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른 시체
출근하자마자 신문을 손에 든 조수경은 일순 불안감에 휩싸였다. <조센일보>의 톱기사 때문이었다. 거기에는 조수경이 작성한 범죄 프로파일링이 교묘하게 왜곡되어 있었다. 게다가 기사의 타이틀과 내용이 매우 선동적이었다.
- 6·15 예고 범죄, 이제 경찰도 손 놓았다
조수경은 경찰 내부에서 대외비로 관리해 온 자신의 프로파일링이 어떤 경유로 <조센일보> 기자의 손에 들어갔는지 알 수 없었다. 특종을 터뜨린 기자는 그녀의 직감대로 선준혁이었다. 선준혁은 프로파일링에서 범인의 예고대로 범행이 성사될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한 것을 요상한 방법으로 부풀려 문제화하고 있었다.
- 경찰청 X파일, "경찰 힘으로 6·15 범행 막지 못한다."
- 경찰은 6·15 범행을 막지 못한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이것은 자기들에게 주어진 공권력을 자기 스스로 불신하는 패배주의적 태도이다. 한국 정부는 국가안보를 포기하려는가? 경찰이 못한다면 군이라도 나서야 하는 것 아닌가? 우리는 이 정부가 왜 '친북좌파정부'라는 말을 듣는지 알게 되었다.
조수경이 보기에 그것은 새로운 형태의 북풍이었다. 하지만 기사의 파문은 의외로 크게 번졌다. 경찰청 스스로 예고 범행의 성사를 인정한다는 것은 국민들에게 불안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다른 신문과 텔레비전도 <조센일보>의 기사를 받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것은 총선을 나흘 남겨 둔 시점에서 대북 화해 정책을 추구해 왔던 정부·여당에는 대형 악재임이 분명했다. 정부와 여당은 서둘러 연석회의를 가졌다. 총선이 임박한 시점에서 정부는 여론 진정에 나선 것이다. 정부 대변인은 임기제의 경찰청장을 해임한다고 발표했다. 이제까지의 사건을 해결하지 못한 책임을 묻는다는 명목이었다.
이어서 국무총리가 나서 담화를 발표했다. 범행이 예고대로 성공한다는 것은 일개 수사관의 보고서에 불과할 뿐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6·15 범행은 결코 일어날 수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군경합동수사대가 전국의 하천을 물샐 틈없이 경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조수경은 자책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경위야 어찌되었든 자신이 올린 보고서 때문에 정국이 혼란해지고 경찰청장이 해임되는 사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아울러 그녀는 <조센일보>에 적대감을 느꼈다. 그녀는 왜 그 신문에 안티운동이 일어나는지를 알 만했다. 그는 입술이 얇고 눈동자가 작은 <조센> 기자 선준혁의 얼굴을 떠올렸다.
여론은 급속히 남북 화해 세력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쏠리고 있었다. 김인철은 안타까워하면서 말했다.
"어떻게 해서 이룬 남북화해인데… 이는 새로운 형태의 북풍이 먹혀들고 있는 겁니다."
기자들이 조수경의 방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조수경은 김인철에게 말했다.
"이건 분명히 범인에게 말려들고 있는 상황이야."
선준혁이 그들의 대화 중간으로 끼어들었다.
"조 수사관의 보고서가 경찰청 내부 의견으로 채택되었다는 게 사실입니까?"
조수경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누르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그녀는 선준혁을 한 번 힐끗 쳐다본 후 고개를 돌려 김인철에게 말하는 투로 내뱉었다.
"기자 놈들은 특종을 위해서라면 아마 연쇄살인도 서슴지 않을 거야."
선준혁은 더 이상 묻지 않고 방을 나갔다.
조수경은 다음 날 신문기사를 읽고 낭패감에 젖어 들었다. 선준혁이 조수경의 욕설을 여과 없이 보도한 것이었다.
- "기자 X들, 연쇄살인도 서슴지 않을 거야."
- 범행 성사 예고한 경찰청 여수사관, 기자들을 협박
다른 신문에서는 기자 칼럼 등을 통해 비꼬았다.
- 정신 나간 한국 경찰
- 사건 해결 못한 경찰, 기자에게 연쇄살인범이라고?
조수경은 다음 날 아침 직위해제 처분을 받았다. 그것은 일체의 수사에서 손을 떼는 대기 발령 상태를 의미했다. 저녁 때 그녀는 김인철과 소주를 마셨다. 술이 내키지 않았지만 김인철의 성의를 마다하기가 어려워 따라 나선 것이었다.
하지만 술자리는 침울한 따름이었다. 김인철은 조수경을 위로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지만 그럴수록 분위기만 더 어색해지는 것 같았다. 집에 돌아온 그녀는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아 오랫동안 잠겨 있었다.
총선일이 다가왔다. 상당수 언론의 여론몰이에도 불구하고 선거는 차분히 치러졌고 저녁이 되자 개표 결과가 속속 나왔다. 그런데 결과는 예상과 약간 달리 나타났다. 그것은 선거 전 실시된 여론조사와 적잖이 다른 것이었다. 의석에는 그리 큰 변화가 생기지 않았던 것이다. 남북 화해에 최소한 미온적이거나 반대해 온 정당의 의석이 6~7석 늘어난 정도였다.
그러나 그것은 어쨌든 야당의 승리라고 해야 했다. 야당은 국회의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여당 후보들의 결과였다. 그래도 소신을 지키며 일관되게 남북 화해를 주장했던 후보자는 거뜬히 당선된 반면, 여론의 눈치를 보며 대북 정책에 대한 태도를 미온적으로 바꾼 후보자는 낙선했거나 신승한 것이었다.
그것은 가공할 연쇄살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북 화해에 찬성하는 국민이 적지 않게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들은 남북이 대치하는 냉전 국면을 원치 않는 유권자들이었다. 또한 유권자들은 기회주의적으로 행동한 후보자를 외면했다고도 할 수 있었다.
시간이 많아진 조수경은 고궁과 강변을 거닐었다. 하지만 여간해서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이따금 좌절과 회한의 빛이 머물렀다. 하지만 그녀가 수사를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여전히 범행과 범인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가 한강변에 자주 나가 본 것도 사건을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6월 15일, 네 구의 시체가 강물에 떠오를 것이다.'
범인은 시체를 강물에 띄우겠노라고 장담했다. 그녀의 관찰로 그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물론 한강 말고도 다른 강이 얼마든지 있었다. 그러나 은폐, 엄폐 지역이 거의 없는 한국 하천의 특성을 감안할 때, 철통같은 경계망을 피하여 예고된 시간에 시체를 띄운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았다.
'그런데도 왜 아브라함은 범행이 예고대로 성사될 것이라고 했을까?'
그녀는 아브라함의 추정을 비판 없이 받아들인 자신의 프로파일링에 회의감이 들었다. 그러자 별의별 엉뚱한 생각들이 떠올라 마구 머리를 어지럽혔다.
'시체의 머리만 상자에 밀봉하여 우송할 수도 있는 것 아닐까?'
'하늘에서 강으로 시체를 떨어뜨릴 수도 있어.'
'이미 시체는 강기슭 어디엔가 유치되었고 범인은 6월 15일에 그 장소만 알려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혹시 범인은 그 날 시체와 함께 모습을 드러내 경찰에 공개 체포되려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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