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탑승거부, 알고보니 그럴만 했네!

날 웃게 만든, 택시 기사 아저씨의 황당 사건

등록 2009.07.24 17:44수정 2009.07.28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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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택시를 기다리는데 황당한 사건이 하나 있었다. 그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사건을 말하자면 이렇다. 

 

7월 말, 일을 마치고 버스 종점인 가오동 근처에서 집으로 가던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금방 올 줄 알았던 버스가 그 날따라 보이질 않는 것이다. 문제는 날씨, 한바탕 장마가 지난 여름철이라 그런지 햇볕이 무척 따가웠다. 옷에 땀이 비슬비슬 흘러 내리고 있는 상황에서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 버스에 슬슬 짜증이 밀려왔다.

 

'아, 너무 더워. 그냥 택시 타고 가야겠다.'

 

결국 기다리다 지쳐 얼른 택시를 타고 집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내 마음을 안 것인지 잠시 후, 택시 하나가 버스 종점으로 쏜살같이 달려왔다. 집에 갈 생각에 반가운 마음이 들어 얼른 택시를 불러 세웠다. 그런데, 세상에. 택시가 손님인 날 보고도 휙 하니 그냥 지나치는 것이었다. 순간 당황해 다시금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택시는 날 본체 만체 외면하고 그대로 운행을 계속했다. 

 

황당했다. 분명 그 택시 기사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고, 분명 날 보며 뭐라 손짓한 것을 봤기 때문이다. 혹 이게 서울에서 유행한다는, 단거리 손님은 안태우는 묻지마 탑승거부인 것 같아 마음이 상했다.

 

'탑승 거부인가? 쳇, 너무하네. 그냥 태워주지.'

 

그래도 그냥 너그럽게 '늦게 점심 먹으로 가나보다?'라는 정도로 위안 삼았다. 사실 식사 때문에 손님 승차 거부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희망고문일까? 그렇게 영영 멀어질 줄 알았던 택시가 갑자기 40-50M 정도 앞에서 턱 멈춰 서는 것이었다. 

 

나는 놀란 마음에, 기사 아저씨에게 "그 택시 안가요?" 하고 큰 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뭐라 대답을 줄 것이라 믿었던 택시 기사 아저씨의 행동이 이상했다. 대답을 하기는 커녕, 갑자기 차에서 재빠르게 내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 "이봐요! 학생. 잠시만 기다려 줘요"라고 큰 소리로 외치더니 어디론가 막 뛰어가 버렸다. 어찌나 빠르던지 아저씨 발에 모터가 달린 줄 알았다. 그렇게 기사 아저씨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갑작스런 상황에 나는 할말을 잃었다. 별 이상한 사람도 다 있다고 생각을 했다.

 

택시 기사 아저씨와 한바탕 소동이 있은 후, 어찌 할까를 고민하고 있는데 그렇게 오지 않던 버스가 도착했다. 그래서 괜히 신경 쓸 것 없이 얼른 버스를 타고 집에 가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 순간, 너무나 애절하게 '기다려 달라'는 택시 기사 아저씨의 말이 생각났다.

 

그래서 뭔가 찜찜하여 어쩔 수 없이 기사 아저씨를 기다리기로 했다. 하지만 뭔가 선택을 잘못한 모양이다. 아저씨는 금방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결국 10분이나 지나서야 어디론가 사라져던 택시 아저씨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는 한결 밝은 표정으로 택시를 몰고 내게 다가왔다. 웃음 띈 아저씨가 기다린 날 보며 미안한 표정을 애써 짓더니 말을 꺼낸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손님 많이 기다리셨죠?"

"네. 무려 10분 정도요. 그런데 어디 다녀오신 거에요?"

 

나의 물음에 택시 기사 아저씨는 미안하다며 흐흐 웃더니, 그제야 자초지종을 들려준다. 그 말을 들은 나는 크게 웃고 말았다. 알고보니 이 황당 사건은 화장실 용무가 급해 생긴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저씨가 말하길, 1시간 전쯤 이곳에서 한참 떨어진 동네에서 3명의 여학생들을 태웠다고 한다. 출발지인 그쪽에서 목적지인 여기까지 택시비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기사 아저씨는 내심 속으로 좋아했다고 한다. 요즘 같은 불황에 장거리 손님을 태우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웬 불운일까? 도중에 택시 기사 아저씨의 화장실 용무가 급해진 것이다. 하지만 손님을 태운 와중에 차를 세우고 화장실을 찾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여성 손님들이기 대충 해결(?)도 할 수 없었기에 혼자 끙끙 앓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나중에, 안색이 좋지 않은 기사 아저씨를 보며 여학생들이 이유를 물었다고 한다. 그렇게 이야기를 들은 여학생들이 다행히 아저씨에게 희망적인 소식을 하나 전해줬다는 것이다. 자기가 사는 아파트에 공중 화장실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것이다. 그 말에 택시 기사 아저씨는 일단 쏜살같이 달려 손님들을 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거리, 택시비 1만 원이 넘을 정도로 먼 거리가 장난이 아니었다. 그런데 택시 기사 아저씨는 얼마나 다급했는지, 보통 1만1000원이 나올 택시비를 불과 8000원 정도밖에 나오지 않을 정도로 차를 몰았다고 한다. 나중에 학생들이 아저씨 덕분에 빨리 오게 됐다고 감사하다는 말까지 했으니 그 다급함을 짐작해 본다. 그렇게 바람처럼 도착한 아저씨는 다행스럽게 끔찍한 사건(?)없이 공중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난 속으로 정말 택시 기사 아저씨에게는 특별한 하루였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지금 생각해보니 "택시 가나요?" 라는 나의 목소리가 그 아저씨에게 들리지도 않았던 것은 어쩌면 당연했던 것 같다. 잘못하면 큰 일을 치를 뻔 했는데 손님 한 명 태우고 마는 게 대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택시기사 아저씨는 그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들려주며 다시금 내게 "미안하다"고 말을 한다.

 

나는 뭐 괜찮아요라고 말했다. '큰일 날 뻔 하셨는데요'라는 말을 가슴에 꾹꾹 누른 채, 웃으며 택시에 탑승했다. 택시 기사 아저씨의 사소한 사건 하나가 입가에 웃음을 번지게 했던 날이었다.  

2009.07.24 17:44ⓒ 2009 OhmyNews
#택시 #황당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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