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가 살고 있는 안흥산골 집
박도
나는 아내의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 평생 아파트의 '아'자도 모른 채 청약통장이니, 아파트 분양이니, 그런 말이 뭔지도 모르고 오로지 단독주택에서 살아온 우리 부부에게도 마침내 아파트생활이 눈앞에 다가오게 될 것 같은 예감 때문이었다. 마침내 '올 것이 왔다'라는 끔찍한 생각이 퍼뜩 머릿속에 스쳤다.
'내 늘그막에 무슨 복이 많아 아름다운 강원도 두메산골에 둥지를 틀고는 분수에 만족하며 살고 있는데, 느닷없이 아파트로 가자니… 카사(내 집고양이)도 이미 자유생활에 젖었는데 그 놈은 어찌할 것인가…'
아내의 말
사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안흥 집은 우리 부부 소유가 아니다. 땅은 이 마을 토박이의 것이고, 집은 전주인에게 되파는 조건으로 10년간 아주 싼 값에 사서 지내고 있었다. 처음 이 마을에 내려올 때는 과연 잘 적응할지 몰라 그대로 살아왔지만 살고 보니까 살기 좋은 고장으로 내 이름으로 된 땅도 조금 가질까 생각도 했으나 아내가 극구 반대했다. 아내의 반대에는 드러내고 말하지 않았지만 깊은 뜻이 담겨 있었다.
농사도 제대로 짓지도 못한 사람이 땅을 가지게 되면 농사보다 땅값에 관심을 기울이는 투기꾼이 되고, 그러면 글을 쓴다는 이가 가진 자의 처지에서 세상이나 사물을 보게 되리라는 염려한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실 도시의 가진 사람들이 온갖 편법, 불법을 동원하고, 거기다가 교묘하게 위장 전입을 하여 온 국토를 투기장으로 만들지 않았는가.
이튿날 아내와 함께 원주 시내에 있는 모델하우스와 아파트 건설 현장을 둘러보았다. 아내가 마음 속에 점찍은 아파트는 단지 내 가장 작은 평수인데다가 정남향이고, 바로 앞이 산으로 매우 고심하고서 고른 듯했다. 하지만 나는 선뜻 거기로 가고픈 마음이 일지 않았다. 우리 부부가 이 마을에서 아직 서너 해는 더 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내가 굳이 앞당겨 거처를 옮기려는 까닭을 들어보니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로 내 건강을 고려했다. 지난해 연말 딸의 주선으로 우리 부부가 생후 처음 한 보험회사에 '100세 건강보험'을 드는데, 건강검진 결과 아내는 별말 없이 계약이 체결되었으나 나는 두 차례나 퇴자를 맞았다. 거기다가 최근 이런저런 잔병으로 병원에 자주 드나들었다. 더욱이 올 여름 안중근 의사 유적지를 답사하고자 출국 준비 중 별안간 가슴통증으로 끝내 무산되자, 아내는 적이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동안 나 몰래 큰 병원이 가까운 곳을 거처로 물색한 결과 마침 그 아파트와 멀지 않은 곳에 원주기독병원이 있었다.
둘째는 우리가 살고 있는 안흥 집은 봄에서 가을까지는 살기가 좋아도 겨울나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강추위와 겨울가뭄 때문이다. 본채에는 심야보일러 난방을 하였지만 난방호스가 실내에 골고루 다 깔리지 않아 몹시 추웠다. 거기다가 해마다 반복되는 겨울가뭄은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산골에서 물을 사먹거나 화장실 사용도 마음대로 못하고, 빨랫감은 모아 차에 실고 서울에 가서 빨아왔다. 군으로, 면사무소로 가서 알아봐도 지대가 높은 데다 주민이 적어 당분간 상수도 계획이 없다고 했다.
셋째는 서울에 사는 아이들이 산골 동네로 오기도 불편하거니와 그들이 와서는 편히 쉴 수 있는 공간도 없다는 점이다. 그밖에도 지금은 아파트 미분양이 속출하는 특별 분양기간으로 값도 쌀 뿐더러, 우리의 살림 형편에도 맞고, 이만한 아파트를 서울에 장만하려면 최소한 서너 배는 더 줘야 한다면서 나를 간곡히 설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