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린천에서 버스타고 래프팅할 뻔 했네

폭우를 맞으며 월둔에서 방동약수터까지 걷다

등록 2009.07.13 15:32수정 2009.07.13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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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사람

세 번째 계곡 물을 건널 때까지는 우아했다. 정강이까지 차는 물을 등산화를 신고 건너기 싫어 신발을 벗고 건넌 뒤 건너편에서 발을 닦고 다시 신발을 신었다. 하지만 네 번째 계곡부터는 등산화를 신은 채 건널 수밖에 없었다. '우아'는커녕 '우울'한 비가 쏟아져 내려 계곡물이 점점 불어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맨발은커녕 신발을 신고 건너가기도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그것조차 아무것도 아니었다. 조금 뒤에 일어날 일들에 견줘 보면…….


처음에 우리가 가기로 한 곳은 방태산 정상이었다. 하지만 전날 밤부터 쏟아지기 시작한 비는 그칠 줄을 몰랐다. '역사와 산' 모임 집행부 몇몇이, 너무 위험하다고 다른 코스를 택하자고 했다. 그게 월둔에서 방동약수터 길이었다.

"그 길은 길이 좋아서 9시간이라도 괜찮아."

11일 밤 출발하기 전 시청에서 모여 하는 얘기는 그런 소리였다. 9시간? 몇 킬로미터 정도 될까? 그 길로 가자고 결정했는지 회원들은 버스에 올랐다. 9살짜리 서윤이와 6학년 서현이, 강석이를 비롯해 모두 34명이었다. 12일 새벽 5시 반부터 월둔이라는 곳에서 올라가기 시작했다. 우비를 입었는데 우산을 쓸까 말까 잠깐 망설인 끝에 비가 너무 와 비옷도 입고, 우산도 쓰고 가자고 우산을 들고 버스에서 내렸다. 선뜩한 기운이 돌기 시작한다.

길은 평탄하고 좋았다. 첫 번째 계곡물을 만나기 전까지는. 나는 처음에 말한 대로 세 번째 계곡까지 발에 물을 안 묻히고 잘 가고 있었다. 네 번째부터는 포기하고 첨벙첨벙 건넜다. 물은 아까보다 깊어 무릎 위까지 올라올 정도였다. 나는 9시간 걸을 동안 이런 계곡이 몇 개나 있는지 몰랐다. 방태산도 처음이고 이 길도 처음이었으니까.

비가 퍼붓는 바람에 어디서 밥을 먹을 수도 없었다. 다들 우산을 쓰고 서서 과일과 과자, 초콜릿 같은 걸 먹었다. 벌써부터 힘에 부치는 홍나영씨와 몇몇은 조금씩 처지기 시작했다. 뒤처지는 사람들을 데리고 따라갔다. 앞서 간 사람들이 계곡을 건너고 있었다. 헉! 언뜻 보니 물길이 세다. 여자들이 겁을 먹기 시작했다. 나무를 걸치고 김재영씨가 가운데 서서 여자들 한 사람씩 잡아 주고 있었다. 혼자서 건너기 힘들어 보였다. 김재영씨는 이날 등산 코스를 추천한 사람이다. 길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계곡물, 무서운 속도로 불어나다

그리고 또 그렇게 비슷한 계곡 몇 개를 건넜는데 절벽이 나왔다. 앞서 간 사람들은 벌써 건너고 있었다. 다리가 끊어진 곳인가? 한 길은 넘는 절벽을 내려가 허리까지 차는 계곡을 건너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절벽 밑은 정강이까지밖에 물이 차지 않는 거였다. 여자들이 눈을 똥그랗게 뜨고 겁을 집어먹었지만 생각할 여지가 없었다.


"빨리 건너야 돼! 물이 점점 불어!"
"위에서 손을 잡아 주고 뒤돌아 발을 뻗어!"

