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 하는 정부, 국민의례로 애국심 가르려 하나

민중의례 핑계 대지 말고 그냥 공무원 노조가 밉다고 해라

등록 2009.10.26 18:56수정 2009.10.26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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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 22일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민주공무원노동조합, 법원공무원노동조합 등 3개 공무원노조가 민주노총에 가입한 것과 관련하여 9월 23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브리핑실에서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이 향후 공무원노조가 민주노총과 연대하여 실정법을 위반하는 불법활동을 할 경우 법에 따라 단호히 대처하기로 입장을 밝히는 법무부, 노동부 3개 부처 장관 공동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지난 9월 22일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민주공무원노동조합, 법원공무원노동조합 등 3개 공무원노조가 민주노총에 가입한 것과 관련하여 9월 23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브리핑실에서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이 향후 공무원노조가 민주노총과 연대하여 실정법을 위반하는 불법활동을 할 경우 법에 따라 단호히 대처하기로 입장을 밝히는 법무부, 노동부 3개 부처 장관 공동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유성호

언제부터 대한민국 정부가 국민들을 이렇게 웃겼나. 정부의 코미디가 갈수록 태산이다. 한식을 세계화한다더니, 이번에는 해외토픽에 나올만한 'MB(이명박 대통령)식 품위유지 코미디'의 국제화다. 처음에는 웃기는 개그인지 알았더니, 자세히 보니 어이가 없는 국가폭력이다.

공무원 노조가 자체 행사 때 국민의례 대신 민중의례를 했다고 정부가 처벌하겠다고 나섰다. 정치적 반대자뿐 아니라 대중연예인인 김제동에 이어 김구라까지 방송에서 퇴출하려는 정부가, 이제는 공무원을 행정부처에서 집단 퇴출시키려고 한다. 그 이유가 폭소를 자아낸다. '공무원의 품위'를 해쳤단다.

가수 나미의 <빙글빙글>처럼 '그저 바라만 보고 있기에'는 정말 나라의 품격이 걱정되는 상황이다. 정작 대한민국의 품위를 훼손한 당사자는 공무원 노조가 아니라, 이명박 정부이다. 최근 <국경 없는 기자회(RSF)>가 발표한 '2009 세계 언론자유 지수'에서 한국은 지난해 47위에서 무려 69위로 떨어졌다. 민주주의 지수에서 가중 중요한 언론자유 지수가 무려 22단계나 떨어진 이명박 정부만큼, 나라의 품위를 손상시킨 사람이 누가 있는가.

정작 나라의 품위를 손상시킨 쪽은?

행정안전부가 최근 민중의례를 했다는 이유로 공무원 노조 간부들을 징계하겠다는 법적 근거는 국가공무원법 제63조와 지방공무원법 제55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공무원의 '품위유지의 의무' 조항이다. 행정부는 첫 번째 이유로 "공무원이 주먹을 쥔 채 민중가요를 부르고 대정부 투쟁의식을 고취하는 이러한 행위는 헌법의 기본질서를 훼손하는 행위"로서 공무원의 품위를 손상시켰다고 한다.

간단히 말하면, 민중의례가 공무원의 품위를 훼손시킨다는 주장이다. 정말 그럴까. 민중의례가 어떤 내용인가를 정부는 알고서 하는 말인가. 민중의례는 오래 전부터 노동계와 시민단체 사이에서 일반적인 국민의례 대신, 자체 행사에서 행하는 절차적 의식이다. 국민의례가 국기에 대한 경례(국기에 대한 맹세)와 애국가 제창,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 순으로 이뤄지는 데 반해, 민중의례는 애국가 대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민주열사에 대한 묵념으로 이뤄진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라는 내용의 민주화에 대한 다짐을 노래하는 내용이다. 애초 광주 민주화운동을 기리는 노래였으나, 지금은 일반적인 민주화에 대한 열망으로 불리는 노래다. 국가 전복을 촉구하거나 퇴폐적인 내용이 담긴 불건전한 노래가 아니다. 민주열사에 대한 묵념 역시 민주화 운동을 하다 희생한 사람들에 대한 기도다. 


