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똘레랑스'가 과연 옳은가"

<김제동, 신영복에게 길을 묻다> 강연회... 신영복 교수, 공존 이상의 연대 강조해

등록 2009.10.24 11:58수정 2009.10.24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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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인 김제동이 23일 저녁 서울 중구 정동 이화여고 100주년기념관에서 '민주주의를 위한 시민네트워크(준)' 주최로 열린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초청 강연회 '김제동, 신영복에게 길을 묻다'에서 청중에게 신 교수를 소개하고 있다.
방송인 김제동이 23일 저녁 서울 중구 정동 이화여고 100주년기념관에서 '민주주의를 위한 시민네트워크(준)' 주최로 열린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초청 강연회 '김제동, 신영복에게 길을 묻다'에서 청중에게 신 교수를 소개하고 있다.유성호


23일 저녁 이화여고 백주년 기념관을 가득 메운 청중들 앞에서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웃으며 "김제동씨는 나한테 길을 물은 적은 없었는데"라고 농을 건넸다. 청중들은 웃음으로 화답하며 신 교수의 이어지는 말을 기다렸다.

 방송인 김제동이 23일 저녁 서울 중구 정동 이화여고 100주년기념관에서 '민주주의를 위한 시민네트워크(준)' 주최로 열린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초청 강연회 '김제동, 신영복에게 길을 묻다'에서 사회를 보고 있다.
방송인 김제동이 23일 저녁 서울 중구 정동 이화여고 100주년기념관에서 '민주주의를 위한 시민네트워크(준)' 주최로 열린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초청 강연회 '김제동, 신영복에게 길을 묻다'에서 사회를 보고 있다.유성호

그랬다. 이날 저녁 '방송인' 김제동은 신영복 교수에게 길을 묻지 않았다.

석연치 않은 이유로 자신이 진행하던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고, 정치인들의 입에 오르락내리락 하며 마음고생을 했을 방송인 김제동은 오히려 청중들을 향해 "저 힘들지 않습니다, 등산도 잘하고 있고… 제발 저한테 힘들지 않냐고 묻지 말아달라"며 손을 내저었고, 특유의 재치로 청중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정작 방송인 김제동이 겪은 일은 이날의 청중들을 포함한 우리 사회를 사는 모든 이들이 겪고 있는 '오늘'일 뿐이다.

9개월 째 장례도 치르지 못한 용산의 희생자들, 수많은 거짓이 드러나고 있지만 멈추지 않는 4대강 사업, 같은 일을 더 고되게 하고도 일자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밥 굶는 아이들에게 시험지를 떠안기는 교육 현실.

이 밖에도 숨 가쁘게 벌어지고 있는 그 많은 '오늘' 탓에 모든 이들이 길을 묻고 싶었을 것이다. 이날 <김제동, 신영복에게 길을 묻다> 강연회의 430석 좌석이 신청 4일 만에 만석이 된 것도 사람들의 갈증을 보여준 셈이었다.


"하나 남은 과실이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나무가 오늘의 상황"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23일 저녁 서울 중구 정동 이화여고 100주년기념관에서 '민주주의를 위한 시민네트워크(준)' 주최로 열린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초청 강연회 '김제동, 신영복에게 길을 묻다'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23일 저녁 서울 중구 정동 이화여고 100주년기념관에서 '민주주의를 위한 시민네트워크(준)' 주최로 열린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초청 강연회 '김제동, 신영복에게 길을 묻다'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유성호

신영복 교수는 세 가지 그림을 그렸다. 하나는 새빨간 과실이 하나 달린 앙상한 나무였고, 하나는 사람의 머리와 가슴, 그리고 발이었다. 마지막 하나는 숲이었다. 신 교수는 그 나무의 모습을 지금 우리의 상황이라 말했다. 찬바람이 불고 언제 저 과실이 땅에 떨어질지 모르는 절박한 상황. 신 교수는 이럴 때 "잎사귀를 떨어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잎사귀는 곧 거품이고 환상입니다. 잎사귀를 떨어내고 우리가 현재 갇혀 있는 '문맥'에서 탈출해야 합니다. 잎사귀를 걷어내면 그 몸이 잘 보이죠. 그와 같이 거품을 걷어내면 한 사회, 한 개인의 뼈대가 선명하게 보입니다. 그리고 떨어진 잎사귀는 그 근본인 뿌리로 내려 앉아 '거름'합니다. 어려운 시절에 해야 할 일은 이와 같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근본을 '거름'하는 일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신 교수는 이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근대의 '문맥'을 탈출해 '사람'으로 돌아올 것을 주문했다.

