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각에 갇힌 마애불은 슬프다

[보성 유신리 마애여래좌상] 문화재 복원과 보호, 좀 더 신중했으면…

등록 2009.08.21 08:59수정 2009.08.21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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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성 유신리 마애불 찾아가는 길. 보성 율어면 들판에 벼들이 싱그럽다.
보성 유신리 마애불 찾아가는 길. 보성 율어면 들판에 벼들이 싱그럽다.전용호

마애불 찾아가는 길

보성을 가로지르는 18번 국도에서 벗어나 58번 지방도로를 따라 보성강을 건너고 율어로 들어선다. 소설 <태백산맥>에 나오는 율어는 해방구다. 2부의 시작이며, 소설의 무대를 벌교에서 더 넓은 공간으로 확장시켜나간다. 너무나 짧은 면소재지를 지난다. 잠깐 내려 볼 새도 없이 지나쳐 버린다.


산들로 에워싼 들판을 가로질러 달린다. 간간히 보이는 마을은 한여름에 숨을 죽이듯 조용하다. 창밖으로 불어오는 바람에는 논에서 풍성해지는 벼들의 싱그러움이 실려 온다. 가로수에 가려 잘 보이지 않은 안내판을 발견한다. 보물 제944호로 지정된 보성 유신리 마애여래좌상(寶城 柳新里 磨崖如來坐像) 이정표다.

 율어를 가로지르는 58번 지방도로. 마애불 찾아가는 이정표
율어를 가로지르는 58번 지방도로. 마애불 찾아가는 이정표전용호

 마애불이 있는 일월사. 한창 중창불사 중이다.
마애불이 있는 일월사. 한창 중창불사 중이다.전용호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들어간다. 버스정류장도 보인다. 이 길로 버스가 다니나 보다. 마애불을 찾아가기가 쉽지는 않다. 가다보면 계속 갈라지는 길들을 물어갈 수도 없다. 한적한 길에 사람 만나기도 힘들다.

어! 마애불 얼굴이

일월사가 있음을 알려주는 표지판을 따라 올라가니 절집이 보인다. 절집은 한창 공사 중이다. 많은 건물들이 지어지고 있다. 마애불이 어디에 있을까? 절집 아래로 커다란 바위들이 군데군데 있고 지붕이 있는 건물이 보인다. 벽과 문이 없는 것으로 봐서 마애불 보호각이다.

 마애불이 있는 주변 풍경. 커다란 바위들이 군데군데 놓여 있다.
마애불이 있는 주변 풍경. 커다란 바위들이 군데군데 놓여 있다.전용호

 보성 유신리 마애여래좌상이 있는 보호각
보성 유신리 마애여래좌상이 있는 보호각전용호

마애불에 가까이 갈수록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게 아닌데? 보호각 안에 모셔진 커다란 마애불은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광배며, 대좌도 윤곽은 보이지만 마애불의 웅장함과 섬세함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사진에서 보았던 마애불의 아름다움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안내판에는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있고 부드러우면서도 생동감이 넘치는 고려 초기의 우수한 마애불상이다'라는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였지만 전혀 느낌이 오지 않는다. 문화재 보호를 위해 오래된 돌옷을 벗겨내고 보호각 안으로 모셔진 마애불은 그저 깨끗할 뿐 문화재와 예술로서의 가치는 잃어 버렸다.

 보호각 안에 보셔진 보물 제944호인 보성 유신리 마애여래좌상.
보호각 안에 보셔진 보물 제944호인 보성 유신리 마애여래좌상.전용호

 문화재청에서 알려주는 보물 제944호 보성 유신리 마애여래좌상. 보호각에 모셔지기 전 모습이다.
문화재청에서 알려주는 보물 제944호 보성 유신리 마애여래좌상. 보호각에 모셔지기 전 모습이다.문화재청

문화재 보호에 대한 논란


가끔 문화재 보호 방법에 대한 논란이 있다. 보호각을 만들어 놓아 제대로 감상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유리 건물 안에 들어있는 원각사지 석탑이 그렇고, 유리 보호벽을 만들어 놓은 석굴암이 그렇다. 도피안사 철불을 복원한다며 개금된 금칠을 벗겨낸 일이라든지….

유신리 마애석불좌상은 문화재보호를 위한 여러 가지 조치를 취했다. 보호각을 만들고 돌옷을 벗겨내었다. 그러다 보니 전혀 다른 모습이 되어버렸다. 오랜 세월동안 입고 있었던 돌옷을 벗어버림으로 인해 마애불의 고고한 멋을 잃었고, 보호각으로 인해 주변과 어울리지 않은 새로운 조형물이 되어 버렸다.

 보호각 안에 모셔진 마애불은 무척 슬픈 모습이다. 비바람은 막을 수 있었으나 하늘도 볼 수 없는 아픔이 너무나 크다.
보호각 안에 모셔진 마애불은 무척 슬픈 모습이다. 비바람은 막을 수 있었으나 하늘도 볼 수 없는 아픔이 너무나 크다.전용호

보호를 위해 만든 보호각이 그 문화재의 가치를 살리지 못해 논란이 된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문득 최근에 서산마애삼존불상의 보호각을 철거해 백제의 미소를 되찾은 일이 떠오른다.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 주릿재

아쉬움을 뒤로 하고 벌교로 향한다. 구불구불 재를 넘어간다. 율어와 벌교를 이어주는 주릿재다. 정상에는 전망대와 태백산맥 문학비가 서있다. 문학비에는 '이곳 주릿재는 민족 분단의 '허리잇기'인 저 태백산맥을 향하는 첫 관문으로 선택되어 제2부를 시작하는 장소가 되었다'라며 태백산맥 문학비를 세우게 된 이유를 설명해 놓았다.

 보성 율어와 벌교를 이어주는 주릿재.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 문학비가 서있다.
보성 율어와 벌교를 이어주는 주릿재.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 문학비가 서있다.전용호

 소설 <태백산백>의 무대 주릿재에서 바라본 율어.
소설 <태백산백>의 무대 주릿재에서 바라본 율어.전용호

벌교에 계엄군을 주둔시키고, 율어를 해방구로 만들어 놓고서, 주릿재를 사이에 두고 왕래를 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지금의 남북 대치상황과 비슷하다. 심재모와 염상진 그리고 가교역할을 하는 김범우. 소설 속 주인공들이 살아 숨 쉬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전망대에 올라서서 율어를 내려다본다. 평온한 들판에 푸른빛만 아른 거린다.
#보성 유신리 #마애여래좌상 #태백산맥 #율어 #주릿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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