물 한가운데는 몸무게 100킬로그램 정도 나가는 김영모씨가 허리 밑까지 오는 그 센 물살을 버티면서 한 사람씩 붙잡고 그 뒤에 있는 사람에게 건네주고 있었다. 앗! 이거 장난이 아니구나. 느긋하게 장난을 치고 오던 나는 잽싸게 몇 사람 손을 잡아주고 내려 준 뒤 뒤로 돌아 뛰어 내렸다.

"거기는 그냥 뛰어 내려! 괜찮아!"

얼굴이 솥뚜껑만 한 김영희씨는 젊은 사람들한테는 그냥 뛰어내리라고 했다. 김영희씨는 다 좋은데 가끔 이렇게 오버를 하는 사람이다. 그 말을 들은 작은책 최규화는 그 말을 듣고 그대로 뛰어 내렸다. 사람이 밑에서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높이였다. 한참 내려가더란다. 당연히(?) 뒤로 자빠져 물을 먹었다. 배낭 무게가 있다는 걸 깨닫지 못했다. 푸하하!

"아, 형님! 왜 뛰어내리라고 해요!"

김영희씨가 오버하는 사람인 줄 그때 깨달았겠지. 나는 물 한가운데 버티고 서 있는 김영모씨 손을 잡은 뒤 건넜다. 물은 점점 불어 김영모씨 허리 위까지 찼다. 내가 건너가면서 발을 디뎌 보니 김영모씨 있는 곳이 가장 깊은 곳이었다. 거기를 밟으니까 몸이 휘청거렸다. 넘어지면 끝이다.

나는 물을 건너서 김영모 씨 왼쪽 옆에 섰다. 그리고 건넌 사람보고 내 손을 잡으라 하고 나는 김영모씨에게 손을 잡으라고 했다. 네 사람이 한 줄로 손을 잡고 있는 모양이었다. 김영모씨가 얼마나 수영을 잘하는지 모르지만 거기서 한 번 넘어지면 수영 선수 박태환이도 소용 없다.

쿨렁쿨렁하는 시뻘건 물 폭탄이 위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홍나영씨가 건너다가 넘어질 뻔했다. 악! 소리를 지른다. 입술이 새파랗고 얼굴에 공포가 인다. 다행히, 다행히 건넜다. 저 건너 다섯 사람이 남았다. 김영희씨가 소리친다.

"됐어! 이젠 됐어! 다 건너가!"

나머지는 혼자 건너오겠다는 거다. 내가 소리쳤다.
"빨리 손 잡아!"
"됐다니까. 건너가."
"되긴 뭘 돼! 빨리 손 잡아."

맨 마지막에 김재영씨가 건너다 말고 휘청한다. 다시 뒤로 발을 뺀다. 그 앞쪽이 약간 깊은 곳이다. 나는 다시 "왜 오버하는 거야? 빨리 손 잡아! 아까보다 물이 더 세단 말야!" 나는 위험을 느끼면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결국 손을 잡고 무사히 건너왔다. 김영희씨한테 말했다.

"왜 오버해? 손잡고 건너면 되지."
"김재영씨는 아까도 두 번이나 왔다갔다 했단 말야."
"이 물이 아까하고 똑같아? 김재영 씨도 마지막에 넘어질 뻔했잖아."

무서운 속도로 소용돌이 치는 계곡물

땅의 사람

김재영씨는 산을 잘 타는 사람이고 이쪽 지역을 잘 안다. 하지만 이런 물에는 장사 없다. 제 아무리 재주꾼이라 하더라도 위험한 건 위험한 것이다. 김재영씨도 마지막에 위험을 느꼈을 것이다. 우리가 다 건넌 뒤 나는 그곳을 돌아보았다. 우리 뒤로 사람이 온다면 더는 건널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건너온 그곳을 지나간 물이 더 넓은 곳으로 파도를 치며 소용돌이를 치며 내려가고 있었다. 저기 휩쓸리면 시체도 찾지 못할 것이다.

