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어에 '짠피엔이(占便宜)'란 말이 있다. 값싼 물건을 먼저 낚아채듯 유리한 조건을 차지하다는 뜻인데 이 말은 중국의 호구(戶口)제도를 설명하기에 아주 적합하다. 대도시에서 태어난 사람은 교육, 의료, 취업 등에 유리한 조건을 선점하고 그 혜택을 외지인이 함부로 넘보지 못하도록 높은 진입장벽을 쳐 놓았는데 그것이 바로 호구제도이다.
계획경제체제인 1958년 마오쩌둥(毛澤東)이 사회주의 건설을 위해 농업호구와 비농업(도시)호구로 이원화한 이후 굳건히 지속되어 오다가 1978년 개혁개방 이후 도시 공업화를 위해 농촌의 유휴노동력이 필요해지면서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도시 거주 기간, 은행 예치금, 직장 등을 고려해 '청색호구(藍色戶口)'제도를 탄력적으로 적용하며 효력이 다한 호구제도의 제도적 한계를 보완해오다가 1998년 7월 22일, 국무원이 비준한 공안부의 '호구 관리 문제에 대한 의견'이 제출되면서 호구제도 개혁의 돌파구가 마련되었다.
그러나 도시에 취업한 농민공(農民工) 약 2억만 명은 여전히 도시호구를 얻지 못하고 불법체류자의 신세에서 주거, 의료, 교육의 사각지대에 놓여 지내왔다. 불법체류자이기 때문에 합법적인 노동계약을 체결할 수도 없고 임금 체불, 부당해고 등에 정당한 권리를 주장할 수도 없었다. 임시거류증을 발급받기도 쉽지 않고 베이징 호구를 얻기 위해서 10만 위엔(우리돈 약 1500만원)의 수수료가 든다고 하니 엄두도 못 낼 일이다.
2005년 12월 15일, 지앙뻬이(江北)구의 허위엔(何源)은 친구들과 하교길에 교통사고로 죽었는데 충칭 시내호구가 아니라는 이유로 보상의 절반 밖에 받질 못했다. 동명불동가(同命不同價, 같은 목숨이지만 목숨 값은 다르다)사건은 중국누리꾼들의 지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으며 동시에 호구제도 개혁에 다시 불을 지폈다.
2006년에는 리샤오홍(李少紅)감독의 다큐멘터리영화 <런짜이베이징(人在北京)>이 호구제도의 모순과 그 문제의 심각성을 신랄하게 파헤쳤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도시호구가 없다는 이유로 사귀던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도시호구를 얻기 위해 장애인과의 결혼도 마다하지 않는다.
급격한 사회변화에 따른 호구제도의 다양한 모순들이 드러나고 사회적인 개혁요구가 빗발치면서 이원적 호구제도는 지방을 중심으로 일원화단계에 접어들었다. 중국 31개 성, 자치구, 직할시 중에서 가운데 허베이(河北), 랴오닝(遼寧), 장쑤(江蘇), 저장(浙江), 푸젠(福建), 산둥(山東), 후베이(湖北), 후난(湖南), 광시(廣西), 충칭(重慶), 쓰촨(四川), 산시(陝西)성 등 12개 지역이 호구제도를 없앴다.
2007년 이후 나머지 19개 성도 호구제도 폐지를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광둥(廣東)성에는 유입되는 농민공이 범죄 등 도시 환경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고교 졸업 이상이나 전문대 졸업 이상으로 제한하는 방안을 내놓았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는 등 진통을 겪고 있다.
중국의 도농간 심각한 빈부격차의 이면에는 호구제도가 자리 잡고 있었다. 도시사람과 시골사람을 구분하여 제도적으로 차별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지만 상하이와 베이징은 여전히 폭발적인 인구유입으로 인한 도시 기능 마비를 이유로 기호지세(騎虎之勢)의 지경에 놓여 있다.
국제사회도 호구제도 폐지를 강력히 권유하고 있기도 하지만 중국정부가 추구하는 삼농문제의 해결과 허시에(和諧, 조화로운 사회의 건설)를 위해서라도 차별적인 이원적 호구제도의 시급한 개혁이 무엇보다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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