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머리 자르고 산허리 꺾고 말뚝 박아

[09-023] 일제의 민족정기 말살만행, 옛 낙안군 지역에서도 저질러져

등록 2009.08.18 14:03수정 2009.08.18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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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낙안군 지역에서의 일제만행 ⓒ 서정일


일제가 한국을 침탈 병합한 40여 년의 세월동안 우리의 국토는 어떤 수난을 당했을까? 일제강점기 이후 한국은 일제의 계획적 수탈과 무분별한 도벌, 전쟁 등으로 국토가 피폐해지는 수난을 겪었다. 그런데 옛 낙안군 지역에도 그런 수난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특히, 일제강점기때 우리의 고유사상을 미신으로 규정하고 말살하기 위해 혈안이 돼 전국의 풍수지리 자료를 근거로 명혈의 지맥을 자르고 정기 맺힌 명산에 쇠말뚝을 박는 등의 '민족정기 말살만행'이 옛 낙안군 지역에서도 계획적으로 진행됐음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용머리 잘린 순천시 별량면 구룡(용두)마을

 용머리가 잘린 순천시 별량면 구룡(용두)마을
용머리가 잘린 순천시 별량면 구룡(용두)마을서정일

순천시 별량면에는 '구룡(용두)마을'이 있다. 아홉 마리의 용이 산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마을은 여자만과 맞닿는 바닷가에 있으며 인근 산의 형세는 용의 몸통과 꼬리를 닮아있고 모두 바다를 향하고 있다.

그런데 그 중 특이하게 바닷가로 머리를 향하고 있는 용 한 마리가 있는데 이 용이 바로 일제에 의해 머리가 잘렸다는 용이다. 용머리 모양의 바위는 마을 중앙부에 자리하고 있다. 머리가 잘린 용은 고개를 오른쪽으로 떨어뜨리고 입을 벌린 채 죽은 듯 누워있다. 

마을주민들에 의하면 지난 1920년대 일제가 순천-광주 철로를 놓으면서 용의 목 부분을 잘라놓았다고 한다. 이후, 마을은 두 부분으로 나뉘고 철로 안쪽 바닷가 쪽 마을은 섬마을처럼 고립되고 급격히 쇠락하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마을주민들은 일제가 용머리를 잘랐기 때문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예로부터 용은 제국의 신성한 힘을 상징하는 것으로 역대 중국 황실의 문장으로도 사용됐으며 하늘을 나는 능력을 갖고 있고 자기의 마음대로 몸을 크게 하고 눈에 보이지 않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하여 신성한 자연력의 하나로 여겨져 왔다.

구룡마을 주민들은 용을 닮은 산세와 마을 중앙부에 있는 용의 머리가 마을과 바다를 지켜주는 신성한 힘이 있다고 믿어왔는데 결국 철로가 놓이면서 목 부분이 잘려 그 힘을 잃고 말았다고 분개하고 있다.


산허리 꺾인 벌교읍 전동3구 작고개재

 산허리가 잘린 벌교읍 전동3구 작고개재
산허리가 잘린 벌교읍 전동3구 작고개재서정일

벌교읍 전동3구는 산이 마을을 감싸고 있다. 징광산 줄기가 내려와 노강산에서 부용산으로 이어지는데 그 중간에 일명 '작고개재'라는 고개가 하나 있다. 이 고개는 옛 낙안군 주민들이 보성군으로 넘나들던 중요한 고개인데 일제강점기 때부터 90년도까지 잘려있었다.

이 마을 주민인 선영갑씨는 "일제강점기때 벌교에서 인물이 나지 못하도록 산맥 줄기를 잘랐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로 인해 벌교 부용산은 줄기가 잘려 혈맥이 통하지 않아 죽어버린 산이 됐고 결국 벌교의 몰락으로 이어졌다고 믿고 있다.

벌교가 40년대 이후 지금까지 쇠락을 계속하는 이유 중의 하나를 '작고개재'가 잘린 것에서 찾고 있는 주민들, 그들은 당시 벌교에서 인물이 나지 않도록 일제가 이런 만행을 저지르면서 벌교에서 인물의 씨가 말랐다고 주장하고 있다.

잘려진 이 고개는 다행스럽게도 일제가 저질러놓은 민족정기 말살만행을 가슴 아파 하던 인근 청룡마을, 한 지역 주민에 의해 90년대 말에 메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개인 사비를 들여 공사를 마무리해 놨음에도 아직도 그 고개에는 나무가 제대로 자라지 않고 있다.  

오봉산, 제석산, 백이산의 쇠말뚝

 일제가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쇠말뚝을 박았다는 백이산
일제가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쇠말뚝을 박았다는 백이산서정일

필자의 '낙안군 101가지 이야기' 연재가 시작된 이후, 지역민은 물론 출향인들로부터 다양한 지역 이야기 제보가 들어왔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낙안 오봉산, 백이산, 벌교 제석산에 일제가 박아놓은 쇠말뚝이 많다는 얘기다(강금배씨 제보).

이후, 지역민들이 들려주는 쇠말뚝 얘기를 들어보니 "지난 80년대부터 뜻있는 지역민들이 주변산을 여러 차례 뒤져봤지만 찾지 못했다"면서 "작은 쇠말뚝이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깊숙이 숨겨져 쉽게 찾지는 못했지만 분명 일제가 낙안, 벌교 주위 산에 많은 쇠말뚝을 박았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증언했다.

비록 이 지역에서 실제 쇠말뚝을 찾는데는 실패했지만, 이미 일제가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전국 곳곳의 산에 쇠말뚝을 박았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임을 들어 이 지역에도 쇠말뚝을 박아뒀지만 찾지를 못한 것으로 주민들은 확신하고 있다. 또 그들은 하루빨리 쇠말뚝을 찾아 뽑아내야 지역의 정신이 바로서고, 지역이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일제강점기때 용머리가 잘리고, 산허리가 꺾이고, 혈맥에 쇠말뚝이 박혀 인물이 나지 않고 쇠퇴해 간다는 지역민의 믿음과 주장은 굴곡 많은 옛 낙안군 지역의 변천사와 맞물려 지역민들 사이에서 확신으로 퍼져 있다. 실제로 일제가 한국의 민족정기 말살을 목적으로 전국적으로 이런 만행을 저질렀다는 점을 생각하면 "나라를 빼앗기면 국민만 망가지는 게 아니라 국토도 망가진다는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이구동성 입을 모으고 있다.

낙안군과 낙안군 폐군(廢郡)
현재의 순천시 외서면을 비롯해 낙안면, 별량면 일부, 보성군 벌교읍 그리고 고흥군 동강면, 대서면 일부의 땅은 옛 낙안군이었다. 101년 전인 지난 1908년 10월 15일, 일제는 항일투쟁무력화, 동학혁명진원지분산, 침략거점도시화를 위해 낙안군 자체를 없애버리고 주민들을 인근 지역 세 곳으로 강제 편입시켰다.

덧붙이는 글 | 예고: [09-024] 관광지에서는 식사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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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예고: [09-024] 관광지에서는 식사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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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안군 #남도TV #스쿠터 #낙안 #벌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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