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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낮까지는 도서관을 함께 지키면서 아기하고 놀고, 해가 기울기 앞서 골목마실을 즐깁니다. 한창 가을빛을 뽐내고 있는 골목동네이기에, 요사이 한두 주가 아니면 느낄 수 없는 새롭고 싱그러운 모습이 가득합니다. 봄에는 봄대로 빛이 곱고 여름에는 여름대로 빛이 맑으며 가을에는 가을대로 빛이 따스하며 겨울에는 겨울대로 빛이 포근합니다. 금강산이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따라 빛깔이 다르다고 했는데, 한라산이나 백두산도 철 따라 빛이 다를 테며, 한강과 동서남쪽 바다를 비롯해 인천 골목길 또한 철 따라 빛이 다릅니다. 이 다른 빛을 고즈넉하게 껴안을 수 있다면 골목동네를 재개발하고 재정비하고 재생사업 한다며 법석을 떨더라도 지킬 곳은 지키면서 고칠 곳은 고칠 수 있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동인천우체국 옆으로 문화반점 사잇길을 걷습니다. '배다리 산업도로' 공사터 우둘투둘한 길입니다. 옆지기와 늘 지나다니던 자리인데, 이 공사터 길가 한쪽에 나무전봇대가 우뚝 서 있는 모습을 봅니다. 뜻밖입니다. 지난 세 해에 걸쳐 이 길을 얼마나 자주 걸었는데, 이제서야 이곳에 서 있는 나무전봇대를 알아보다니?
큰 찻길을 건널목으로 건넌 다음 '배다리 산업도로' 공사터를 따라 송림1동 안쪽 동네 오르막길을 오르는데, 이곳에서 또다른 나무전봇대 하나를 찾아냅니다. 텃밭이 올망졸망 이어진 샛골목 한편에 우뚝 서 있습니다. 이 길 또한 성당마실을 할 때 으레 다녔는데 여태껏 나무전봇대가 바로 곁에 있는 줄 깨닫지 못했습니다. '아니, 그렇게 골목 사진을 찍는다며 부산을 떨고 다니더니, 코앞에 있는 모습조차 제대로 못 찍고 있던 셈인가?' 낯부끄러움보다 등골 서늘함을 느낍니다. 낯간지러움보다 새삼스러움을 느낍니다. 천천히 거닐면서 오래오래 거듭거듭 다닌다 하더라도 모든 모습을 다 볼 수 없는 노릇입니다. 이 동네에 살면서 골목이웃을 사귀며 오래오래 함께 지내고 있더라도 온갖 모습을 골고루 볼 수 없구나 싶습니다. 아무리 제 고향동네라 하더라도 고향동네 온 모습을 골골샅샅 알고 있거나 느끼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겠다고 느낍니다.
동네 구멍가게에 들러 할머니한테 인사를 하고 보리술 한 병을 삽니다. 할머니는 아기가 귀엽다면서 과자 한 봉지를 쥐어 줍니다. 아기는 구멍가게 할매와 '주고받기 놀이'를 합니다. 1700원짜리 보리술 하나 사는데 700원짜리 과자 선물입니다.
골목을 거닐며 과자를 뜯어 아기한테 건네주니 덥석덥석 받아먹습니다. 여느 때에 다른 과자이든 밥이든 잘 안 먹는 녀석이 용하게 이 과자는 잘 받아먹는군요.
율목동과 유동과 경동과 창영동과 금곡동과 송림1동을 거쳐 송림2동을 지나 송림6동 현대시장(동부시장)까지 걷습니다. 두어 시간 남짓 걷습니다. 그리 먼 길은 아니지만 골목골목 누비고 다니기 때문에 힘이 많이 듭니다. 현대시장에서 도너츠 삼천 원어치를 장만해서 걸어다니며 먹습니다. 다시 송림2동으로 건너와 송현시장 쪽으로 걷다가 분식집에서 김밥 두 줄과 떡볶이를 장만합니다. 흙이 아닌 시멘트로 덮여 있는 길이지만 골목골목 놓여 있는 꽃그릇마다 반가운 가을빛이 담겨 있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옆지기랑 아기랑 이 골목마실을 즐기면서 골목꽃을 마주할 수 있을까 모르겠으나, 오늘은 오늘대로 이 빛을 받아먹자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골목집과 함께 골목꽃과 골목길과 골목나무와 골목풀과 골목꽃그릇과 골목평상과 골목이웃과 골목고양이와 골목자전거가 자취를 감출 수밖에 없게 되더라도, 오늘은 오늘 하루 드리우는 가을햇살을 고이 간직하자고 생각합니다.
골목동네 아이들은 오르내리락 좁다란 골목에서도 자전거를 타고 신나게 달립니다. 둘레에 마땅한 공원이 없고, 넓은 운동장이나 빈터가 있지 않으나, 요리조리 골목을 빠져다니며 자전거를 타며 놉니다. 술래잡기나 고무줄이나 구슬치기나 딱지나 제기를 노는 아이를 만날 수는 없으나,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골목을 삶터이자 놀이터로 삼으며 웃고 떠듭니다. 아저씨나 할아버지는 구멍가게나 평상에서 막걸리나 소주 한잔 들이키고, 아주머니나 할머니는 집 앞 돌계단에 앉거나 문간 걸상에 앉으며 해바라기를 합니다. 뻥튀기 장수 곁을 지나며 집으로 돌아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2009.10.13 10:23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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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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