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내가 컸던 우리 집 측간은 '푸세식'이었다. 수세식으로 고친 지가 몇 해 되지 않는다. 칠남매인 우리 집 식구들은 어릴 적부터 똥을 싸기 위해 줄을 서곤 했다. 두세 명이 엇갈리는 날이면 어김없이 윗집 측간을 쫓아 올라가야 했다.
물론 그마저도 훌가분한 게 아니었다. 아버지가 윗집 측간에 다녀오는 우리들을 발견하면 어김없이 불호령을 내렸다. 좋은 똥거름을 왜 남의 집에 퍼다 주고 오느냐는 뜻이었다. 더욱이 그 옛날 조선시대 법률까지 들먹이곤 했다.
"재를 버리는 자는 곤장 삼십대였고, 똥을 버리는 자는 곤장 오십대였어."
그것으로도 끝나지 않았다. 중간에 하셨던 말이 무엇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마지막 말은 아직도 또렷이 기억된다.
"똥이 밥이 되고, 밥이 생명이 되는 것이다. 기억해라."
솔직히 나는 그때마다 그 말을 잔소리로 여겼다. 그렇지만 전경수 교수의 <물걱정 똥타령>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가르침을 더 깊이 새길 수 있게 만들어 준다.
"똥이 물과 섞이는 것은 상극이지만, 똥이 흙과 섞이는 것은 상생의 현상인 셈이다. 이것이 똥의 오행이고, 나의 똥철학이다. 돼지나 물고기가 사람의 똥을 밥으로 먹는 것은 일종의 분해과정인 셈이다. 그렇게 해서 잘 자란 돼지와 물고기는 사람에게 고단백을 제공한다. 똥과 밥은 이렇게 해서 순환도식을 만들어간다."(69쪽)
이 책에는 서양식 수세식 변기로 인해 예전 우리의 똥과 밥과 생명의 순환체계가 완전 뒤틀려졌음을 꼬집는다. 아울러 수세식 변기로 인해 똥도 분해되기 힘들 뿐더러 그만큼의 물 비용이 낭비되는 이야기도 들려준다. 똥은 무엇보다도 밭에 뿌려야 미생물에 의해 분해작용이 있고, 그 밭에 뿌려진 똥이 우리들의 생명을 살찌게 한다는 가르침도 재확인시켜 준다.
그런데 정말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전하고 있다. 팔당호 부근에 사는 농민이 똥을 밭에 뿌렸다고 구속되어 형을 받았다는 게 그것이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그 지역이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설정되어 있는데, 그 법에 저촉이 되어서 밭에 '비료'를 뿌린 죄로 구속되었다고 한다. 그 농민은 얼마나 억울했겠는가? 그저 밭을 풍요롭게 살찌우게 하고자 하는 의도였지 않겠는가?
생각해 보라. 농약과 화학비료의 투입으로 죽어가는 땅을 살리기 위해 밭에다 똥을 뿌린 농민의 지혜가 얼마나 돋보이는 일인가? 그런데도 농약과 화학비료를 밭에 뿌린 농민들은 괜찮고, 똥을 뿌린 농민만 구속시키다니, 어찌 그것이 타당할 수 있는 일인가? 그 까닭에 전경수 교수도 납득이 가지 않을 뿐더러, 함께 뿔이 났던 것이다.
지금 그는 강남구 세곡동에 위치한 남향받이의 조용한 동네에 살고 있다고 한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작은 슈퍼와 평범한 양옥집들, 그리고 화훼 하우스가 있는 동네라고 한다. 그곳에서도 그는 똥을 처리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했다고 한다. 온 가족을 설득하여 마당에 각자의 똥을 묻을 수 있는 구덩이를 판 게 그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가 좋다고 해도, 밝은 날 엉덩이를 내밀고 똥을 눌 수는 없었다고 한다. 결국 사회적인 전체 시스템이 문제라는 이야기다.
"잠실과 반포에 환경 친화적인 고층 아파트를 짓는다고 했으니, 생태주택이란 개념을 도입해라. 단지 내에 바이오파워플랜트를 건설하는 것이다. 그것으로 미래를 보장할 수 있다. 미래가 보장된 생태아파트는 평당가도 더 비쌀 것이다. 우리의 아이디어로 세계적인 미래형 환경친화 아파트를 만들어보자."(90쪽)
어릴 적 시골 향수가 있는 사람들은 아직도 푸세식 화장실에 대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그 때는 똥은 더러운 게 아니었다. 똥은 냄새만 날 뿐 우리들의 생명을 살찌게 하는 밑거름이자 윤활유였다. 똥의 소중함을 다시금 발견하지 않는 한, 똥은 여전히 더러운 것으로 머릿속에 남게 될 것이고, 그만큼 하수처리비용은 나날이 늘어갈 것이다. 그 때문에 그는 똥의 소중함을 잇는 생태주거공간을 짓자고 이야기하는 것이리라.
2009.10.31 17:44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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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걱정 똥타령
전경수 지음,
채륜,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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