민중의례 어디에도 반국가단체의 활동을 고무하거나 사회의 선량한 풍속을 해치는 내용이 들어 있지 않다.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무슨 공무원의 품위유지 위반이란 말인가. 정부가 "대정부 투쟁의식을 고취하는 행위"라고 지레 짐작하는 것은 도둑이 제 발 저린 격이다.

공무원은 노래 부를 때 차렷 자세로 불러야 할까


현 이명박 정부가 박정희나 전두환 노태우 정권처럼 독재정권이 아니라면, 하나도 두려워할 것이 없는 내용이다. 정부가 민중의례를 탄압한다는 것은 스스로 민주정부가 아닌 독재정권이라는 것을 시인하는 셈이다. 민중의례를 반국가적 활동으로 생각하는 이명박 정부의 의식이야말로 4.19혁명과 5.18광주민주화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는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체성을 부정하고 민주주의를 부인하는 행위다.

국가공무원법상의 '공무원의 품위유지 의무' 조항은 이런 데 적용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헌법학 원론이나 행정법 총론만 읽어봐도 나오는 내용이다. 행정법 총론에는 공무원의 '품위'는 "주권자인 국민의 수임자로서의 직책을 맡아 수행해 나가기에 손색이 없는 인품"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알코올 중독이나, 첩을 둔다거나, 촌지를 받는 등의 부정한 행위나 불건전한 행위를 하지 말라는 뜻이다.

공무원이 민주화를 열망하는 묵념을 하고, 정부 표현대로 "주먹을 쥔 채" 노래를 부른다고 해서 품위가 손상되지 않는다. 공무원이라고 노래 부를 때, 얌전하게 차렷 자세로 부를 필요는 없지 않은가. 노래 부를 때 주먹을 쥐든 차렷 자세를 하든 국가가 관섭할 사항이 아니다. 공무원 신분으로서의 국가 공식 행사에 참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공무원을 포함해 모든 국민에게 보장하는 헌법상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걸핏하면, 공무원 노조에 대해 '정치적 중립' 위배를 따지던 정부가 민중의례에 대해서는 '정치적 중립 의무'가 아니라, '품위 유지 의무'를 들이대고 있다. 민중의례 자체가 구체적인 정치적 행위가 아니니, 아무리 따져도 정치적 중립 의무를 들이댈 수가 없었을 것이다.

국가 행사에는 국민의례를 잘 따르는 '참 착한' 공무원 노조

정부가 내세우는 두 번째 이유는 "국민의례 대신 민중의례를 하는 것은 공무원으로서의 기본자세에 문제"라는 것이다. 터무니없는 얘기다. 민중의례를 한다고 공무원으로서의 기본자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정부가 관여할 필요도 없고 관여해서도 안 되는 억지 논리다.

공무원 노조 그 자체는 국가기관이 아닌데다, 공무원 노조가 민중의례를 하는 것은 자체 노조 행사 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부 관여사항이 아니다. 오히려 정부가 국민의례를 하라거나 민중의례를 하라고 하는 것 자체가 노조의 구체적 활동에 간섭하는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하는 불법행위다.

만약 공무원 노조원이라고 하더라도 자체 노조 행사가 아니라, 국가기관의 공식 행사에서  국민의례를 하지 않은 경우에는 징계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공무원은 직무상 법령준수 및 복종 의무와, 신분상 품위유지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례는 현재 대통령령과 국무총리 지시에 규정되어 있다. 일반인은 설령 국민의례를 준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법적인 처벌이나 징계를 받지 않지만, 공무원은 그 신분상 특수성으로 인해 징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공무원 노조 소속 공무원들은 참 말을 잘 듣는다. 현재 노조 소속 공무원들은 자신이 속한 국가기관이 주관하는 행사에서 실시하는 국민의례에는 모두 철저히 그 의식을 따르고 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노동단체들도 자체 행사에서는 국민의례 대신 민중의례(또는 노동의례)로 대신하지만, 소속 노조원들이 국가 행사에 참여할 경우에는 국민의례를 거부하지 않는다. 정부가 아무런 걱정할 필요 없다. 공무원 노조원뿐 아니라 대한민국 일반 노조원들도 애국하는 마음은 정부 관료보다 훨씬 앞선다.

