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도 아직 못뜬 딱새의 새끼들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은 주둥이였다. 자신의 몸통보다 큰 주둥이를 쫙 벌리며 어미새의 먹이를 받아먹었다.
정부흥
나중에 <산새도감>을 통해 알게 되었지만 이웃집 아줌마라고 생각한 어미 딱새는 수컷이었다. 수컷은 엄마 딱새에 비해 적극성이 떨어져 우리가 거실에 앉아 있을 땐 두려워 새끼들에게 접근하지 못했다. 깃털의 색깔도 암컷에 비해 선명함이 떨어져 아름다움이 덜했다.
존재하는 것들 상호 간에 얽힌 인연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의 모든 존재들은 보이든 보이지 않든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인간의 입장에서 이러한 상호 작용이 긍정적이기도 하고 부정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자연의 섭리는 모든 존재들이 그물막 같은 인연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어 상호 영향을 미칠 뿐 그것이 좋고 나쁜 개념이 없다. 조그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딱새와 나의 관계도 그렇다.
딱새가 우리 시랑헌에 터를 잡고 잘 살기를 바란다. 어미 딱새에게 진 빛도 있고 해서 시랑헌에서 살게 되면 새 집을 많이 만들어 줄 생각이다. 딱새의 먹이는 밤톨에 알을 까는 곤충들과 고구마, 상치, 등의 채소 잎을 갉아먹는 애벌레들이다. 주변의 해충들을 처리하는 고마운 천적이다.
올해에는 처음으로 살구나무에 탐스런 살구가 몇 개 열렸다. 건전하게 자라라고 두 개만 놔두고 나머지는 따줬다. 다른 과일나무도 한두 개씩 남기고 따줬다. 매번 시랑헌을 오갈 때마다 살구, 복숭아, 배, 왜성체리, 불루베리 열매가 잘 여물어가는 것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어느 날 아침 탐스런 살구와 다른 과일들을 보러 집터에 내려간 나는 큰 허탈감을 맛봐야 했다. 살구 씨는 땅에 떨어져 있고 생각하면 침부터 나는 살구 열매는 없어져 버렸다. 딱새의 짓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으나 새들의 소치이다. 농약이나 화학 비료를 하지 않은 친환경 작물들은 혈당조절을 해야 하는 나에겐 소중한 양식이다. 작고 못 생긴 것들이지만, 잘 익은 불루베리나 토마토는 언제나 새들의 몫이다.
지동설(地動說)을 주장한 천문학자이며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편 코페르니쿠스의 우주의 평등한 입장에서 본다면 내가 밤 밭에 설치한 포충등에 타 죽고 포집(捕執)되는 날벌레들의 학살현장이 나찌의 수용소와 근본적으로 뭐가 다른가? 역사적으로 밝혀진 사실에 의하면 인간 중심의 사고방식은 언제나 거대한 범죄와 시행착오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나는 시랑헌의 동트기 전 여명의 분위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새벽 4시가 되면 시랑헌 밖으로 나와 일출을 기다리며 참선을 한다. 한참 앉아 있다 보면 언젠가 닥칠지도 모를 새들과 생존경쟁, 고구마 밭을 초토화시키는 멧돼지와 관계정리, 요소 비료가 필요해 보이는 강냉이 밭과 타협 등 결국 인간인 내가 중심인 망상의 망상들이 꼬리를 문다. 결국 헛된 생각에 젖어 자리에서 일어나곤 한다.
딱새새끼들이 자라서 떠난 자리에는 어지럽게 널려진 새똥과 부서져 이리저리 널부러진 둥지의 잔해들이 나와 집사람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랑헌을 떠난 딱새들은 시랑헌을 지네들 소중한 고향으로 기억이나 할까? 뒤에서 그들의 탄생을 축하하고 성장을 기원한 할아버지 할머니인 우리들의 존재는 그들에겐 뭐가 될까?
코앞의 이해관계에 얽혀 상호간의 야합과 배반의 인간속성이 싫어 이를 비껴 서려고 산속으로 들어왔건만 정과 사랑이 있는 인간세상과 달리 자연은 훨씬 더 현실적이고 적나라한 비정의 세계이다. 자연에 순응하고 일치된다는 것은 혹시 냉혈동물이 되는 것이 아닌가 두렵다.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건가? 모르니 오직 나를 낮추고 행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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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연구단지에 30년 동안 근무 후 은퇴하여 지리산골로 귀농한 전직 연구원입니다. 귀촌을 위해 은퇴시기를 중심으로 10년 전부터 준비했고, 은퇴하고 귀촌하여 2020년까지 귀촌생활의 정착을 위해 산전수전과 같이 딩굴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10년 동안은 귀촌생활의 의미를 객관적인 견지에서 바라보며 그 느낌을 공유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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