그는 "중세시대 '마녀'라는 문맥이 있어 수십만, 수백만 명에 이르는 '마녀'를 처형했다"며 "당시 스스로 마녀임을 자인한 이도 있었듯 우리도 근대사회를 경과해오는 동안 쌓인 강고한 문맥, 다른 사람을 타자화하고 자연을 대상화하고 이성이라는 이름으로 세계를 논리적으로 이해하려는 문맥에 갇혀있다"고 말했다. 또한 그 문맥을 벗어나는 여정을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발로"가는 "길고 긴 여행"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의 유명한 의사와 철학자가 긴 시간 대담한 결론이 '가슴이 생각한다'였다. 가슴이 세계를 조직하는 일을 한다. 사마리아인이 강도에게 당한 이를 부축해서 치료한 것처럼 쓰러진 사람을 나의 세계에 포함시킬 것인가는 가슴이 시킨 일이다. 사람이 사람을 '거름'한다는 것은 머리로부터 가슴으로까지의 그 긴 여정을 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길은 함께 가는 등 뒤에 만들어진다"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유성호
'발'은 그렇게 받아들인 사람과의 관계를 건설하는 '행동'을 의미했다. 신 교수는 이 지점에서 프랑스의 '똘레랑스'가 과연 옳은지 의문을 제기했다.

신 교수는 "서로 간의 차이와 다양성을 존중하고 관용하는 '똘레랑스'가 과연 최고의 덕목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단순한 공존이 연대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감옥에 있을 때 '대의(大義)'라는 이름을 쓰는 30대 친구가 수감됐다. 절도 전과가 3개가 되는 친구였다. 이름이 참 좋아 그 친구에게 누가 그 이름을 지어줬는지 물어봤다. 그 친구는 상당히 기분을 나빠했다. 그래서 나는 '이름값을 못하는 건 줄 아나보다' 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돌이 되기도 전에 광주의 대의동 파출소 앞에 버려져서 이름이 대의였던 것이었다. 문자를 통해 사람을 보려고 하다니. 창백한 먹물의 관념성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이런 자신을 변화시키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신 교수는 "스스로 변화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소통이 불가능하다"며 "결국 소통은 자신의 변화와 다른 사람의 변화를 전제로 할 때만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변화하고 있는데 자신의 영토를 고집하고 그 기득권을 지키려는 집단만이 변화를 거부한다"고 덧붙였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아직도 우리 사회 많은 사람들이 근대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논리 중심적이고 이념적인 사고를 강요하려고 한다. 우리 사회를 제대로 볼 줄 아는, 사람들의 정서를 정확히 읽을 수 있는 훈련을 해야 한다. 시냇물은 강물을 만나면 자기가 강물이 되고, 강물은 바다를 만나면 바다가 된다. 자신의 영토성, 자기의 이해관계를 버리고 부단하게 변화하며 소통해야 한다. 변화하지 않고 공존하는 것은 근대성의 변형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신 교수는 "단순한 연민, 또는 근대성의 변형인 공감을 뛰어넘어 끊임없이 변화해서 '더불어 숲'으로 가자"고 강연을 정리했다.

"가능성은 나한테 있다. 나 자신의 변화와 개조를 도모하고 있는 것도 근대적 문맥에서 벗어날려는 가능성 중 하나다. 같이 서면, 서로 어깨동무하고 서면 변화의 가능성은 있다. 나무의 최고 완성은 낙락장송이 아니라 숲이다. 함께 가면 길은 그 등 뒤에 생기는 것이다. 위로하고, 격려하고 약속하고 서로 깨달으며 길을 만들어가자."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오른쪽에서 두번째)가 23일 저녁 서울 중구 정동 이화여고 100주년기념관에서 '민주주의를 위한 시민네트워크(준)' 주최로 열린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초청 강연회 '김제동, 신영복에게 길을 묻다'에서 성공회대 교수진으로 구성된 더숲 트리오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오른쪽에서 두번째)가 23일 저녁 서울 중구 정동 이화여고 100주년기념관에서 '민주주의를 위한 시민네트워크(준)' 주최로 열린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초청 강연회 '김제동, 신영복에게 길을 묻다'에서 성공회대 교수진으로 구성된 더숲 트리오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유성호

#신영복 #김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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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입사. 사회부·현안이슈팀·기획취재팀·기동팀·정치부를 거쳤습니다. 지금은 서울시의 소식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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