 3개 공무원노조 통합과 민주노총 가입이 조합원들의 투표로 가결된 가운데 9월 22일 밤 서울 영등포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정헌재 전국민주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 임성규 민주노총 위원장, 오병욱 법원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 손영태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이 손을 맞잡아 들고 있다.
3개 공무원노조 통합과 민주노총 가입이 조합원들의 투표로 가결된 가운데 9월 22일 밤 서울 영등포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정헌재 전국민주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 임성규 민주노총 위원장, 오병욱 법원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 손영태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이 손을 맞잡아 들고 있다.권우성

공무원은 인권이 없는 국가의 노예가 아니다

정부가 이번에 문제 삼고 있는 공무원 노조의 민중의례는 국가기관이 아닌 공무원 노조가 주관한 노조활동 차원의 자체 행사였기 때문에, 결코 공무원법상 공무원 의무 위반이 될 수 없다. 공무원 노조는 이미 신분의 특수성으로 단체행동권에 제약을 받는 등 다른 일반노조와 달리 많은 제한을 받고 있다. 대한민국 공무원들은 '특정 정당이나 정권의 봉사자가 아니라,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해내고 있다.

단순히 구성원이 공무원 신분일 뿐이고, 그 조직자체는 국가기관이 아닌 민간조직인 공무원 노조의 자체 행사에 대해 국민의례를 강요하는 것은 파시즘적 발상에 다름 아니다. 정부의 주장대로라면, 근무 시간 이외의 행정부 안 종교동아리 행사 때 그들의 신분이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예배 전에 획일적으로 국기에 대한 경례와 국기에 대한 맹세, 애국가 제창 등의 국민의례를 치른 뒤 기도하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다. 공무원이 노조 자체 행사에서 민중가요를 부르거나 트로트를 부르거나 찬송가를 부르건, 정부가 관여할 사항이 아니다.

공무원은 비록 신분의 특수성으로 기본권에 일부 제한을 받지만, 아무런 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국가의 노예가 아니다. 정부가 공무원 노조의 자체 행사에 민중의례를 금지하도록 하는 공문을 내린 행위나, 그 공문의 지침을 근거로 징계를 하겠다는 방침은 모두 법적 근거가 없는 공무원 노조 탄압일 뿐이다. 정부 스스로 부당노동 행위라는 불법행위를 저지르는 것이다.

국민의례나 민중의례나 애국하는 마음은 똑 같다

더욱이 민중의례는 노무현 정부 때부터 해오던 공무원 노조의 관행인데, 그동안 가만있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멋대로 법해석을 하고 있다. 똑같은 행위가 왜 정권에 따라 합법과 불법으로 달리 해석되어야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국민의례 대신 민중의례를 한다고 공무원의 품위를 해친다는 법적 조항은 어디에도 없다. 국민의례도 애국하는 의식이고, 민중의례도 애국하는 의식이다. 애국하는 방법이 다를 뿐이다. 국가의 공식행사에는 국민의례로 애국하는 마음을 나타내고, 노조나 시민사회는 민중의례든 노동의례든 시민의례든 자율적으로 하면 된다.

정부가 이렇게 '품위 위반'이라는 해괴한 논리를 들이대며, 공무원 노조 간부를 징계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두말할 필요 없이 공무원 노조에 대한 정치적 탄압이다. 그동안 분열되어 있다 하나로 통합한 통합공무원노조가 민주노총에 가입방침을 밝히자, 대대적인 공무원 노조 초토화에 나선 것이다. 방송계에서 정치적 반대자인 윤도현과 김제동, 김구라를 퇴출시키려는 것과 같이, 공무원 노조에서 정부에 비판적인 인사들을 제거하려는 의도다.

이미 정부는 느닷없이 전국공무원노조의 법적지위를 박탈하고, 손영태 위원장을 파면하고, 조합비 및 후원회비를 급여에서 원천공제하는 것을 금지하고, 기존 단체협약을 해지하고, 단체교섭을 중지하고, 노조에 제공되던 사무실도 회수하고, 노조 현판도 철거했다. 공무원의 '복무규정'도 개정해 공무원이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행위를 금지하도록 하는 입법예고도 했다. 통합공무원노조에 대한 정부의 노골적인 적대감을 그대로 드러낸다.