휴, 이제 마지막인가? 그랬다면 아마 이 글을 쓰지 않았을 거다. 또 다른 계곡을 만난 것이다. 한참 가다가 정강이까지 차는 물을 룰룰랄라 노래를 부르면서 건넜고 시멘트로 뭉친 다리 하나를 건넜다. 그리고 5분 정도 갔는데 어, 저 앞에 저게 뭐야? 가슴이 덜컹했다. 저 건너엔 시멘트로 된 다리가 보이는데 이 앞엔 그 시멘트 높이만 한 물줄기가 울렁울렁대며 흘러가고 있었다. 앞서 갔던 박준성 선생님과 김영희씨가 돌아오고 있었다. 박준성 선생 얼굴이 잔뜩 굳어 있었다. 저 길을 못 건너면 우린 산속에 갇히게 된다.

다시 돌아가는데 김인모씨가 그 자리에서 기다리자고 한다. 왔다갔다 하면 지치니까 선두가 길이 있나 보고 올 때까지 기다리자고 한다. 내가 말했다.

"박 선생님이 여기서 기다리라고 안 했어. 아까 건너왔던 다리는 여기서 얼마 안 돼. 따라가야 돼. 여기선 전화도 안 돼."

김명희 선생이 또 말했다.
"아까 왔던 다리를 다시 건너서 오른쪽으로 계곡을 따라 가면 저 계곡을 건널 수 있을 거야. 가 보자구."

그렇다. 그 물줄기는 S자다. S자로 된 강을 두 번을 건넌다는 건 계곡을 따라 가면 한 번도 안 건너도 만날 수 있다는 얘기다. 김인모씨가 수긍한다.

따라가길 잘했다. 앞서 간 일행은 우리가 따라올 줄 알고 계곡 옆길로 들었다. 아니 길을 만들면서 갔다. 낙옆이 깔린 길이라 무척 미끄러웠다. 왼쪽은 낭떠러지. 맨 뒤에 갔던 우리는 별일 없었는데 앞서 가던 이명숙씨는 5미터나 미끄러졌다고 한다. 그 밑은 바로 강이었다. 나는 아이가 걱정돼 찾아 봤더니 2학년 서윤이는 엄마하고 잘 가고 있다. 아이는 전혀 겁을 내지도 않고 지쳐 보이지도 않았다. 서윤이 누나 서현이는 벌써 가고 보이지도 않는다. 이 아이들은 지난 달에는 백무동에서 천왕봉까지 갔다 온 적도 있다. 조금만 살펴 주면 웬만한 어른들보다 나은 아이들이다.

길 없는 비탈길. 비고 뭐고 우산은 진즉에 배낭에 넣었다. 이젠 비 맞는 게 문제가 아니다. 여기를 빠져 나가느냐 못 하느냐였다. 늘어져 있는 나뭇가지를 치우면서 질퍽대는 길을 가기를 20분 정도.

"길이 보인다!"
"와우, 다리를 건넌 거야?"
"아니, 다리는 안 보이는데."
"뭐야 어떻게 된 거지?" 하면서 길로 들어섰는데 아, 왼쪽에 아까 건너편에서 보이던 그 무너진 시멘트 덩어리 다리 길이 보였다.

"와우! 건너온 거야!"
"그거 봐. 건너올 수 있는 거지."
앞 길은 어떤지도 모르면서 일단 환호! 다시 걷기 시작했다.

아침가리 폐교에서 비를 피하고...

숲속에 웬 건물이 있었다. 폐교된 초등학교 건물이었다. 나중에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무척 유명한 아침가리에 있는 분교였다. 하지만 아름답고 어쩌고 할 때가 아니었다. 으슬으슬 추워 떨던 회원들은 불이 있는지 그게 문제였다. 안으로 들어가니 가운데 난로가 있었다. 불은 없었는데 먼저 온 회원들은 아침을 먹고 있었다.

