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곡사 소나무 숲길이른 아침 해가 뜨기 전, 살짝 안개가 낀 봉곡사 소나무 숲길
한겨레신문
우리 부부가 산길을 오른 것은 아침 일곱시가 조금 넘었을 무렵인데 햇살이 숲안쪽으로 살짝 밀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숲길 초입에 사진 찍기 좋겠다고 생각되는 곳에 자동차 한대가 서 있었다. 홀로 삼각대를 세우시는게 솔나무 길의 아침 이미지를 얻으시려는 모양이다.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새벽길을 달려 오신 열정이 보기 좋았다. 급한 마음으로 나선 산책길이라 사진기를 가져 오지 못한 탓에 부러운 마음으로 촬영준비를 하시는 분을 바라 보다가,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곳에 그 분이 서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뿌듯하여 다음을 기약하였다. 인터넷에서 얻은 정보로는 햇살이 스며들기 전 살짝 안개가 낀 솔나무길이 제일 좋다고 하였다. 그런 이미지를 얻기에는 좀 늦지 않은가 싶기도 하지만, 햇살이 살짝 스며든 아침 길도 정갈하고 나름의 기운이 있다고 여겨진다.
흠뜻 흠뜻 둘러보며 올라가니 금세 절집 입구에 세워져 있는 공덕비 앞에 다다랐다. 어떤 스님의 공적을 적은 것인가 싶어 보았더니, 봉곡사 전화선로를 개설해 주신 어느 보살님을 기리는 것이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길이 정말 짦게 느껴질 만큼, 금세 대웅전이 보이니 아쉬움을 금할 길 없다. 봉곡사 솔나무 숲길은 아름답기로 소문 난 월정사의 천년 숲길이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도 소개된 부안 내소사 전나무 숲길만큼 웅장하지는 않아도 정감있고, 자연미가 느껴진다.
이리 저리 마음가는대로 뻗은 소나무 가지들을 바라보면 위로가 되기도 하고 숱한 세월을 넘겨온 시간의 공력이 저절로 느껴진다. 유일한 흠이 짧다는 것이다. 듣기로는 700미터라 하는데, 초입의 집들과 주차장을 허물고 숲길을 더 이어 보면 어떨가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