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 공무원노조 통합과 민주노총 가입이 조합원들의 투표로 가결된 가운데 9월 22일 밤 서울 영등포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정헌재 전국민주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 임성규 민주노총 위원장, 오병욱 법원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 손영태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이 손을 맞잡아 들고 있다.
권우성
공무원은 인권이 없는 국가의 노예가 아니다정부가 이번에 문제 삼고 있는 공무원 노조의 민중의례는 국가기관이 아닌 공무원 노조가 주관한 노조활동 차원의 자체 행사였기 때문에, 결코 공무원법상 공무원 의무 위반이 될 수 없다. 공무원 노조는 이미 신분의 특수성으로 단체행동권에 제약을 받는 등 다른 일반노조와 달리 많은 제한을 받고 있다. 대한민국 공무원들은 '특정 정당이나 정권의 봉사자가 아니라,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해내고 있다.
단순히 구성원이 공무원 신분일 뿐이고, 그 조직자체는 국가기관이 아닌 민간조직인 공무원 노조의 자체 행사에 대해 국민의례를 강요하는 것은 파시즘적 발상에 다름 아니다. 정부의 주장대로라면, 근무 시간 이외의 행정부 안 종교동아리 행사 때 그들의 신분이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예배 전에 획일적으로 국기에 대한 경례와 국기에 대한 맹세, 애국가 제창 등의 국민의례를 치른 뒤 기도하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다. 공무원이 노조 자체 행사에서 민중가요를 부르거나 트로트를 부르거나 찬송가를 부르건, 정부가 관여할 사항이 아니다.
공무원은 비록 신분의 특수성으로 기본권에 일부 제한을 받지만, 아무런 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국가의 노예가 아니다. 정부가 공무원 노조의 자체 행사에 민중의례를 금지하도록 하는 공문을 내린 행위나, 그 공문의 지침을 근거로 징계를 하겠다는 방침은 모두 법적 근거가 없는 공무원 노조 탄압일 뿐이다. 정부 스스로 부당노동 행위라는 불법행위를 저지르는 것이다.
국민의례나 민중의례나 애국하는 마음은 똑 같다더욱이 민중의례는 노무현 정부 때부터 해오던 공무원 노조의 관행인데, 그동안 가만있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멋대로 법해석을 하고 있다. 똑같은 행위가 왜 정권에 따라 합법과 불법으로 달리 해석되어야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국민의례 대신 민중의례를 한다고 공무원의 품위를 해친다는 법적 조항은 어디에도 없다. 국민의례도 애국하는 의식이고, 민중의례도 애국하는 의식이다. 애국하는 방법이 다를 뿐이다. 국가의 공식행사에는 국민의례로 애국하는 마음을 나타내고, 노조나 시민사회는 민중의례든 노동의례든 시민의례든 자율적으로 하면 된다.
정부가 이렇게 '품위 위반'이라는 해괴한 논리를 들이대며, 공무원 노조 간부를 징계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두말할 필요 없이 공무원 노조에 대한 정치적 탄압이다. 그동안 분열되어 있다 하나로 통합한 통합공무원노조가 민주노총에 가입방침을 밝히자, 대대적인 공무원 노조 초토화에 나선 것이다. 방송계에서 정치적 반대자인 윤도현과 김제동, 김구라를 퇴출시키려는 것과 같이, 공무원 노조에서 정부에 비판적인 인사들을 제거하려는 의도다.
이미 정부는 느닷없이 전국공무원노조의 법적지위를 박탈하고, 손영태 위원장을 파면하고, 조합비 및 후원회비를 급여에서 원천공제하는 것을 금지하고, 기존 단체협약을 해지하고, 단체교섭을 중지하고, 노조에 제공되던 사무실도 회수하고, 노조 현판도 철거했다. 공무원의 '복무규정'도 개정해 공무원이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행위를 금지하도록 하는 입법예고도 했다. 통합공무원노조에 대한 정부의 노골적인 적대감을 그대로 드러낸다.
통합공무원노조의 민주노총 가입과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데도, 이명박 정부는 자신 및 한나라당과 정책연대를 한 한국노총과 달리 민주노총은 그냥 미우니 만만한 공무원노조를 손봐주겠다는 심보다.