집 주인이 장작을 갖다가 불을 때 주었다. 무척 친절했다.
"아니, 오늘 같은 날 이 산을 옵니까? 오늘 폭우가 쏟아진다는 예보도 있었는데" 하고 어른들을 나무라고 아이들 먼저 불을 쬐게 했다.

"애들은 저체온증이 무척 위험합니다."
"자, 양말을 벗고 불 쬐라. 밥이 먼저가 아냐."
하지만 그 아이들은 여느 아이들이 아니었다. 집 주인이 그걸 어찌 알랴. 더 약한 우리의 몇몇 여자 회원들이 있었다. 오늘 처음 산길에 든 여자들도 있었다.

불에 몸을 녹이고 양말과 옷을 말리니 살 것 같았다. 밥을 먹고 다시 출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진심으로 집 주인에게 고맙다고 했다. 아마 이 집 주인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다시 산에서 내려올 힘을 얻지 못 했을 거다. 앞으로도 세 시간이라니…….

그 집에서 나와 계곡 옆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가는데 이제야 그 계곡에 무섭게 흘러가는 물을 여유 있게 볼 수 있었다. 마치 큰 물줄기들이 백 미터 질주하는 듯했다. 가다가 바위에 부딪치면 회오리를 일으키며 돌았다. 우르르릉! 물이 어디로 가고 싶어 미치는 듯했다. 바로 내가 가는 길옆으로 넘치는 듯했지만 그 물이 이리로 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오른쪽 산에서 모인 물들이 몰려 내려왔다. 아, 그 집주인도 오늘 비가 얼마나 왔는지 짐작을 못했구나. 이젠 괜찮을 거요. 했는데 웬걸. 길이 보이지 않았다. 왼쪽 계곡으로 쏟아지다가 잠깐 머무는 물이 정강이까지 차 있었다. 그래도 길이라 위험하지는 않았다. 한참 그런 길을 가다가 드디어 다시 시멘트 길이 보였다. 고생 끝?

거기서 부터는 올라가는 길이었다. 올라가는 길에 쏟아져 내려오는 물도 만만치 않았다. 마치 물과 함께 돌리는 러닝머신 같았다. 아니면 고장 나서 총알처럼 돌아가는 에스컬레이터처럼 물이 흘러 내려왔다. 이 동네는 원래 비만 오면 이렇게 많이 오는 건가? 아니다. 오늘은 특별한 비 세례였다.

끝없이 올라가기만 하던 길이 끝나고 내려가는 길이 보였다. 최정애씨와 홍나영씨가 가장 힘들어했다. 그런데 앞에서 가던 김윤주씨 무릎에 이상이 생겼나 보다. 걷지 못하고 있다. 내가 갖고 있던 무릎보호대를 채워 주고 부축을 했다. 내 어깨에 팔을 두르고 내려가는데 뒤에서 최정애씨가 놀리고 있다. 빗소리 때문에 안 들리지만 '풍경 좋은데!" 하는 소리겠지. 그렇게 힘들어도 농담을 하면서 내려오면 덜 힘들지. 흐흐. 한참 그러고 내려갔는데 다행히 좋아져서 혼자 걸을 수 있었다.

어라, 그런데 이번엔 또 강석이가 못 걷고 있다. 강석이는 오늘 혼자 온 6학년 짜리 남자 아이다. 웬만하면 아프다고 하는 아이가 아닌데 발바닥이 아프단다. 또 부축했다.

"아저씨, 왜 끝이 안 보여요?"
"이제 거의 다 왔을 거야."
"아저씨, 저기가 끝일까요?"
"그래 그런 거 같다. 가 보자. 거의 다 왔을 거야" 하고 달래면서 내려왔다.

이번에는 내린천에서 버스타고 래프팅할 뻔...

