깊어 내릴 수가 없다. 아직 뒤 창문 쪽은 그리 깊지 않다. 뒤 유리를 깨고 회원들을 대피시켜? 생각하는데 차가 움직인다. 살았다.
"뒤로 움직이는 거야?"
기사가 나한테 물었다. 놀란 데다가 강물이 출렁출렁하니까 차가 움직이는지 어쩌는지 감각을 못 느끼고 있다.
"뒤로 가고 있어! 살살 그렇게 빼요."
차가 천천히 조금씩 뒤로 움직이고 있다. 깊은 곳은 빠져 나오는 듯하다. 살았다. 저건 또 뭐야. 백미러로 힐끗 보니 저 뒤엔 백차 한 대가 서 있다. 물이 없는 도로로 천천히 빠져 나오니 경찰 하나가 운전석 쪽 창문으로 온다.
"아니, 이쪽으로 왜 온 거요?"
"가라니까 왔지."
"누가 가래요?"
"누구긴 누구야? 저 뒤에 있는 경찰들이 가래서 왔지."
"아니, 여기서 경찰은 우리밖에 없는데 어떤 경찰이요?"
이런 황당한 놈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를 보낸 경찰들은 경찰우비를 입은 자율방범대원들이었다. 강물이 넘치니까 경찰들은 거기서 차를 통제하고 있다가 잠깐 어디 간 새에 자율방범대원들이 지키고 있었던 거다. 그 방범대원들이 우리를 보낸 건 이 버스가 높으니까 도로에 웬만큼 물이 차도 갈 수 있지 않겠나 하고 착각하지 않았나싶다.
결국 다른 길로 돌아서 인제로 나올 수 있었다. 온 동네가 물이었다.
"물 소리만 들려도 싫어. 서울 가고 싶어."
김인모씨가 말했다. 큰길로 들어서기 전 차를 세우고 점검을 했다. 차 문짝이 부서졌다. 운전을 하던 김성수씨와 차 밑을 보니 스페어 타이어가 없다. 그때야 알았다. 아까 물에 잠긴 그 도로에 큰 바위가 굴러 떨어져 차가 그 스페어 타이어 위에 얹혔던 것이다. 차를 뒤로 빼다 보니 그 스페어 타이어가 떨어져 나간 것이었다.
스페어 타이어는 잃어버렸지만...나는 보지 못했지만 아까 그 강물에 차 바퀴 하나가 강물에 빠져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고 한다. 그걸 본 어떤 이는 저거 가져와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물었다고 한다. 푸하하! 웃음이 나왔다. 차 전체가 그 강물에 휩쓸려 들어갈 정도였는데 타이어를 어떻게 가져올 수 있나. 참 순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뒤에 타고 있는 회원들은 그런 사실조차 모르고 잠을 자거나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내면서 느긋하게 쉬고 있었다. 그래, 모르는 게 마음 편하지.
오면서 버스 안에서 회원들과 오늘을 되돌아보았다. 회원들은 오늘 산행 계획이 무리가 아니었냐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오늘 폭우가 쏟아진다는 예보도 있었는데 꼭 그렇게 9시간 산행을 할 필요가 있었냐는 거였다. 게다가 34명이 가는 산행에 무전기도 가져오지 않았고 버너 하나 준비를 안 했다고 비판했다. 버너는 할 말 없고, 늘 갖고 다니는 무전기는 하필 오늘 안 나온 이태희씨가 가져가서 준비를 못 했다. 미리 다른 방식으로 준비했어야 하는데 미처 못한 것은 비판 받을 만하다.
하지만 회원들이 다들 똑같이 느끼는 게 있었다. 역사와산 회원들은 그렇게 어려운 지경에 빠지면서도 자기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서로 도와주려고 했다는 것. 그건 맞는 말이었다. 내가 늘 말하지만 역사와산 회원들은 사람이 좋다.