닮은꼴의 대중연예인 퇴출과 공무원 노조 퇴출공무원노조에 대한 이런 정치적 탄압이 대중연예인들에 대한 방송퇴출과 똑같은 수순으로 이뤄진 것을 보면, 현 정부가 얼마나 치밀하게 전 방위적으로 정치적 반대자 제거 작업에 나서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뉴라이트를 비롯한 극우세력들은 오래 전에 공무원노조가 자체 행사에서 민중의례를 하는 것을 반국가단체나 반정부단체 활동으로 낙인찍어왔다. 지난 19일 시민단체가 정치 참여를 위해 만든 '희망과 대안'의 창립식에도 보수단체 회원들이 들어와 국민의례를 하지 않았다는 트집을 잡아 행사를 무산시키지 않았는가.
극우단체들의 이런 민중의례에 대한 적대적 반감을 반영해 신지호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 10월 5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민중의례를 하는 공무원 노조를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반국가단체'로 몰아세웠고, 정부는 이를 받아 10월 23일 공무원 노조의 민중의례를 금지하는 공문을 내렸다.
뉴라이트 세력들이 김제동과 김구라를 '친노무현'으로 낙인찍은 뒤, 출연료나 막말 논란 등의 이유를 들어 방송에서 퇴출시키려는 수순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 뉴라이트 및 인터넷 보수논객 등 극우세력과 한나라당, 이명박 정권의 3자가 북 치고 장구 치면서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마구잡이 마녀사냥을 하고 있는 셈이다.
민중의례를 이유로 공무원 노조를 탄압하는 정부의 핑계는 궁색하다 못해 옹졸하기까지 하다. 더욱이 신지호 의원처럼 마치 국민의례를 하지 않고 민중의례를 하는 사람을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반국가적 인물'로 규정하는 것은 실상 이념공세이면서 색깔론에 다름 아니다. 정부의 민중의례 금지도 신 의원의 생각과 같은 연장선상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애국자를 가르는 정부의 놀라운 궁예식 관심법국민의례를 하느냐 민중의례를 하느냐에 따라, 애국자냐 비애국자냐로 나누는 것 자체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논리인가. 행사의 내용이나 장소, 그리고 행사 주체에 따라 국민의례를 할 수도 있고, 민중의례를 할 수도 있는 것인데, 국민의례 여부로 애국심의 존재여부를 가르는 그 발상이 놀랍기만 하다. 이 정도면 정말 '궁예식 관심법'이다. 이명박 정부의 노선은 '선진화'가 아니라 '후진화'며, '친서민중도실용노선'이 아니라 '친극우이념노선'이라고 해야 한다.
국기에 대한 경례나 국기에 대한 맹세, 애국가 제창,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 등을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국민의례는 우리나라와 일본, 미국 등에 국한 된 것이지, 유럽 등 다른 나라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제도다. 국민의례는 국가주의나 전체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옛날 독일 나치의 파시즘이나 소련 공산주의의 전체주의 국가들이 강조하던 의식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국기에 대한 맹세는 일제의 '황국신민서사('일본천황'에 대한 충성 서약)'에서 따온 것으로, 국가주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 제창은 국민통합과 나라 사랑 차원에서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국기에 대한 맹세는 아무래도 양심의 자유에 어긋난다. 국가의 주인인 국민이 객체이며 비인격체인 국기에 대해 공개적으로 충성 맹세를 한다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인간의 자주성과 주체성도 훼손하는 행위가 아닐까.
러시아 출신 한국인 박노자가 쓴 '맹세 문화'라는 어느 글에는 옛 소련 시절 초등학교 다닐 때 "심신을 바쳐 모든 힘을 쏟아 공산당의 사업을 복무하도록 할 것"을 엄숙히 맹세하면서 거수경례를 했다는 내용이 있다. 우리가 어릴 적 외치던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는 국기에 대한 맹세와 박노자의 맹세가 너무 닮았지 않았는가.