땅의 사람

드디어 방동약수터다. 갈래길에서 박준성 선생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가 오기로 한 곳이다. 5시 반에 올라가기 시작해 2시 반에 내려왔다. 9시간 30분. 휴 이젠 끝? 나도 그런 줄 알았다. 오늘 고생 끝. 행복 시작. 그런데 오늘 내가 느낀 위험 중 가장 위험한 일이 터졌다. 내린천에서 버스로 래프팅을 할 뻔했다.

무슨 얘기인지 들어보시라. 내린천 어딘가에서 밥을 먹고 나왔다. 소주도 한잔 하고 배도 부르고 차엔 따뜻한 히터 틀고, 뭐 이젠 집으로 가는 일만 남았다. 식당 밖에 나와서 담배를 한 대 물고 강을 바라보니 심각했다. 강물이 다리 목구멍까지 차고 있었다. 바다에서 폭풍우가 치는 걸 직접 보지 못한 나는 당연히 그렇게 무섭게 소용돌이치며 흘러가는 강물을 처음 봤다. 온 세상을 뒤덮을 것 같았다.

드디어 버스가 출발했다. 아, 그런데 그 앞에서 웬 경찰들이 나와 있다. 버스가 그 옆을 지나가 천천히 움직였다. 회원들이 잠을 자려고 눈을 붙였다. 나는 창문 옆으로 강을 바라보면서 회원들에게 떠들었다.

"지금 잠이 와? 와, 저거 봐. 무섭다. 와! 왓!"

도대체 궁금해서 못살겠다는 웃음을 보이면서 눈을 감았던 하명수씨가 눈을 뜨고 안경을 찾아 쓴다. 나는 옆을 보면서 갔는데 그 강물이 점점 내가 가는 도로하고 가까워지고 있었다. 어, 어. 저 강물이 넘치네. 앞은 어떠지? 하는데 뭔가 꽝 소리가 나고 차가 섰다. 앗! 앞쪽을 보니 길바닥으로 넘친 강물 한 가운데 차가 서 있었다. 도로였지만 강이 된 도로였다.

나는 순간 맨발로 차 운전석으로 뛰어갔다. 운전을 하던 김성수씨가 새파랗게 질렸다.

"뒤로 빼요! 앞으로 못 가겠구만!"

후진 기어를 넣고 엑셀러레이터를 밟아 보지만 부릉부릉 소리만 나고 차가 움직이지 않는다. 아, 어디 차 바퀴가 빠진 거 아닌가? 앞문을 보니 문틈으로 황톳물이 차 들어오고 있었다. 순식간에 왼쪽 저 강물과 하나가 되나 싶었다. 버스 타고 레프팅하게 생겼네. 이런 긴박한 순간에 왜 그런 농담이 생각나는 거야. 참 나도.

김성수씨가 다시 액셀러레이터를 밟는다. 부릉부릉 쿨럭! 차 시동이 꺼진다. 아, 절망! 강물이 마후라(소음기)까지 찬 건가? 그럼 차 시동은 물 건너 간 것. 김성수씨도 새파랗게 질린 얼굴이다. 다시 시동을 걸었다. 부릉! 걸린다. 아, 살았다. 하지만 차 바퀴가 어디 빠져 못 나오면 끝이다.

"뒤로 살살 빼 봐요."

부릉부릉! 뭐에 걸렸는지 데스크가 헛돌아 타는 냄새가 나고 움직이지 않는다. 어떡하지? 이젠 여기 물이 차는 건 순식간일 거다. 앞문으로는 깊어 내릴 수가 없다. 아직 뒤 창문 쪽은 그리 깊지 않다. 뒤 유리를 깨고 회원들을 대피시켜?  생각하는데 차가 움직인다. 살았다.

"뒤로 움직이는 거야?"

기사가 나한테 물었다. 놀란 데다가 강물이 출렁출렁하니까 차가 움직이는지 어쩌는지 감각을 못 느끼고 있다.

"뒤로 가고 있어! 살살 그렇게 빼요."

