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 가이'와 함께한 쿠키처럼 달콤한 하루

[이란 여행기 36] 페르세폴리스 가는 길 위에서

등록 2009.07.27 11:20수정 2009.07.27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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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스가이가 추천한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고있는 둘째.
나이스가이가 추천한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고있는 둘째.김은주

 주식이 나오기 전에 나온 전채요리. 난이라는 빵에 치즈와 이름을 모르는 채소를 싸서 먹는 이란의 대표적인 음식인데 의외로 맛있었다.
주식이 나오기 전에 나온 전채요리. 난이라는 빵에 치즈와 이름을 모르는 채소를 싸서 먹는 이란의 대표적인 음식인데 의외로 맛있었다.김은주

고레스 대왕의 무덤을 둘러보고 우리가 타고 온 미니버스로 돌아왔을 때 버스기사는 우리를 위해 뜨거운 홍차와 쿠키를 내놓았습니다. 뜻밖의 대접이라 우리 모두는 감동했습니다. 자신의 나라를 방문한 이방인에게 대접하기 위해 미리 준비해온 모양입니다.

쉬라즈 날씨가 우리나라로 치면 초봄 날씨 정도인데 이런 날 밖에서 마시는 뜨거운 홍차는 기분을 한결 좋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깨가 박힌 담백한 쿠키와 우유와 버터가 많이 들어간 부드러운 쿠키 맛도 일품이었습니다.


우리가 쿠키를 먹고 있을 때 저 멀리로 장례행렬이 지나갔습니다. 오전에 이곳으로 버스를 타고 지나올 때 마을 사람들이 모두 집 밖에서 삼삼오오 서있거나 앉아있어서 속으로 이상하게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누군가가 죽어서 장례식에 참가하기 위해 모두들 나와 있었던 모양입니다.

장례행렬은 정말 길었습니다. 200미터는 족히 넘어보였습니다. 하긴 인근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왔으니 그럴 만도 했습니다. 운구차가 먼저 앞서 나가고, 이어 남자 행렬이 이어지고, 뒤에는 여자들이 따라갔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떠나는 누군가는 복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맛있는 쿠키 때문인지, 즉 내가 기분이 좋아서인지 죽음을 목격하고 있지만 그 모습이 그리 슬프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치 무대 공연을 보듯이 저 멀리 보이는 이란 시골 마을의 장례행렬을 구경했습니다. 버스기사가 건넨 달콤한 쿠키 맛에 취해 있었기 때문에 죽음이 나와는 거리가 먼 걸로 느껴졌습니다. 죽음을 생각하기엔 쿠키는 너무 맛있고, 홍차는 너무 따뜻하고, 쉬라즈의 바람은 적당하게 느낌이 좋았습니다. 죽음 보다는 삶이 주는 행복을 즐기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버스기사가 건넨 쿠키는 죽음을 느끼게 하지 못할 만큼 행복한 맛이었습니다. 물론 이 버스 기사와 함께 한 하루는 쿠키만큼 우리일행에게 많은 행복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우린 그를 '나이스 가이'라고 불렀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매너는 끝이 없었으니까요. 사실 가만히 있어도 그를 좋아했을 것입니다. 그는 지금까지 우리가 타보지 못한 푹신한 의자를 달고 있는 거의 새 차를 타고 왔고 또 그 차는 우리나라 현대차였습니다. 그러니 그는 입 다물고 있어도 이미 점수를 따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매너가 아주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매너는 그의 상술인지 아니면 원래가 친절한 사람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난 이 두 가지가 계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처럼 서열을 가리기 어렵다고 봅니다. 예전에 어떤 책에서 보길 장사를 하려는 사람은 자신이 친절하고 마음이 넓은 사람인가를 먼저 확인하고 장사를 하라고 했습니다. 즉 이런 좋은 마음을 갖고 있어야 장사를 잘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그 버스 기사는 원래 친절하고 타인을 배려를 잘 하는 사람인데 마침 자신의 성품에 맞게끔 관광객을 상대로 차를 운행해주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와 함께 한 하루는 무척 행복하고 따뜻했습니다.

