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랑대 표지석
김대갑
그 여인 또한 스님의 훤칠한 풍모에 그만 넋이 나가고 말았다. 첫눈에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그날 밤 합궁의 밤을 보내게 되었다. 그 후 스님은 보름달이 뜨는 날이면 늘 용녀를 찾았고, 두 사람은 옥같이 반짝이는 파도를 보며 사랑을 키웠다고 한다. 마침내, 용녀는 스님의 아이를 가졌다. 용녀는 시랑대 바위 위에 몸을 풀 장소를 맞이했고, 스님은 그런 용녀의 모습을 바위 뒤에서 몰래 지켜보아야 했다.
진통이 점차 시작되면서 용녀의 신음소리도 커져만 갔다. 그러나 신음소리가 너무 컸는지 동해 심연에 있던 용왕이 그 소리를 듣고 말았다. 자신의 딸이 인간의 아이를 낳는다는 사실에 용왕의 분노는 극에 달하고 말았다. 그래서 용왕은 엄청나게 큰 파도를 일으켜 용녀와 아이를 휩쓸고 가버렸다.
스님은 순식간에 벌어진 광경을 보고서 용녀와 아기를 구하기 위해 미친 듯이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용왕의 진노가 잔뜩 실린 바다는 사나운 파도를 일으켜 스님마저 집어 삼키고 말았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사랑에 하늘이 감동하였는가. 옥황상제께서는 천마를 바다로 내려 보내 용녀와 아기를 하늘나라로 데려가 그곳에서 살게 해주었다. 그러나 스님은 여전히 바다에 남아 구천을 떠도는 신세가 되었는데, 지금도 보름달이 뜬 밤이면 스님이 용녀를 애타게 부르는 소리가 파도 속에서 들린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