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만 봐서는 영락없는 출가자의 모습인 중학교 시절입니다.
임윤수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도 몇 년간 벼르기만 할 뿐 실행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던 사진을 정리하기 위해 며칠 전부터 틈틈이 필름사진을 디지털화하기 위해 스캐닝을 하고 있습니다.
10여 년 전부터 디지털카메라를 사용하기 시작했으니 거반 40년 가까운 세월이 담긴 추억이며 사진들입니다. 원판불변의 법칙을 알기에 사진에 찍히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도 40년이라는 세월이 있어서 그런지 사진 수가 꽤 됩니다.
칼라사진이 이미 나와 있었지만 중학교를 졸업할 때인 1976년 3월까지 찍은 내 사진들은 전부가 흑백사진이고 그 이후부터는 흑백사진과 칼라사진 석여있습니다.
중학생 때, 삭발한 출가자 모습빡빡 머리에 잿빛 옷을 입는 것으로 출가수행자가 될 수 있다면 그때, 중 3이었던 1975년도의 나는 영락없는 출가자의 모습입니다. 학생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때의 선생님들, 특히 학생과 선생님들의 끗발은 서슬이 퍼렇게 나부끼던 시절이었습니다.
중3이었던 어느 날, 교문에서 두발검사를 하던 학생과 선생님이 머리가 규정보다 조금 더 길다는 이유로 '바리캉'으로 머리카락을 사정없이 밀어버린 데 대한 항의로 이른바 '백호머리'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규정을 어겼으니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마에서 뒤통수, 왼쪽 귀에서 오른쪽 귀까지 열십자가 또렷하게 밀어버린 데 대한 나름대로의 항변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엄청난 반항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머리를 짧게 깎으라고 하니까 최대한 짧게 깎겠다는 오기 정도였을 겁니다.
구내 이발소에 들려 백호머리로 깎아달라고 하니 먼저 가격이 비싸다는 걸 말했습니다. 지금이야 대부분 날만 갈아 끼워가며 쓰면 되지만 그때 이발소에서 사용하던 면도칼은 벽에 널찍한 가죽 띠를 달아매놓고 쓱쓱 갈아가면서 쓰는 면도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