통합공무원노조의 민주노총 가입과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데도, 이명박 정부는 자신 및 한나라당과 정책연대를 한 한국노총과 달리 민주노총은 그냥 미우니 만만한 공무원노조를 손봐주겠다는 심보다.

닮은꼴의 대중연예인 퇴출과 공무원 노조 퇴출

공무원노조에 대한 이런 정치적 탄압이 대중연예인들에 대한 방송퇴출과 똑같은 수순으로 이뤄진 것을 보면, 현 정부가 얼마나 치밀하게 전 방위적으로 정치적 반대자 제거 작업에 나서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뉴라이트를 비롯한 극우세력들은 오래 전에 공무원노조가 자체 행사에서 민중의례를 하는 것을 반국가단체나 반정부단체 활동으로 낙인찍어왔다. 지난 19일 시민단체가 정치 참여를 위해 만든 '희망과 대안'의 창립식에도 보수단체 회원들이 들어와 국민의례를 하지 않았다는 트집을 잡아 행사를 무산시키지 않았는가.

극우단체들의 이런 민중의례에 대한 적대적 반감을 반영해 신지호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 10월 5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민중의례를 하는 공무원 노조를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반국가단체'로 몰아세웠고, 정부는 이를 받아 10월 23일 공무원 노조의 민중의례를 금지하는 공문을 내렸다.

뉴라이트 세력들이 김제동과 김구라를 '친노무현'으로 낙인찍은 뒤, 출연료나 막말 논란 등의 이유를 들어 방송에서 퇴출시키려는 수순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 뉴라이트 및 인터넷 보수논객 등 극우세력과 한나라당, 이명박 정권의 3자가 북 치고 장구 치면서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마구잡이 마녀사냥을 하고 있는 셈이다.

민중의례를 이유로 공무원 노조를 탄압하는 정부의 핑계는 궁색하다 못해 옹졸하기까지 하다. 더욱이 신지호 의원처럼 마치 국민의례를 하지 않고 민중의례를 하는 사람을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반국가적 인물'로 규정하는 것은 실상 이념공세이면서 색깔론에 다름 아니다. 정부의 민중의례 금지도 신 의원의 생각과 같은 연장선상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애국자를 가르는 정부의 놀라운 궁예식 관심법

국민의례를 하느냐 민중의례를 하느냐에 따라, 애국자냐 비애국자냐로 나누는 것 자체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논리인가. 행사의 내용이나 장소, 그리고 행사 주체에 따라 국민의례를 할 수도 있고, 민중의례를 할 수도 있는 것인데, 국민의례 여부로 애국심의 존재여부를 가르는 그 발상이 놀랍기만 하다. 이 정도면 정말 '궁예식 관심법'이다. 이명박 정부의 노선은 '선진화'가 아니라 '후진화'며, '친서민중도실용노선'이 아니라 '친극우이념노선'이라고 해야 한다.

국기에 대한 경례나 국기에 대한 맹세, 애국가 제창,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 등을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국민의례는 우리나라와 일본, 미국 등에 국한 된 것이지, 유럽 등 다른 나라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제도다. 국민의례는 국가주의나 전체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옛날 독일 나치의 파시즘이나 소련 공산주의의 전체주의 국가들이 강조하던 의식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국기에 대한 맹세는 일제의 '황국신민서사('일본천황'에 대한 충성 서약)'에서 따온 것으로, 국가주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 제창은 국민통합과 나라 사랑 차원에서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국기에 대한 맹세는 아무래도 양심의 자유에 어긋난다. 국가의 주인인 국민이 객체이며 비인격체인 국기에 대해 공개적으로 충성 맹세를 한다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인간의 자주성과 주체성도 훼손하는 행위가 아닐까.

러시아 출신 한국인 박노자가 쓴 '맹세 문화'라는 어느 글에는 옛 소련 시절 초등학교 다닐 때 "심신을 바쳐 모든 힘을 쏟아 공산당의 사업을 복무하도록 할 것"을 엄숙히 맹세하면서 거수경례를 했다는 내용이 있다. 우리가 어릴 적 외치던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는 국기에 대한 맹세와 박노자의 맹세가 너무 닮았지 않았는가.