나는 박노자의 글을 읽으면서 섬뜩함을 느꼈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국기에 대한 맹세와 소련의 공산당에 대한 맹세의 내용이 왠지 너무 닮았기 때문이다. 독일의 나치가 "하이, 히틀러(히틀러에게 충성을)"하고 복창하며 경례를 하거나, 스탈린 시대 소련의 공산당에 대한 충성 서약, 박정희의 유신시대 충성 맹세가 오버랩된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는 <국기에 대한 맹세> 대신 <아름다운 우리시> 들려주자이참에 정말 몇 년 전 폐지를 둘러싸고 논란을 벌이다 결국 일부 문안의 내용을 수정하는 것으로 결론이 난 국기에 대한 맹세의 필요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심각히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특히 네다섯 살의 어린이들이 다니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의 국기에 대한 맹세만큼은 고쳐야 하지 않을까. 어린이들에게 매주 월요일 애국조회가 과연 필요한가에 대한 의문도 들지만, 다른 것은 몰라도 아이들에게 국기에 대한 맹세만큼은 강제로 외우게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자기 스스로 판단할 능력이 안 되는 아이들에게 국기에 대한 맹세를 시킨다고 애국심이 생길까. 차라리 국기에 대한 맹세 대신, 김소월의 진달래꽃이나 정지용의 향수, 윤동주의 서시 같은 아름다운 우리 시를 들려주는 것이 정서적으로 더 좋지 않을까.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만큼은 국기에 대한 맹세 대신 매주 월요일마다 아름다운 우리 시 한 편을 들려주는 것은 어떨까. 아무런 내용도 모르면서 국기에 대한 맹세를 달달 외운 아이들보다, 어릴 적부터 아름다운 우리 시를 듣고 자란 아이들이 자라서 더 우리나라를 사랑할 것 같다.
아무튼, 국가기관이 아닌 공무원 노조에 대한 국민의례의 강요는 시대착오적인 정책이다. 국가기관의 공식 행사에서는 국민의례가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노조나 시민사회, 민간단체 행사에까지 국민의례를 강제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다문화시대에 접어들면서 시대흐름은 유럽국가처럼 아예 국민의례의 폐지로 가고 있지 않은가.
국민의례의 남용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애국심은 국민의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지, 국민의례라는 의식을 해야만 생기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옛날 매일 해질 무렵 국기하강식의 연주가 울려 퍼지면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동작 그만' 자세를 취하느라 얼마나 불편하고, 극장의 영화상영이나 스포츠행사 때마다 하는 국민의례로 얼마나 힘들었는가. 나의 애국심은 그 때나 지금이나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아, 국민의례의 여부는 애국심과는 별로 관련이 없는 것 같다.
가장 웃기는 인터넷 사이트, '웃대'? '웃정'?정부가 민중의례를 이유로 공무원 노조 간부를 징계하겠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도 시대착오적인 정책이며, 그 속을 들여다보면 전 방위적인 정치적 탄압이다. 정부는 공무원 노조를 징계하는데, 더 이상 '품위'를 꺼내지 말라. 그냥 민주노총에 가입하려는 공무원 노조를 혼내주고 싶다고 해라. 탄압의 실제 이유가 바로 민주노총 가입 때문이 아닌가. 그리고, 아예 이명박 정부의 국정노선을 '전 공무원의 해직화'라고 명패를 바꿔달아라.
아무리 마음 속으로 미워도 법적인 근거가 없으면, 공무원 노조를 그냥 내버려둬야 한다. 엉뚱한 조항을 갖다 들이대거나 멋대로 법해석을 적용하다가는 정부가 더 큰 망신을 당할 수 있다. 이미 국민들로부터 웃음거리로 전락했고, 세계의 해외토픽감으로 떠올랐다.
국민을 웃기는 정부, 이명박 정부의 개그는 언제 끝날 것인가. 이미 대한민국은 '개그 하는 정부, 비웃는 국민'의 사회가 되었다. 이러다 정말 인터넷에서 가장 웃기는 사이트가 '웃대(웃긴대학)'가 아니라 '웃정(웃긴정부)'이 되지 않을까. 지금 우려되는 것은 공무원의 '품위'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품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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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 하는 정부, 국민의례로 애국심 가르려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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