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겉표지
예담
소설가 박민규의 이력은 화려하다. <지구영웅전설>로 문학동네작가상을,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으로 한겨레문학상을, <카스테라>로 신동엽창작상을 수상한 그는 단편문학상 후보에도 곧잘 이름을 올린다. 독자들의 사랑도 화려하다. 그의 소설은 매번 '화제'가 됐다. 소설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것도 그 일환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것은, 그 화려함을 만드는 것은, 그의 소설이 '마이너'를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이제껏 그가 보여줬던 소설들을 생각해보면 그를 일컬어 '대한민국 마이너리티들의 히어로'라는 말이 무색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승은커녕 꼴찌만 하는 사람들,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건 꿈도 못 꾸고 그저 취업이나 했으면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그는 그만의 시원한 한방으로, 통념을 뒤엎는 엉뚱함과 그로 인한 통쾌한 뒤집기로 '마이너'들에게 즐거움을 줬다.
그가 최근에 선보인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어떨까? 영락없다. 이 소설 또한 박민규식으로 마이너들을 위로하는 작품이다. 소설은 화자가 눈 오는 어느 날을 추억하면서 시작한다. '나'는 어떤 여자를 사랑했었고 그 마음을 전했다. 눈이 내리던 밤, 음악이 함께하던 1980년대의 서울 거리에서 사랑을 말했으며 또한 받는 순간이었다. 누가 보더라도,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그 사랑이 만들어지기까지 참으로 어려운 일이 많았다. 누구의 사랑이 쉽게 만들어 지겠냐 만은, 그들의 사랑은 분명 어려웠다. 왜냐하면, 여자가 세상에서 가장 못생겼다고 말할 수 있는 '추녀'였기 때문이다. '나'가 그녀를 처음 본 건 백화점의 주차장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였다. 그녀는 사람들이 말 걸기를 포기할 정도로, 함께 걸으면 창피해할 정도로, '추녀'라는 단어를 자연스럽게 연상시키는 외모를 지녔다.
그런데 '나'는 왜 그녀에게 끌렸던 걸까. 누군가는 그것을 두고 동정심이라고 하기도 하고 또는 연민이라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의 마음은, 그녀에 대한 그것은 분명히 사랑이었다. 어느 날 용기를 내어 '나'가 그녀에게 말을 건다. 그때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할까. 도망친다. 그녀는 부끄러웠던 것이다. 또한 이제껏 살면서 받았던 많은 상처 때문에 생긴 방어본능 때문에 그리한 것이다.
추녀였던 그녀가 받았던 상처란 무엇이었던가. 남자들은 가위바위보를 해서 그녀에게 말을 걸어보는 장난을 하곤 했다. 남자들은 그녀를 여자로 보지 않았다. 외모를 보고 그녀의 모든 것을 추하다고 생각하며 놀렸고 비웃었다. 여자들도 그랬다. 그녀들은 그녀를 소외시켰고 인간관계를 쌓지 않으려 했다. 그녀와 말을 섞으면, 자신들도 못생긴 사람이 된다고 생각이라도 하는 듯, 피했고 또한 수군거렸다.
말이 상처가 될 수 있을까. 그녀에게는 자신을 향한 모든 말이 상처였다. 눈빛도 상처가 될 수 있을까. 그녀에게는 그랬다. 그녀에게는 세상의 모든 소리와 시선이 상처가 됐다. 그런 그녀에게 어느 날 갑자기 멀쩡하게 생긴 남자가 말을 걸었으니 얼마나 놀랐을까. 한편으로는 또 장난친다는 생각에 얼마나 두려웠을까. 그렇기에 남자의 '진심'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들의 마음은 어긋나기만 했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그러한 사랑의 이야기다. 부끄러워하지 않고 사랑하기까지, 참으로 많은 시간을 겉돌아야 했던 어느 마이너들의 아름다운 사랑을 담고 있다. 또한, 주차장 아르바이트와 백화점의 엘리베이터걸들의 이야기와 휑한 바람 소리가 멈추지 않던 서울의 어느 뒷골목의 풍경과 치킨집에 걸린 '희망'을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박민규다운 소설인 것이다.
박민규의 소설을 보면 '엉뚱'하다는 생각을 곧잘 했다. 난데없는 이야기로 그만의 미학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서는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대신에 진지한, 한없이 진지한 사랑의 두근거림이 있다. 이쯤 되면 세상의 마이너들은 다시 한 번 가슴을 두근거리게 되지 않을까? 박민규 장편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또 한 번 누군가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어떤 힘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