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미래, '시는 죽고 소설은 살아남을 것'

등록 2009.10.05 10:17수정 2009.10.05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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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때 소설 쓰기가 취미였던 문학소년이었다. 신춘문예를 조기에 휩쓸고, 최연소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터무늬 없는 꿈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문학에 대해 환멸을 느끼기 시작했다. 지금은 절필(?)한 상태다.

사르트르는 64년 르몽드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죽어가는 어린아이 앞에서 <구토>는 아무런 힘도 없다." 이것은 사르트르가 당시 유행하던 누보로망 사조를 공격하는 발언이었다. 쉽게 말해 순수문학은 더 이상 효용성이 없다는 것이다.


이에 장 리카르두는 문학은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 짓는 특별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문학은 인간이 고등적 사유의 토대를 마련해준다는 것이다. 그는 문학은 어린아이의 죽음에 의미를 부여하고, 만약 문학이 없다면 그 어린아이의 죽음은 비참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종석은 일전에 사르트르와 리카르두를 모두 거론하면서 둘 다 옳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나는 사르트르만 옳다고 말하고 싶다. 반드시 문학만이 다른 동물과 구별짓는 고등적 사유의 매개체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점에서는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이 훌륭할 수도 있다. 굳이 인류에 대한 심오한 사유를 할 때, 문학작품을 읽는 것보다는 철학서 한 편이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문학당의정설로 문학의 효용성을 주장했다. 꿀맛과 쓴 약을 섞어놓은 문학은 어려운 교훈을 재미있게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적합한 것은 문학이라기 보다는 영상매체일 것이다. 나는 김영하의 소설을 재밌다는 천박한 이유로 좋아하지만, 요즘 유행하는 <지붕뚫고 하이킥>을 보는 것이 더 재미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이 시대에 효용성 없는 문학은 경쟁에서 도태되 역사의 뒤꼍으로 사라질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시는 사라지고 소설은 살아 남는다. 유럽에선 시인이라는 직업을 가진 자가 없을 정도로 시가 실종됐고 잘 팔리지도 않는다. 사실 한국에는 시인이 수없이 많다. 문지와 창비라는 양대산맥 출판사에서도 매해 시집이 쏟아져나오고, 그 외 덜 알려진 출판사에서도 시집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나온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시를 읽는 사람은 없다. 공급은 많은데 수요가 없는 것이다. 1928년 대공황의 조짐이 있다고 해야하나?

반면에 소설은 다르다. 소설은 서사적 특성 때문인지 몰라도 수요자가 꽤 는 편이다. 베스트셀러 순위에 자주 오르는 분야도 소설이고 대학교 도서관 대출 순위 상위권에 있는 책도 소설이다.


아까 절필이라고 말했지만 내가 문학에 대해 뜻을 아주 버린 것은 아니다. 허황된 망상이긴 하지만 소설을 쓴다면 그저 잘 팔리는 소설을 쓰고 싶다. 내 소설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스테디셀러 목록에 올랐으면 좋겠다. 그래서 보고 싶은 책도 잔뜩 사고, 하고 싶은 공부도 실컷 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고종석의 <코드 훔치기> <서얼단상> 참고


덧붙이는 글 고종석의 <코드 훔치기> <서얼단상> 참고
#소설 #문학의 미래 #시 #사르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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