차가 천천히 조금씩 뒤로 움직이고 있다. 깊은 곳은 빠져 나오는 듯하다. 살았다. 저건 또 뭐야. 백미러로 힐끗 보니 저 뒤엔 백차 한 대가 서 있다. 물이 없는 도로로 천천히 빠져 나오니 경찰 하나가 운전석 쪽 창문으로 온다.

"아니, 이쪽으로 왜 온 거요?"
"가라니까 왔지."
"누가 가래요?"
"누구긴 누구야? 저 뒤에 있는 경찰들이 가래서 왔지."
"아니, 여기서 경찰은 우리밖에 없는데 어떤 경찰이요?"

이런 황당한 놈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를 보낸 경찰들은 경찰우비를 입은 자율방범대원들이었다. 강물이 넘치니까 경찰들은 거기서 차를 통제하고 있다가 잠깐 어디 간 새에 자율방범대원들이 지키고 있었던 거다. 그 방범대원들이 우리를 보낸 건 이 버스가 높으니까 도로에 웬만큼 물이 차도 갈 수 있지 않겠나 하고 착각하지 않았나싶다.

결국 다른 길로 돌아서 인제로 나올 수 있었다. 온 동네가 물이었다.

"물 소리만 들려도 싫어. 서울 가고 싶어."

김인모씨가 말했다. 큰길로 들어서기 전 차를 세우고 점검을 했다. 차 문짝이 부서졌다. 운전을 하던 김성수씨와 차 밑을 보니 스페어 타이어가 없다. 그때야 알았다. 아까 물에 잠긴 그 도로에 큰 바위가 굴러 떨어져 차가 그 스페어 타이어 위에 얹혔던 것이다. 차를 뒤로 빼다 보니 그 스페어 타이어가 떨어져 나간 것이었다.

스페어 타이어는 잃어버렸지만...

나는 보지 못했지만 아까 그 강물에 차 바퀴 하나가 강물에 빠져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고 한다. 그걸 본 어떤 이는 저거 가져와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물었다고 한다. 푸하하! 웃음이 나왔다. 차 전체가 그 강물에 휩쓸려 들어갈 정도였는데 타이어를 어떻게 가져올 수 있나. 참 순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뒤에 타고 있는 회원들은 그런 사실조차 모르고 잠을 자거나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내면서 느긋하게 쉬고 있었다. 그래, 모르는 게 마음 편하지.

오면서 버스 안에서 회원들과 오늘을 되돌아보았다. 회원들은 오늘 산행 계획이 무리가 아니었냐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오늘 폭우가 쏟아진다는 예보도 있었는데 꼭 그렇게 9시간 산행을 할 필요가 있었냐는 거였다. 게다가 34명이 가는 산행에 무전기도 가져오지 않았고 버너 하나 준비를 안 했다고 비판했다. 버너는 할 말 없고, 늘 갖고 다니는 무전기는 하필 오늘 안 나온 이태희씨가 가져가서 준비를 못 했다. 미리 다른 방식으로 준비했어야 하는데 미처 못한 것은 비판 받을 만하다.

하지만 회원들이 다들 똑같이 느끼는 게 있었다. 역사와산 회원들은 그렇게 어려운 지경에 빠지면서도 자기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서로 도와주려고 했다는 것. 그건 맞는 말이었다. 내가 늘 말하지만 역사와산 회원들은 사람이 좋다.

산길을 가다가 갈래길이 나오면 그 비를 맞으며 뒷사람을 기다려 길을 인도하는 박준성 선생님, 추워 떨고 있는 회원에게 자기가 갖고 있던 옷을 선뜻 내 주는 최은식씨. 약한 회원이 다리가 아프면 자기 지팡이를 내 주는 최상천씨. 다리가 아파 걷지 못하는 사람의 가방을 메주는 하명수씨, 탈진하거나 다리가 아파 걷지 못하는 사람들을 부축해 주는 사람(나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인데 여기 쓰면 잘난 체 한다고 할까 봐 못쓴다. ㅋㅋ) 밥을 안 가져 온 회원들에게 자기 음식을 나눠 주는 회원들이 있어서 나는 역사와산이 좋다.

