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태희 노동부 장관이 '복수노조-노조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조항 시행'에 대해 연일 강경한 발언을 터뜨리고 있다. 지난 10일 임 장관은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는 법 개정 없이도 가능하다, 내년부터 반드시 시행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복수노조 허용 뒤에 창구 단일화가 안 될 경우, 사용자가 교섭을 거부해도 불법으로 간주 안 할 것"이라고 했다.
지난 10월 30일에는 복수노조에 대해 "노조설립의 자유는 언론의 자유와 똑같다, 언론사가 (추가로) 생긴다고 나라가 망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노조 전임자 임금에 대해서도 "노동운동은 전임자가 필요하지만 사람을 줄이든지, 조합비를 올리든지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말씀이 '쏘 쿨'하시다. '시행령'만으로 상위의 법을 무시하겠단다. 특히 "노동운동은 필요하지만, 돈은 줄이겠다"니, '헌재'급의 말솜씨까지 갖추셨다. 한나라당과 정운찬 총리도 가세하셨다. "일 안 하고 돈 받는 건 잘못"이란다. 1년 중에 반도 출근 안 하는 국회의원들이 그런 말을 하는 건 참 '거시기'한 얘기지만, 일단 넘어가자. 중요한 건 정부가 노동계와 협의 중인 상황임에도 언론에 일방적인 강경발언을 내보내며, 전임자 임금이나 교섭권에 '핫'하게 달려드는 이유다.
노조전임자 임금 안 주는 게 선진 노사관계?
'노조 전임자'란 노조 업무를 전담하는 사람이다. 1987년 대규모 노동자 투쟁을 거치며 전임자 제도는 대체로 '권리'이자 '관행'으로 인정되었다. 그러나 정부는 재계의 주장대로 1997년 3월 제정된 현행 노조법에 전임자 임금지급을 금지했다. 단 이로 인해 노조 활동이 위축될 것을 우려해 시행은 유예되어 왔다. 여기에 노동계는 '노사자율'을 주장하고 있다.
정부는 연일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가 국제기준"이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 독일, 영국, 미국, 일본 등을 보면 '노사 자율'에 따라 결정할 뿐, 법적 규정은 없다(프랑스와 독일에서는 단체협약을 통해 전임자 임금을 보장받는다). 오히려 국제 사회의 관행이라고 할 만한 기준은 국제노동기구(ILO)의 '기업 내 노동자대표의 보호와 편의 관한 협약' 제135호다. '사업장 단위의 노동자 대표에 대하여 사용자가 필수적인 편의를 제공할 것과 부당한 차별취급을 하지 않을 것'을 정하고 있는 규정이다. 영국 역시 법적 의무가 없음에도 이러한 협약의 기준을 따라 관례적으로 노조 활동에 편의를 제공한다. 국제노동기구는 노조전임자의 급여지급의 금지를 '입법 사항'으로 다루고 있는 한국의 노동법에 대해서 관련 규정을 폐지할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을 살펴보면, 정부의 '임금지급 금지'는 결국 "노조에 편의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말과 다름없다. 딱히 댈 이유가 없을 때 '사실관계를 떠난 국제기준'을 들먹이는 정부의 관행부터 먼저 '금지'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알맹이 빠진 복수노조, 누구 좋으라고 시행하나
'복수노조 허용'에는 협상력이 적은 소수 노조가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점이 있다고 평가돼 왔다. 농협이나 외환은행 노조는 두 개 존재하면서, 서로 교류하며 협조하고 있다.
부정적 영향은 전교조를 통해 볼 수 있다. 교사들의 노조로는 민주노총 소속의 전교조와 한국노총 소속의 한교조, '반 전교조'를 내건 자유교조와 일부 지역에 대한 교조가 있다. 7만여 명의 전교조를 제외한 나머지 조직들은 천 명 남짓하다(2008년 교육과학기술부 자료 기준).
이들은 현재 해당 교육청과의 단체협상을 체결하는데 뚜렷한 진전을 보이고 있지 못하다. 이유는 '압도적 소수'인 한교조와 자유교조가 상당히 많은 교섭위원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전교조 경기지부의 한 관계자는 "조합원 비율에 따르면 교섭위원을 전혀 낼 수 없는 한교조와 자유교조가 터무니없는 교섭인원 배정을 요구하고 있어 막바지 실무교섭이 진통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대략 십여 명의 교섭위원 중 각 단체가 2~3명씩의 인원을 요구하고 있는 것. 그는 "2005년까지 전교조와 한교조가 단체협상을 체결했는데 이후 자유교조 등이 생겼다"며 "최근 전교조 탄압의 한 측면으로 단체협상을 해지시켜 놓고 교육청이 모든 조합의 의견을 듣겠다는 명목 아래 단체협상을 체결하지 않으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향후 기업단위 복수노조가 사측의 노-노분열에 악용될 가능성을 엿보게 되는 대목이다. 더구나 임 장관의 "복수노조의 교섭창구 단일화" 요구는, 이러한 우려를 더욱 키우고 있다.
문제, 어떻게 다뤄야 하나
정부와 한나라당, 재계는 "이 문제는 노사정 화합을 통한 선진 노사관계 수립"을 위한 것이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그러나 여기엔 결정적으로 누락된 부분이 있다. 노사 화합의 원칙이자 의의는 '노동할 권리를 보장하면서 공익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쌍용차를 인수한 후 기술만 '먹튀'한 상하이자본의 행태를 가장 먼저, 또한 꾸준히 지적해 온 것은 쌍용차 노조였다. 노조가 무너진 지금, "노조로 인한 경제적 피해"를 강조하며 노조를 공격했던 정부와 경영진은 아무도 이 문제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 무너지는 회사를 살리려 노력하는 건 경영진보다는 당장 자기 일터를 지키려는 노동자들인 경우가 많았다. 부패한 기업과 경영진을 비판, 고발하는 데도 마찬가지였다. 노동자의 권리가 신장되고 조합이 활성화되는 것은 결국 공익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말이다.
더구나 최근 논란을 일으킨 공무원노조의 민중의례 금지 건 등 정부의 반노동적 행보가 두드러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문제를 정부 일방적인 논의로만 몰고 가는 것은 위험하다.
39년 전, 전태일이 "노동법 준수"을 외치며 분신한 날에 우리는 '이러고 있다'. 39년 전보다는 '선진'한 정부를 바라는 건 욕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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