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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행사에 함께 한 저명인사의 찬조금은 금일봉이란 이름으로 처리해주는 것이 관례인 듯하다. 하지만 나는 금일봉이란 말을 접할 때마다 그 금액이 도대체 얼마나 될까 하는 궁금증이 늘 따른다. 그쪽 세계와는 먼 생활을 하고 있을 뿐더러 또 금일봉이란 이름으로 찬조를 한 적도 없는 사람에겐 그런 궁금증은 당연할 것이다.
얼마 전, 그림을 그리는 한 선배의 회갑 모임이 있었다. 본인과는 무관하게 옛날 야학을 함께 했던 후배들이 마련한 모임이었다. 사람의 자연 수명이 많이 연장된 오늘날, 전근대시대 때나 찾을 웬 회갑이냐고 할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 선배의 회갑 이름을 빌려 과거 함께 활동했던 사람들이 만나 회포나 풀자는 의미 정도의 모임이었다. 19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반 대학생 또는 공장에 다니는 노동자의 신분으로 야학이란 곳에서 만나 생활들을 함께 했으니 그 추억도 의미가 얕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회갑 모임에 40명 가까운 사람들이 모였다고 하니 그 열기를 대강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모두들 현실을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어떤 이는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어떤 사람은 의사로 열심히 인술을 베풀고 있으며, 또 언론계에 있는 사람, 민중 미술로 예술 혼을 불태우고 있는 사람, 시민운동을 하는 활동가 등 다양한 방면에서 더불어 사는 삶을 모범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생산 현장에서 건강한 노동자로 삶을 일구어 가는 사람들도 또한 빼놓을 수 없으리라.
나는 이런 사람들이 30여 년 전의 마음을 갖고 모이는 회갑연에 참석을 할 수 없었다. 처음 안(案)을 내놓고 그 모임의 의미에 찬성을 했으면서도 모임 날짜가 공교롭게도 나의 참석을 어렵게 만들었다. 목회자인 나에게 토요일로 날짜를 잡은 것까지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다리 수술을 받고 병원에 입원 중에 모임이 잡혀서 도저히 참석할 수 없었다. 참석 못하는 것이 아쉽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했다. 생각 끝에 한 후배를 통해 음식 장만에 보태라며 10만원을 송금했다. 이런 성의라도 표시하는 것이 회갑을 맞는 선배에게 그리고 모임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의 도리라도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며칠 후 나는 그 모임 카페에 들어가서 회갑 모임에 대한 글을 읽고 고소(苦笑)를 금할 수 없었다. 모임 장소를 고지(告知)하면서 약도를 그려 넣고 카풀 노선을 정리해 놓은 뒤 덧붙임 글로 이렇게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이명재 목사님께서 참석 못하는 대신 금일봉을 보내주셨습니다."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은 이 금일봉이라는 말에 대단한 찬조를 한 것으로 착각할 수도 있을 터, 나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적은 액수의 성의 표시에 금일봉이라는 명칭을 붙여주었기 때문이다.
내용의 타당성 여부는 차치하고 내 생전 찬조를 하고 '금일봉'이란 말은 들어본 것은 처음이다. 사회의 지도층인사들에게나 친근할 이 금일봉을 격에 맞지 않게 나에게 붙여준 그 후배에게 고마워해야 할지 아니면 혼을 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그 후배가 나의 성의를 진정으로 고맙게 생각하고 웃음용으로 이런 표현을 쓰지 않았나 싶다. 후배들이 한 선배를 위해 회갑 모임을 주선한 것도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닌데, 나 개인적으로는 선배의 회갑 모임이 금일봉을 쾌척한(?) 사건으로 오래 기억에 남아 있을 것 같다.
연말연시가 되면 이웃돕기 등 더불어 살고자 하는 운동이 일어나고 십시일반(十匙一飯) 성금들을 내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유독 지도자연하는 사람들의 성금은 액수를 밝히지 않은 채 '금일봉'이란 이름으로 명단에 올리는 것을 자주 본다. 이런 것들이 나와는 먼 일이면서도 한편 금일봉 컴플렉스가 없지 않았다는 것도 솔직한 심정이다. 나에게 붙여준 한 후배의 금일봉이라는 명칭은 앞으로 오랜 기간 두 번 다시 나와는 동행하지 못하는 단어가 될 것이다. 이런 것을 두고 전무후무(前無後無)한 일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나의 네이버 블로그 '더불어 사는 삶'에도 올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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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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