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꼬리도 아니고 개꼬리, 그러면 어때?

[포토에세이] 갯강아지풀

등록 2009.10.23 14:49수정 2009.10.23 15:52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갯강아지풀 보통 강아지풀보다 작지만 꼿꼿하게 서있다.
갯강아지풀보통 강아지풀보다 작지만 꼿꼿하게 서있다.김민수

강아지풀은 개꼬리풀이라고도 하며, 한자로는 구미초(狗尾草)라고도 한다.


동물의 '꼬리'를 닮은 것만은 분명한데 바람에 살랑거리는 모양새가 아무래도 사람들과 가까운 개의 꼬리를 많이 닮아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강아지풀은 흔하디흔한 풀이다.

똥개만큼이나 번식력이 왕성해서 흙 한 줌만 있으면 아무리 척박한 곳에서라도 피어난다. 흉년이면 구황작물이기도 하였다지만, 쌀도 남아도는 차에 강아지풀이 뭐 그리 대수일까 싶다.

갯강아지풀 개꼬리룰, 구미초라고도 불리운다.
갯강아지풀개꼬리룰, 구미초라고도 불리운다.김민수

옛날에 강아지풀은 개구쟁이들의 놀잇감이었다.

가을엔 벼메뚜기를 잡아 꿰는 용도로 사용하기도 하고, 풀싸움을 할 때 빠지지 않았으며, 모양새가 예뻐서 아이들에게 인기도 좋았다. 하지만, 요즘이야 들판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이 없으니 이래저래 똥개 신세가 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생명력이 강한 것들은 흔하다.

흔하다 보니 사람들에게 괴롭힘도 많이 당한다. 아무 땅에나 잘 자라다 보니 농사꾼들에게는 곱지 않은 존재다. 뽑히거나 제초제의 수난을 당하기도 한다. 보이는 족족 뽑아버려도 여전히 무성하게 자란다. 그것이 잡초의 속성이기도 하나 어디까지나 '잡초'라는 이름도 사람이 그렇게 부르는 것일 뿐, 그들로서는 생존을 위한 투쟁의 역사이다.


갯강아지풀 가을 햇살에 빛을 가득 품었다.
갯강아지풀가을 햇살에 빛을 가득 품었다.김민수

설악산 단풍이 절경이라고 한다.

단풍구경의 꿈을 안고 한계령 근처에 가니 평일임에도 사람들이 넘쳐난다. 그곳에서도 사람 물결에 섞이느니 차라리 호젓한 곳이 났겠다 싶어 차 안에서 단풍구경을 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으며 한계령을 넘어 주문진 바다로 갔다.

가을 바다는 한가했다.

모래사장을 거닐며 파도소리를 듣고, 갈매기들의 비상을 바라보기도 했다. 그렇게 그리웠던 바다였는데 밋밋하게 다가온다.

갯강아지풀 구황식물이기도 했다.
갯강아지풀구황식물이기도 했다.김민수

모래사장을 빠져나와 해송 숲 사이로 걷는데 가을 햇살에 눈부시게 빛나는 것들이 있다.
강아지풀이다.

한창때를 보내고 이젠 서서히 말라가는 강아지풀, 가을이라고 단풍 빛도 언뜻언뜻 보인다.

'하필이면 개꼬리가 뭐야, 소꼬리도 아니고.'

그런데 아무리 봐도 소꼬리는 될 수 없고, 바람에 살랑거리는 모습이 영락없이 개꼬리다. 흔하디흔한 개꼬리, 그렇게 흔하디흔한 강아지풀과 같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 무명씨로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이다.

갯강아지풀 작은 것들이 모여 은빛물결을 이룬다.
갯강아지풀작은 것들이 모여 은빛물결을 이룬다.김민수

선거철이나 되어야 정치지망생들이나 높디높으신 의원 나리에게 굽실굽실 인사를 받고, 선거가 끝나면 바로 개밥에 도토리 신세가 되는 것이 대다수 국민이다. 나라님들이 나라 망치면 제 손가락에 있던 금반지까지도 빼내기를 주저하지 않으면서도, 나라님들 나라 망치는 일을 해도 흔쾌하게 믿어주고 변함없는 지지를 보내준다.

한 번쯤은 대동단결하여 '정신 똑바로 차려!'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역사적인 변혁기가 아니면 도무지 뭉쳐지질 않는다. 아니, 스스로 양분되어 보수가 뭔지도 모르고 보수주의자, 진보가 뭔지도 모르면서 진보주의자로 자처하며 별일도 아닌 것에 목숨을 걸고 살아간다. 그야말로 교활한 자들에게 아낌없이 이용을 당하고, 또 이용을 당하는 것이다.

갯강아지풀 잡초, 이름없는 무명씨들을 닮은 풀이다.
갯강아지풀잡초, 이름없는 무명씨들을 닮은 풀이다.김민수

그럼에도, 끝내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갈 풀은 이름난 풀이 아니라 이렇게 개꼬리마냥 잡초취급을 당하는 꽃일 터이다. 사람도 그러할 것이다. 바람 불면 쓰러지고, 밟히면 밟히지만 끝내 다시 일어나는 들풀과도 같은 사람들이 끝내 살아 이 땅을 지킬 것이 아니겠는가!

강아지풀, 개꼬리풀, 구미초 어떤 이름이라도 좋다.

몸뚱아리는 섞어 퇴비가 되고 사그라진들 수없이 많은 씨앗 척박한 땅에서도 끝내 살아갈 것이니 소꼬리가 아니고 개꼬리면 어떨 것인가.
#강아지풀 #개꼬리풀 #구미초 #구황식물 #잡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2. 2 의사 아빠가 죽은 딸의 심장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 의사 아빠가 죽은 딸의 심장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
  3. 3 남편 술주정도 견뎠는데, 집 물려줄 거라 믿었던 시댁의 배신 남편 술주정도 견뎠는데, 집 물려줄 거라 믿었던 시댁의 배신
  4. 4 보수논객 정규재 "이재명 1심 판결, 잘못됐다" 보수논객 정규재 "이재명 1심 판결, 잘못됐다"
  5. 5 [단독] 조은희 "명태균 만났고 안다, 영남 황태자? 하고 싶었겠지" [단독] 조은희 "명태균 만났고 안다, 영남 황태자? 하고 싶었겠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