산길을 가다가 갈래길이 나오면 그 비를 맞으며 뒷사람을 기다려 길을 인도하는 박준성 선생님, 추워 떨고 있는 회원에게 자기가 갖고 있던 옷을 선뜻 내 주는 최은식씨. 약한 회원이 다리가 아프면 자기 지팡이를 내 주는 최상천씨. 다리가 아파 걷지 못하는 사람의 가방을 메주는 하명수씨, 탈진하거나 다리가 아파 걷지 못하는 사람들을 부축해 주는 사람(나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인데 여기 쓰면 잘난 체 한다고 할까 봐 못쓴다. ㅋㅋ) 밥을 안 가져 온 회원들에게 자기 음식을 나눠 주는 회원들이 있어서 나는 역사와산이 좋다.
이번 산행에서 김영모씨는, 모든 걸 뒤엎어버릴 듯한 거센 물줄기 한가운데에 서서 다른 회원들을 건너게 해 주었다. 또한 자기 몸이 아프면서도 아프다는 내색을 하지 않고 다른 이들을 먼저 보살피는 김인모씨도 남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이다. 절벽에서 뛰어내리라는 둥, 버스 통로 한가운데서 대 자로 누워 잠을 자기도 하는 둥, 가끔 오버는 하지만 다른 회원들 절벽에서 내려오는 걸 손으로 받쳐 온힘을 다해 받아 주던 김영희씨도 그런 사람이다. 그런 희생정신과 봉사 정신이 있기 때문에 역사와 산 회원들은 사회생활에서도 자기만을 위한 삶을 살지 않고 남을 위한 삶을 사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그런다. '역사와 산' 모임이 요즘은 '역사'는 없고 '산'만 있다고. 하지만 역사를 배우는 까닭이 무엇인가. 과거를 배워 현재와 미래를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려는 것이 아니겠는가. 남을 위하는 희생정신을 배우고 실천해 현재와 미래를 올바로 세우는 데 한몫을 한다면 역사와산 모임은 제 구실을 다하는 것이다.
오늘 무리한 산행으로 목숨을 건 위험한 지경에 이르기도 했지만 결국 회원들 모두 재미와 스릴이 있었다고 느끼는 것은 결국 서로 도와가며 우리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느긋한 마음이 들기 때문이었다.(아닌 사람 밝혀. 회원 자른다. ㅋㅋ) 그건 바로 희생 정신과 봉사 정신, 그리고 협동 정신으로 다른 이들을 내 몸처럼 아끼는 역사와산 회원 때문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버스로 우리를 끝까지 안전하게 데려다 준 김성수씨가 정말 고맙다. 오늘 번 돈은 차 고치는 데 다 들어가 아무 것도 남지 않고 고생만 했다. 그런데도 "그럴 때도 있지" 하면서 웃어 주는 김성수씨 때문에 역사와산이 여기까지 올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나간 것은 다 아름다워지느니라' 하는 시 구절을 인용할 필요도 없다. 역사와산 회원들은, 희생 정신과 낙관적인 생각,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오늘 아무리 위험해도 결국 아무 사고 없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산에서 내려와 지나간 산행에 대해서 말한다.
"오늘 정말 재미있었어요. 다음 달에 꼭 만나요."
"역사와산이 이런 곳이었어요?"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소감을 말하던 오늘 처음 온 회원이 웃으면서 하던 말이다. 회원들이 그 말을 듣고 푸하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절대 그렇지 않다. 이렇게 힘든 산행은 역사와산 모임에서도 아주아주 드물다. 자연 앞에선 겸손해야 한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준 산행이었다. 역사와산 집행부는, 비가 와도 그렇게 많이 올 줄 몰랐던 죄밖에 없다. 오는 길에 들은 뉴스에서 오늘 조난당한 등산객들이 전국에 수백 명이라고 하지 않는가.
다음 달에 가는 산은 포천 조무락골이다. 한두 시간 산행하고 가족과 물놀이를 할 수 있는 곳이다. 가실 분은 역사와산 홈피(
http://www.historymt.co.kr/)에 신청해 주시기를……. 45명 선착순이다!
(7월 13일 새벽 4시 45분 ) 안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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