이번 산행에서 김영모씨는, 모든 걸 뒤엎어버릴 듯한 거센 물줄기 한가운데에 서서 다른 회원들을 건너게 해 주었다. 또한 자기 몸이 아프면서도 아프다는 내색을 하지 않고 다른 이들을 먼저 보살피는 김인모씨도 남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이다. 절벽에서 뛰어내리라는 둥, 버스 통로 한가운데서 대 자로 누워 잠을 자기도 하는 둥, 가끔 오버는 하지만 다른 회원들 절벽에서 내려오는 걸 손으로 받쳐 온힘을 다해 받아 주던 김영희씨도 그런 사람이다. 그런 희생정신과 봉사 정신이 있기 때문에 역사와 산 회원들은 사회생활에서도 자기만을 위한 삶을 살지 않고 남을 위한 삶을 사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그런다. '역사와 산' 모임이 요즘은 '역사'는 없고 '산'만 있다고. 하지만 역사를 배우는 까닭이 무엇인가. 과거를 배워 현재와 미래를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려는 것이 아니겠는가. 남을 위하는 희생정신을 배우고 실천해 현재와 미래를 올바로 세우는 데 한몫을 한다면 역사와산 모임은 제 구실을 다하는 것이다.

오늘 무리한 산행으로 목숨을 건 위험한 지경에 이르기도 했지만 결국 회원들 모두 재미와 스릴이 있었다고 느끼는 것은 결국 서로 도와가며 우리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느긋한 마음이 들기 때문이었다.(아닌 사람 밝혀. 회원 자른다. ㅋㅋ) 그건 바로 희생 정신과 봉사 정신, 그리고 협동 정신으로 다른 이들을 내 몸처럼 아끼는 역사와산 회원 때문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버스로 우리를 끝까지 안전하게 데려다 준 김성수씨가 정말 고맙다. 오늘 번 돈은 차 고치는 데 다 들어가 아무 것도 남지 않고 고생만 했다. 그런데도 "그럴 때도 있지" 하면서 웃어 주는 김성수씨 때문에 역사와산이 여기까지 올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나간 것은 다 아름다워지느니라' 하는 시 구절을 인용할 필요도 없다. 역사와산 회원들은, 희생 정신과 낙관적인 생각,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오늘 아무리 위험해도 결국 아무 사고 없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산에서 내려와 지나간 산행에 대해서 말한다.

"오늘 정말 재미있었어요. 다음 달에 꼭 만나요."

"역사와산이 이런 곳이었어요?"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소감을 말하던 오늘 처음 온 회원이 웃으면서 하던 말이다. 회원들이 그 말을 듣고 푸하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절대 그렇지 않다. 이렇게 힘든 산행은 역사와산 모임에서도 아주아주 드물다. 자연 앞에선 겸손해야 한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준 산행이었다. 역사와산 집행부는, 비가 와도 그렇게 많이 올 줄 몰랐던 죄밖에 없다. 오는 길에 들은 뉴스에서 오늘 조난당한 등산객들이 전국에 수백 명이라고 하지 않는가.

다음 달에 가는 산은 포천 조무락골이다. 한두 시간 산행하고 가족과 물놀이를 할 수 있는 곳이다. 가실 분은 역사와산 홈피(http://www.historymt.co.kr/)에 신청해 주시기를……. 45명 선착순이다!

(7월 13일 새벽 4시 45분 ) 안건모
첨부파일
방태산 산행기.hwp
DSC_1504.JPG
DSC_1205.JPG
DSC_1230.JPG
덧붙이는 글 매체는 아니고 역사와 산 홈피(http://www.historymt.co.kr/)에 실려 있습니다. 하종강의 노동과 꿈과 작은책 열린 게시판에도 실을 예정입니다.
#작은책 #등산 #역사와산 #희생 정신 #봉사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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