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화율 100% 달성" 향약의학을 규정짓다?

[한국의학사 다시 쓰기 06] 향약은 약을 자립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등록 2009.10.14 14:57수정 2009.10.14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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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량 수입에 의존해 오던 자동차를 국내에서 조립생산하였다. 이익을 늘이기 위해 부품의 일부를 국산화하기 시작하여 드디어 부품을 전량 국산화하였다. 하지만 아직까지 기술력은 부족하여 기계의 설계와 디자인은 외국의 것을 모방하는 단계에 불과하였다.

현대자동차 포니 본격적인 자동차 강국의 계기가 되었던 포니. 이후 부품의 국산화 작업도 많이 진행되었다.
현대자동차 포니본격적인 자동차 강국의 계기가 되었던 포니. 이후 부품의 국산화 작업도 많이 진행되었다.현대자동차

전통사회의 기술은 산업화 시대의 것과 다르다


소니라는 기업이 '타도 삼성'을 외치고, 현대자동차가 전세계 자동차 시장의 선도 그룹이 된 요즈음 젊은이들에게는 다소 낯선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과거 식민지 지배와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서 돈도 기술도 없이 그저 열심히 해보겠다는 노동력 하나로 지금의 대한민국을 일구었던 세대들은 자주 들어온 이야기일 것이다.

자동차, 라디오, 텔레비젼, X선, CT, MRI 등 산업화 시대의 기술과 상품은 과거 전통 사회의 기술이나 상품과는 많이 다르다. 전통사회의 기술과 상품은 어느 한 시기, 어느 한 사람, 어느 한 기업에 의해 갑작스럽게 출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의학 분야는 살아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산업화시대의 아이디어로 의학사를 기술하여 왜곡되다

한의학의 대표저술인 허준의 <동의보감>, 동아시아 의학을 집대성한 <의방유취>, 그리고 향약의학을 집대성한 <향약집성방>은 한국의학의 삼대(三大) 저술이다.

과거 <향약집성방>은 한국의학에서 "처음으로 약의 자립(自立)"을 이룩한 책이라고 중요시하였다. 특히 일본인 미끼 사까에나 김두종의 관점에서 <향약집성방>은 조선 의약의 독자성을 이야기할 수 있는 최초의 저술이었다. 미끼 사까에는 고조선 이래로 중국의 속국(屬國)이었던 조선은 의학 역시 중국의 것을 모방해왔는데 비로소 조선 초기에 이르러서야 약을 자립시켰다고 하였다. 의학 이론과 기술, 치료법, 처방은 아직까지 중국의 것을 답습하고 있지만 약에서만이라도 자립하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특히 중국의 처방을 쓰되 값비싼 수입 약재 대신 국산 약재를 사용하여 수입대체 효과를 가져오게 하였다는 것이 그 핵심논리이다. 수입 완제품을 쓰는 단계, 부품과 기술을 모두 수입하여 국내에서 조립하는 단계를 거쳐 조선시대에 들어와서야 부품을 국산화하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은 산업화 시대의 논리와 같지 않은가? 과연 전통사회의 의학지식이 산업화 시대의 기술이전과 마찬가지로 '수입-조립생산-부품국산화-독자기술'이라는 단계를 통해 이룩된 것일까?

중국에 신라 승려의 치료기록이 남다


향약집성방 <의방유취>, <동의보감>과 더불어 3대 한의학 서적인 <향약집성방>. 우리 선조들에 의해, 우리 선조들의 질병을, 우리 약재로만 치료를 하였던 향약의학을 집대성한 책이다. 산업화시대의 상품처럼 국산화에 성공한 '약의 자립'이라고 규정짓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내용의 의학지식을 담고 있다.
향약집성방<의방유취>, <동의보감>과 더불어 3대 한의학 서적인 <향약집성방>. 우리 선조들에 의해, 우리 선조들의 질병을, 우리 약재로만 치료를 하였던 향약의학을 집대성한 책이다. 산업화시대의 상품처럼 국산화에 성공한 '약의 자립'이라고 규정짓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내용의 의학지식을 담고 있다.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의사학교실

