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사건 위령비문에 새겨진 '……', 왜?

유족회 "시 반대로 비문 못 새겨", 여수시 "진상규명 안 끝나 어쩔 수 없어"

등록 2009.10.19 20:15수정 2009.10.20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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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순사건 학살 관련 사진.
여순사건 학살 관련 사진.여수지역사회연구소

1948년 10월 19일 발생한 여순사건. 이후 61년이 지난 2009년 10월 19일, 전남 여수시 만흥동 149-2번지 일대에서 여수사건 희생자 위령제가 열렸다.

여순사건 위령제. 일견 단순한 행사 같지만 내면에는 복잡하게 얽힌 현대사의 질곡이 담겨 있었다. 위령제 속에는 위령비 문구를 둘러싼 갈등이 내재해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위령비 뒷면에 들어갈 문구 대신 '……'(말줄임표)가 새겨진 이유기도 했다. 위령제를 따라 그 사연을 뒤쫓아 보자.

위령비에 비문 못 새긴 사연

 말줄임표로 대신한 여순사건 위령비 문구.
말줄임표로 대신한 여순사건 위령비 문구.임현철

위령제 시작 전 만난 여순사건 여수유족회 김천우 회장은 "비문에 새길 문구 중 '학살'을 주장한 유족 측과 '희생'을 주장한 여수시의 의견이 엇갈려 '……'(말줄임표)만 새길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여순사건위원회 이오성 위원장은 "지난해 10월 여수시의회에서 위령비 건립 예산이 통과된 후 장소 섭외 등으로 위령비 설립이 늦어졌다"면서 "원래는 비명, 설명문, 추모시가 함께 들어갈 예정이었다"고 설명했다.

19일 오전 10시 30분, 위령제가 시작됐다. 김천우 회장은 인사말에서 "61년 전 시작된 학살에서 산과 들에 버려져야 했던 고인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비석을 세워 위령제를 지내려고 했다"면서 "그렇지만 여수시의 반대로 아무 말도 새길 수가 없었다"고 울분을 토로했다.

 19일 오전에 거행된 여순사건 위령제. 울분을 토로하는 김천우 회장(좌 하)
19일 오전에 거행된 여순사건 위령제. 울분을 토로하는 김천우 회장(좌 하)임현철

이어진 축사에서 여수지역사회연구소 김병호 이사장은 "당신들 죽음의 진실이 아직도 무엇인지 모르는데, 그 사실 자체를 은폐하려 한다"면서 "저희들은 과거의 진실을 밝혀 역사를 바로 세우는데 온 힘을 다할 것을 약속드린다"고 다짐했다.


특히 정부의 진실화해위원회 이영일 기록정보관은 축사를 통해 "이곳은 인근의 형제 묘, 중앙초등학교 등과 함께 여순사건 집단 학살지다"면서 "정부의 무리한 진압작전이 초래한 여순사건에서 국가가 책임질 부분에 대해 민망하고 송구스럽기 그지없다"고 밝혔다.

그는 "위령비 뒷면에 아무 글자도 넣지 못한 게 아쉬움으로 남지만 이는 민간인 학살로 분명하게 규명된 것이다"라고 못 박으며 "역사나 사건에 대해 이해됐다면 (아무 글자도 새기지 못한 건) 해결되었을 문제였고, 이는 유족과 여수시, 정부 간 소통 부재가 원인이다"고 말했다.


 여순사건 당시 여수시 만성리 학살지를 알리는 안내문.
여순사건 당시 여수시 만성리 학살지를 알리는 안내문.임현철

여수시 "진상규명 안 된 상태서 '학살' 표현은 곤란"

이에 대해 여수시 관계자는 "위령비 뒷면에 들어갈 문구 중 '무고하게 학살된' 부분을 '희생된'으로 고치길 요청했다"면서 "진상규명과 명예훼손이 아직 끝나지 않아 어쩔 수 없었으며 진상규명이 끝나면 뒤에 고치는 방안을 검토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곳에서 100여 m 떨어진 '형제묘' 입구에 설치된 '여순사건 만성리 형제묘 희생지' 안내 문구에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장과 여수시장 공동 명의로 "위 장소는 한국전쟁 전인 1948년 발생한 여순사건(여수시 만성리 형제묘 학살사건)의 민간인 집단희생지로서…"라며 분명하게 '학살사건'으로 기록되어 있다.

현장에서 안내문을 함께 본 여수시 관계자들은 "누가 이렇게 세웠는지 모르겠다"며 당황해 했다.

 여순사건 당시 만성리 학살지 인근 형제묘 희생지 안내문에는 '학살사건'으로 나와 있다.
여순사건 당시 만성리 학살지 인근 형제묘 희생지 안내문에는 '학살사건'으로 나와 있다.임현철

"점 여섯 개의 말줄임표(……)는 나의 시(詩)"

특히 비문 내용을 맡은 김진수 시인은 "여수시의 반대로 넣지 못한 문구 대신 새긴 점 여섯 개의 말줄임표(……)는 나의 시(詩)며, 제목은 '나 말이어라'다"라면서 "이 시는 유족들과 고인들의 울분을 함축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한편, 문제가 된 여순사건 희생자 위령비 뒷면에 들어갈 당초 문구는 다음과 같다.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 19일 여수시 신월리에 주둔하고 있던 국방경비대 제14연대 군인들을 중심으로 발발하여 여수와 순천을 점령하고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여수를 중심으로 한 전남 동부지역 일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무고하게 학살된' 비극적인 사건이다.

분단과 갈등, 혼란의 시대에 억울하게 희생된 여순사건 영령들에 대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그리고 영면을 기리는 마음을 담아 위령비를 세운다."

61년의 세월 동안 편안히 잠들지 못하고 아직도 구천에 떠돌고 있을 여수ㆍ순천 학살민의 영혼을 진심으로 달래길 기원한다.

 여수사건 관련 사진.
여수사건 관련 사진.여수지역사회연구소

덧붙이는 글 | 다음 뷰와 SBS U포터에도 송고할 예정입니다.


덧붙이는 글 다음 뷰와 SBS U포터에도 송고할 예정입니다.
#여순사건 #위령비 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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