 남은 밥과 야채를 섞고 우리나라에서 가져간 초고추장을 비벼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라는 칭찬을 아끼지 않고 먹는 둘째의 행복한 표정.
남은 밥과 야채를 섞고 우리나라에서 가져간 초고추장을 비벼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라는 칭찬을 아끼지 않고 먹는 둘째의 행복한 표정.김은주

 한국과 이란 음식의 만남. 한국의 고추장과 이란의 향기  강한 야채가 만나 정말 맛있는 비빔밥이 만들어졌다.
한국과 이란 음식의 만남. 한국의 고추장과 이란의 향기 강한 야채가 만나 정말 맛있는 비빔밥이 만들어졌다.김은주

페르세폴리스 가는 길에 우린 식당에 들렀습니다.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서지요. '나이스 가이'가 추천한 집이니 훌륭한 음식이 나오겠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습니다.

솔직히 이란 식 레스토랑은 좀 겁이 났습니다. 대부분의 식당은 양고기를 주재료로 사용하는데 난 양고기에 경기를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난 메뉴를 고르는 데 아주 신중했습니다. 마침내 숯불에 구운 치킨꼬치를 주문했습니다.

주 메뉴가 나오기 전에 난이라는 빵과 치즈 한 접시, 그리고 허브처럼 생긴 채소 한 접시가 나왔습니다. 채소를 한 잎 떼서 먹어봤는데 향이 강하면서 매운맛이 났습니다. 난에 치즈와 야채를 넣어서 싸먹었는데 정말 맛있었습니다. 입이 무섭다고 금방 접시가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그래서 주방으로 가서 우리나라에서 하는 것처럼 난과 야채를 더 달라고 해서 얻어왔습니다.

주 요리인 닭 꼬치는 커다란 접시에 닭 꼬치와 밥 그리고 이 나라에서 많이 먹는 푹 삶은 보라색 무와 함께 나왔습니다. 닭은 숯불에 양념 없이 구웠는데 정말 맛있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셋이서 하나만 시켰는데 잘못된 판단이었습니다. 너무 작게 시킨 것이지요.

이전에 몇 번 메뉴 선택에서 실패해 아까운 돈만 날렸기 때문에 나름대로 신중하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이었는데 의외로 맛있어서 한 그릇 더 시켰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양이 많이 부족한 편이었습니다. 부족한 배를 난에 야채와 치즈를 싸먹으면서 채웠습니다.

고기를 다 먹고 접시에 남아있는 밥을 어떻게 먹을까 궁리하고 있을 때 옆에는 우리를 앞서가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함께 온 일행인데 이 선생님은 야채를 손으로 대충 자르고 가방에 챙겨온 초고추장을 풀어서 밥과 함께 비볐습니다. 그리고 그 비빔밥을 혼자 먹지 않고 사람들에게 한 숟가락씩 맛보게 했는데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매운 맛이면서 또한 맛있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그 선생님처럼 모두 밥을 비빈다고 난리였고, 작은 애 하나도 그 대열에 끼어들었습니다.

"태어나서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처음이야."

밥을 비벼서 첫 숟가락을 떠먹은 후 하나의 평가입니다. 그래서 우린 이 야채를 잘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한 번 더 해먹었습니다. 궁하면 통한다고 음식 때문에 이란에서 많이 고생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맛있는 음식이 생겨났습니다. 특히 이날 식당에서 먹은 음식은 처음으로 맛있게 먹은 이란 주식이었습니다. 이 음식에 주술이라도 섞였는지 이후에는 이란 식당에서 뭘 먹어도 맛있었습니다.

예쁜 사람은 뭘 해도 예쁘다고 하더니 '나이스 가이'는 정말 우리가 좋아하는 일만 하더니 역시 음식점도 지금까지 먹어본 이란 음식사에 한 획을 그을 만큼 맛있는 집을 소개시켜주었습니다. '나이스 가이'가 추천해준 맛있는 음식 때문에 난  이란 음식을 좋아하게 됐으며 이란식 레스토랑에 대한 두려움도 극복하게 됐습니다.

정말 우리는 오늘 하루 버스기사를 잘 만났습니다. 버스기사의 역할이 이렇게 대단한 줄 몰랐습니다. 목적지까지 차만 태워준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버스기사로 인해 하루가 행복해질 수도 있고, 불행해질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다음에 야즈드에서는 오늘 만난 '나이스 가이'와 반대되는 지점에 있는 버스기사를 만나게 되는데 그의 이상한 행동으로 인해 '나이스 가이'의 가치를 더욱 깨닫게 됐습니다.

'나이스 가이'는 정말 완벽한 버스 기사였고, 그의 따뜻한 배려와 친절로 15명의 이방인 여자들은 완벽하게 행복한 하루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했던 것처럼 앞으로도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선물하겠지요.
#이란 #페르세폴리스 #이란레스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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