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물대로 여물어 고개를 푹 숙인 벼들. 풍년이면 온 국민이 함께 기뻐하고 풍년가를 불러야 함에도 그렇지 못한 농민들이 많아 마음이 무겁습니다.
조종안
일 년 열두 달 중 가장 복된 달, 가장 으뜸 달이라는 10월 상달. 들녘에 나가면 농민들의 풍년가 소리가 구경하는 사람 마음까지 풍요롭게 하는 수확의 계절입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지 풍년가 소리는 사라지고, 콤바인 소리가 풍년가를 대신 해주고 있습니다.
우리 마을도 풍년이고 농민들도 고추, 참깨에 이어 벼를 거둬들이느라 정신없이 바쁜데요. 옛날에는 누렇게 익은 벼들이 고개를 숙이기 시작하면 농악대가 꽹과리를 선두로 마을을 돌며 떠들썩하게 잔치를 벌였다고 합니다.
엊그제는 나락을 두 가마 방아 찧어 안집 창고에 보관해두었는데, 집주인 아저씨가 손수 찧어주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내년 봄까지는 식량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고요. 내일부터 먹게 될 차지고 구수한 햅쌀밥을 생각하니까 벌써 입맛이 당기네요.
이렇게 풍년을 즐거워하고 만끽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비료와 농약값은 작년보다 올랐는데 정부에서 추곡수매값을 맞춰주지 않자 분노해서 논을 불태우거나 뒤집어엎어 버리는 농민들도 있어 마음이 무겁습니다. 특히 우리 마을에는 아픈 딸 때문에 풍년도 달갑잖다는 아주머니가 있어 더욱 안타깝게 하네요.
아주머니는 못자리가 시작되던 지난 5월에 처음 뵈었는데요.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면 논에서 혼자 일하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띄었습니다. 그 모습이 외롭고 쓸쓸하게 보여 하루는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지 알아보려고 논을 둘러보고 가는 아주머니를 쫓아가 잠시 얘기를 나눈 적이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