나는 박노자의 글을 읽으면서 섬뜩함을 느꼈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국기에 대한 맹세와 소련의 공산당에 대한 맹세의 내용이 왠지 너무 닮았기 때문이다. 독일의 나치가 "하이, 히틀러(히틀러에게 충성을)"하고 복창하며 경례를 하거나, 스탈린 시대 소련의 공산당에 대한 충성 서약, 박정희의 유신시대 충성 맹세가 오버랩된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는 <국기에 대한 맹세> 대신 <아름다운 우리시> 들려주자

이참에 정말 몇 년 전 폐지를 둘러싸고 논란을 벌이다 결국 일부 문안의 내용을 수정하는 것으로 결론이 난 국기에 대한 맹세의 필요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심각히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특히 네다섯 살의 어린이들이 다니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의 국기에 대한 맹세만큼은 고쳐야 하지 않을까. 어린이들에게 매주 월요일 애국조회가 과연 필요한가에 대한 의문도 들지만, 다른 것은 몰라도 아이들에게 국기에 대한 맹세만큼은 강제로 외우게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자기 스스로 판단할 능력이 안 되는 아이들에게 국기에 대한 맹세를 시킨다고 애국심이 생길까. 차라리 국기에 대한 맹세 대신, 김소월의 진달래꽃이나 정지용의 향수, 윤동주의 서시 같은 아름다운 우리 시를 들려주는 것이 정서적으로 더 좋지 않을까.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만큼은 국기에 대한 맹세 대신 매주 월요일마다 아름다운 우리 시 한 편을 들려주는 것은 어떨까. 아무런 내용도 모르면서 국기에 대한 맹세를 달달 외운 아이들보다, 어릴 적부터 아름다운 우리 시를 듣고 자란 아이들이 자라서 더 우리나라를 사랑할 것 같다.

아무튼, 국가기관이 아닌 공무원 노조에 대한 국민의례의 강요는 시대착오적인 정책이다. 국가기관의 공식 행사에서는 국민의례가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노조나 시민사회, 민간단체 행사에까지 국민의례를 강제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다문화시대에 접어들면서 시대흐름은 유럽국가처럼 아예 국민의례의 폐지로 가고 있지 않은가.

국민의례의 남용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애국심은 국민의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지, 국민의례라는 의식을 해야만 생기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옛날 매일 해질 무렵 국기하강식의 연주가 울려 퍼지면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동작 그만' 자세를 취하느라 얼마나 불편하고, 극장의 영화상영이나 스포츠행사 때마다 하는 국민의례로 얼마나 힘들었는가. 나의 애국심은 그 때나 지금이나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아, 국민의례의 여부는 애국심과는 별로 관련이 없는 것 같다.

가장 웃기는 인터넷 사이트, '웃대'? '웃정'?

정부가 민중의례를 이유로 공무원 노조 간부를 징계하겠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도 시대착오적인 정책이며, 그 속을 들여다보면 전 방위적인 정치적 탄압이다. 정부는 공무원 노조를 징계하는데, 더 이상 '품위'를 꺼내지 말라. 그냥 민주노총에 가입하려는 공무원 노조를 혼내주고 싶다고 해라. 탄압의 실제 이유가 바로 민주노총 가입 때문이 아닌가. 그리고, 아예 이명박 정부의 국정노선을 '전 공무원의 해직화'라고 명패를 바꿔달아라.

아무리 마음 속으로 미워도 법적인 근거가 없으면, 공무원 노조를 그냥 내버려둬야 한다.  엉뚱한 조항을 갖다 들이대거나 멋대로 법해석을 적용하다가는 정부가 더 큰 망신을 당할 수 있다. 이미 국민들로부터 웃음거리로 전락했고, 세계의 해외토픽감으로 떠올랐다.

국민을 웃기는 정부, 이명박 정부의 개그는 언제 끝날 것인가. 이미 대한민국은 '개그 하는 정부, 비웃는 국민'의 사회가 되었다. 이러다 정말 인터넷에서 가장 웃기는 사이트가 '웃대(웃긴대학)'가 아니라 '웃정(웃긴정부)'이 되지 않을까. 지금 우려되는 것은 공무원의 '품위'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품위'다.
#민중의례 #통합공무원노조 #애국조회 #국기에 대한 맹세 #국민의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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