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경미한 지체 장애를 지닌 장애자다. 그 사실을 내 스스로 인정하는데도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금은 어디서든 장애인의 모습을 흔히 보지만 내가 어릴 적만 해도 주변에 중증장애를 가진 자녀나 형제를 둔 사람들은 장애인을 집 밖에 내보내는 일은 흔치 않았다. 집 밖은커녕 집안에서도 골방에 가둬두거나 숨겨 가까운 친인척이 아니고는 이웃에서조차 그들의 존재조차 모르게 하는 경우도 많았다.
심한 경우 멀쩡한 가족 구성원에게 피해를 줄까봐 호적에서조차 그들의 존재를 빼버려 실체는 있으되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 되어 그림자처럼 살다 가는 경우도 흔했다. 장애를 지니고 태어났다는 이유로 정신적으로 실제적으로 두 번씩이나 버림받는 경우가 허다했던 것이다. 만일 당신이 비장애인이고 가족중에 장애인이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행동하게 될까?
조재도의 <이빨자국>은 장애인 형을 둔 중학교 2학년 남학생의 시선으로 그려진 자전적 소년 성장소설이다. 저자는 실제로 장애를 지닌 형을 두고 있어 더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었다.
장애인 형의 존재를 숨기고 싶은 사춘기 소년 승재, 그의 마음은 형에 대한 연민과 미움이 아주 복잡하고 미묘하게 결합되어 있다. 공들여 만든 숙제로 가져가야 할 공작 과제물을 부셔버리고 이빨로 물어뜯는 형, 농활대나 타지 사람들이 오면 밤낮 그들을 따라 다녀서 가족들은 집안에만 있게 만드는 형은 한없이 밉기만 하다. 그러나 아버지에게 죽도록 두들겨 맞거나 길을 잃고 헤매다 초주검이 돼서 들어와 짐승처럼 벌벌 떠는 모습을 볼 때면 불쌍한 마음에 눈물을 흘리며 형의 방을 청소해 주기도 한다.
몸 한쪽을 쓰지 못하다 보니 형은 무엇이든 손대신 이빨로 해결하려 했다. 장갑을 낄 때도 이빨로 물고 잡아당겼다. 싸움을 할 때도 한 손으로 대적하다 안 되면 이빨로 물어뜯었다.
그러다 보니 형은 늘 침을 흘렸고 입이 헐어 성할 날이 없었다.
그런 형을 볼 때마다 나는 마음이 아팠다. 다른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형이 말썽을 을으켜 엄마 속을 썩이거나 아버지한테 혼나는 것을 보면, 왜 우리 집에 저런 형이 태어났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형이 원망스러웠다.
형의 존재를 남들이 알까봐 전전긍글하는 승재인데, 어느 날 형이 길을 잃어 마을이 발칵 뒤집히는 사건이 발생한다.
행불보다는 아예 죽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만일 형이 죽어서 발견한다면, 나는 슬퍼할까? 지금까지 나는 누가 죽어서 한 번도 슬퍼한 적이 없는데. 슬퍼한다면 어떻게 슬퍼해야하지? 눈물은 날까? 형이 죽었는데도 눈물이 안 나오면 어떡하지? 아냐, 죽었을 리 없어. 그럼 죽지 않고 영원히 찾지도 못한다면?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른 채 집에 없다면?
승재는 마음이 복잡하다. 전교생에게 전단지를 돌려달라고 하면 형을 찾을 수 있겠지만 그 순간 자신에게 장애인 형이 있다는 사실이 전교생에게 알려지게 된다. 만일 승재 입장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그것도 한참 예민한 사춘기라면 말이다. 고민하던 승재는 용기를 내어 형을 찾기 위해 전단지를 배포할 결심을 한다.
선생님이 전단지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전단지에는 '사람을 찾습니다'라는 제목 아래 형 사진과 인적사항이 큼직하게 적혀 있었다.
"그래 이걸 학교 아이들에게 모두 나눠준단 말이지?"
"네."
"좋은 생각이다. 그리고 승재, 너도 어려운 결정을 내렸구나. 너 만한 나이에 장애인 형이 행방불명됐다는 걸 아이들에게 알리기는 쉽지 않았을 텐데."
선생님이 내 어깨를 다독거리며 잘했다고 격려했다.
"처음에 승재는 이거 안 하려고 했어요."
종민의 말에,
"그랬겠지. 자기 형이 장애인이라는 걸 얘기하고 싶은 사람이 어딨겠어?"
선생님이 다시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하지만 이런 어려운 문제도 한번 밖으로 공표하고 나면 별것 아니야. 형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은 감출 일이 아니야. 중요한 건 행방불명된 형을 빨리 찾는 일이지. 그리고 이일은 내가 하는 것보다 너희 담임선생님을 통해 하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선생님께 가족사를 고백하고 전단지를 돌리려고 할 때 형을 찾았다는 연락을 받는다. 어렵사리 집에 돌아온 형은 이웃집 여자를 겁탈했다는 누명을 쓰고 이번에는 가족에 의해 시설에 보내질 운명에 처한다. 부모조차 자식을 믿기보다는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모습을 보며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 다시 생각해 본다.
사실 이웃집 여자는 사기 결혼을 한 뒤 돈과 패물을 챙겨 도망간 것이다. 승재네 가족들은 누명을 벗은 형을 시설에 보내는 일을 겨울이 지나고 생각해 보기로 한다. 승재에겐 형이 물어서 생긴 이빨자국이 있다. 이빨 자국은 장애를 지닌 형의 존재에 대한 상징이다. 이빨자국은 세월이 흐르면 희미해지다가 언젠가는 없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장애인에 대한 뿌리깊은 편견과 역시 세월 속에서 점차 사라질 수 있을런지...
이 소설은 장애를 지니고도 내스스로 장애임을 거부하려했던 시간들을 떠올려 주었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두려워 스스로 정체성을 부정하려 했던 부끄러운 시간들... 장애인 스스로 권리를 되찾으려 노력하지 않는다면,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시각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장애와 비장애에 대한 편견의 벽을 부수게 만드는 멋진 성장 소설이다.
2009.08.23 10:20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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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빨 자국
이언 랜킨 지음, 최필원 옮김,
오픈하우스,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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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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