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바울축제가 끝나고도 돌아가지 않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춤을 추는 바울
김대호
렌터카를 타고 출발했다. 대낮인데도 자동차들이 라이트를 켜고 다닌다. 희뿌연 연무가 안개처럼 도로를 뒤덮고 있어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다. 모두 먼지와 매연이다. 유엔 환경보고서는 세계 최악의 환경오염도시로 캘커타를 꼽았다. 몇 년 안에 사람이 살 수 없는 도시로 변할 수 있다는 경고까지 있었단다. 아침에 하얀 옷을 입으면 한나절만에 옷은 누렇게 변한다. 콧속에 먼지가 쌓여 코를 풀면 시커먼 덩어리들이 튀어 나온다. 차들이 뒤엉킨 도로에 곳곳에선 크락션 소리가 요동친다. 우리와 달리 인도에선 크락션이 안전운전의 미덕이자 에티켓이다.
인도집시, 바울(baul)을 만나다
1시간 남짓 걸려 축제장에 도착했다. 밤에 열리는 축제인데도 축제장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런데 간단한 음식물을 파는 노점상이 대여섯 곳 서 있고 거대한 나이롱극장이 서 있을 뿐이었다. 근 30년만에 보는 나이롱극장이 반가웠다. TV나 라디오가 귀하던 시절이었다. 1년에 한두 번씩 가을걷이가 끝날 즈음 면소재지를 순회하며 나이롱극장에서 상영하던 철지난 영화는 농촌사람들에겐 최고의 문화생활이었다.
수지따는 나이롱극장 옆 비닐포장을 둘러친 허름한 폐 창고 건물로 우리를 안내한다. 장막을 걷는 순간, 희뿌연 담배연기와 마리화나(마리화나에 얽힌 이야기는 다음 편에) 연기가 가득하다. 조금은 거북스럽다. 나는 거기서 기이한 한 무리의 사람들을 만났다. 인도의 집시 바울(baul)이었다. 주황색 혹은 조각 천으로 기운 옷을 입고 해금과 비슷하게 생긴 엑따라와 손풍금을 연주하며 마치 주술 같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광기, 광기, 우리는 모두 미쳤나니!/'미친다'라는 말은 왜 이다지도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나?/가슴속 물길 속으로 뛰어들 때, 당신을 알리라./미친 이 보다 훌륭한 사람은 없다는 것을. (바울의 노래 중에서)바울은 'batula'(산스크리트어 Vatula)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바람에 사로잡힌 자'. 다시 말해서 자신의 삶과 생각 모두를 내면의 근원적 충동에 내맡긴 자를 의미한다. 그래서 그들은 광적이다. 마치 미친 자처럼 노래하고 춤을 춘다. 마치 마리화나에 취한 듯 내뱉는 그들의 격정적 광기는 신이라는 절정에 이르러 불나비처럼 산화한다.
카스트라는 엄격한 계급이 지배하는 인도. 불가촉천민이나 소수민족이 아니면서도 어느 카스트에도 속하지 않는 웨스트벵갈의 수행자 무리 바울. 캘커타의 소띠곤자아끄축제에서 인도의 각설이 바울(baul)을 처음 만났다. 바울의 무리에는 브라만에서 수드라, 외국인까지 없는 계급이 없다. 남녀 구별도 없다. 누구나 평등하다. 심지어 브라만 여자와 수드라 남자와 결혼을 하기도 한다. 엄격하게 구분하면 불가촉천민이라는 외국인도 상관없다. 실례로 우리가 가족처럼 지내는 바울 숏도난다의 아내인 호리다시는 일본인이다.
그것은 무슬림 수행자인 포키르도 마찬가지다. 무슬림 특유의 하얀 옷을 즐겨 입는다는 것을 빼면 바울과 흡사하다. 포키르의 여성들은 차도르로 얼굴을 가리지 않는다. 얼굴을 내어 놓고 똑같이 무대에 올라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다. 이교도들에 뒤섞여 이야기도 하고 함께 밥도 먹는다. 중동의 이맘(무슬림 최고의 영적지도자)들이 보면 기겁을 하고 경을 칠일이다. 명예살인까지도 갈 일이다. 실재로 포키르를 제외한 대부분의 무슬림 여성들은 눈을 제외하고는 검은색 옷으로 온몸을 가리고 있었다. 심지어 밥을 먹을 때도 차도르를 벗은 일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