"당나라 때 상주 지역에 중병을 앓아 발을 못디디는 사람이 있었다. 수십년 동안 치료가 안되어 좋은 의사를 찾아다니던 중 한 신라 승려를 만나게 되었다. 이 신라 승려는 '이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약초가 한 가지 있는데, 이 동네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하고는 산에 올라가 위령선을 캐왔다. 그 환자는 이 위령선을 복용하고 다시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이 일화는 1189년 금나라에서 출판된 <중수정화경사증류비용본초(重修政和經史證類備用本草)>라는 책에 실려 있다. 이 책은 후한(後漢) 말엽부터 송나라 때까지의 약재에 대한 기록들을 광범위하게 수집한 책이다. 의서 이외에도 경전(經典)과 사서(史書)뿐 아니라 중국 이외 지역의 약재들까지도 망라하여 시간의 순서에 따라 모아놓은 책이다. 앞선 시기에 잘못 알고서 기록한 내용도 고치지 않고 담아 두었기 때문에 의학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일 뿐 아니라 고려시대 이전의 의학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한국의학사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이다.

중국의 의약지식은 주변 국가와의 상호교류를 통해 만들어졌다

위령선이라는 약재를 사용한 치료지식과 기술을 중국 당나라 사람들은 몰랐는데 신라 사람들이 잘 알았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신라 사회에 당시 중국인들도 잘 모르던 의학적 지식이 존재하였다는 단편적인 증거가 아닐까?

<중수정화경사증류비용본초>라는 책이 어떤 책인지를 이해하면 너무도 당연한 결론이다. 수백년만에 통일 왕조를 이룩한 당나라는 각 지역에 흩어져 있던 의약학 지식을 수집하여 <신수본초(新修本草)>라는 약물학 저술을 만든다. 송나라가 들어선 이후에도 10여 차례 이상 아시아 지역의 다양한 약물학 지식을 꾸준히 수집정리하였다.

이 <중수정화경사증류비용본초>라는 책은 가장 마지막 단계의 저술인 셈이다. 즉 동아시아 의약지식은 주변 국가와의 상호교류를 통해 중국에서 수집하여 총정리하였다는 것에 의학사의 가치가 있는 것이지, 현대사회의 공산품처럼 중국에서 모든 의약학 지식을 만들어서 주변 국가들은 그 지식을 수입하여 사용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중국의 의학서적이 나오기 이전에도 주변 국가들은 모두 의학 지식을 갖고 있었다. 그러한 의학기록들이 위령선 조문의 신라승려에 대한 것처럼 단편적이지만 곳곳에 남아 있다.

<중수정화경사증류비용본초>의 '국화' 조문 <중수정화경사증류비용본초>의 국화 조문이 하단에 시작하고 있다. 역대 중국과 주변 국가들의 의학지식을 수집하여 1189년에 출판되었다.
<중수정화경사증류비용본초>의 '국화' 조문<중수정화경사증류비용본초>의 국화 조문이 하단에 시작하고 있다. 역대 중국과 주변 국가들의 의학지식을 수집하여 1189년에 출판되었다. 강연석

오랜 세월, 넓은 지역에서 검증된 지식이 현대의 한의학이다

전통사회에서 옛 신화에 나오는 신농(神農) 씨처럼 어느 한 사람이, 어느 한 시점에 온갖 약초를 인체에 투여해 실험해보고 약효를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과학기술이 발전한 현대사회에서도 인체라는 특성상 실험을 통해 약효를 검증하는 것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각 지역 사회별로 쌓여 일차적으로 검증된 의학적 경험이 수집되면, 이 경험들은 다른 지역과 시간 속에 전해진 후 다시 검증된다. 이런 오랜 세월과 넓은 지역에서 검증된 지식이 현대 사회에 전달된 한의학이다.

역사를 해석하면서 현재 시점의 상식에도 맞는 지식과 아이디어로 접근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기술하는 사람들의 입맛에 따라 과거를 재단하고 왜곡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사회를 다양한 관점과 구조에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 선조들이, 우리 선조들의 질병을, 우리 땅에서 나는 약초로만 치료한 경험을 기록한 것이 향약의학(鄕藥醫學)이다. 이러한 의학 기록은 오랜 동아시아 역사를 통틀어 다른 예를 찾기 힘들다. 여말선초의 향약의학에 이르러서야 값비싼 수입 약재를 국산 약재로 대체하여 약이라도 자립하게 되었다는 식민사관의 해석이 빠른 시간 내에 사라지기를 기원한다.
#한국의학 #향약의학 #향약 #식민사관 #증류본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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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의사학교실 (주)민족의학신문사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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