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11월 27일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전문패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청와대
이명박 대통령은 솔직하면서도 과감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밤 전국에 생중계된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세종시 문제에 대한 태도를 바꾼 것에 대해 비교적 솔직하게 사과했다. 대다수 국민과 야당이 4대강 사업을 비판하는 것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반대를 위한 반대'라고 일축했다. G20 회의와 국격(國格)을 얘기할 때는 도도한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사과는 솔직했지만 아쉽게도 신뢰가 담보되진 않았다. 그의 사과에서는 국가의 균형발전에 대한 고뇌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진정성을 느낄 수 없었다. 더욱이 국민들에게는, 한 번으로는 위기를 모면할 수 없을 것 같아 두 번 고개를 숙이고도 촛불시위를 때려잡고 촛불여론에 재갈을 물린 면종복배(面從腹背)의 아픈 상처가 남아있다.
이 대통령은 2시간 동안의 '대화'에서 40분을 세종시에 할애했다. 대선 과정에서 세종시 원안에 찬성했던 것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유혹을 떨치지 못해 생긴 '대국민 사기극'이었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의 애초 취지이며 국가 발전의 큰 방향인 '균형발전'을 어떻게 이룰지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그는 세종시 문제를 오로지 행정의 효율성과 도시 자족성의 문제로 축소했다. 그에게서 정부 행정의 효율성보다 국가균형발전의 가치를 중시하는 상대방(국민과 야당)과 소통하거나 이해를 구하려는 자세는 티끌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목적 달성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저돌성과 기만성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는 세종시 문제를 논외로 두기로 하자. 이 대통령은 정부가 연내에 마련할 세종시 수정안을 보고도 원안이 더 낫겠다 싶으면 그때 가서 판단해 달라고 말했다. 이 또한 발등에 떨어진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시간 벌기'일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또 한 번 속는 셈치고 수정대안이 나오기 전까지는 믿기로 하자. 그래도 일국의 대통령이 전 국민 앞에서 한 부탁이고, 세종시 문제는 어차피 수정 법안이 국회를 통과해야 해결될 사안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4대강 사업에 대한 그의 기본 인식이다. 그는 고개를 숙인다고 숙였지만 이번에도 면종복배의 꼬리까지 감추지는 못했다. 이 대통령은 대화의 전반부에서는 부끄럽고 후회스럽다는 말을 써가며 고개를 숙였지만 질문이 4대강 사업으로 넘어가자 고개를 세웠다. 그리고 마침내는 "운하는 다음 대통령이 필요하다면 그때 가서 하고 나는 4대강을 하겠다"고 말했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이 사실상 '대운하 살리기'라는 것을 시인한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의 저돌성과 기만성이다. 그는 4대강 사업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가운데 "이런 거 들고 다니는 거 싫은데 (답답해서) 들고 나왔다"며 난데없이 문건 하나를 방송카메라에 비추었다. 그러고는 이렇게 항변했다.
"(사회자와 패널이) 20조(실제로는 22조원)를 들여 이걸(4대강 사업) 한다고 말했는데 김대중 정권 때 2002년도에 루사 태풍이 불었다. 그때 200명 가까이 죽었고 피해가 5조원이었다. 그래서 김대중 정부에서 총리실 주관으로 범정부적 수해대책 보고서를 만들었다. 2004년에 공사를 시작해 43조원을 들여서 강을 살려야 한다는 계획서를 만든 게 보고서로 있다.
노무현 정권 들어와 에위니아 태풍을 만났다. 그때도 사람이 60~70명 죽었고 2~3조원 피해 봤다. 매년 이러니까 평소에도 강을 정비하기 위해 4~5조씩 돈을 투입한다. 그럼에도 매년 홍수 나니까 노무현 정부가 종합계획으로 2007년부터 10년 안에 87조를 들여 공사하려고 했다. 정부 전 부처가 참여해 '신국가 방재시스템 구축방안' 87조원짜리를 만들었다. 제가 지금 20조를 들여 (4대강 사업을) 하겠다는 게 문제가 아니고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이분들은 (전 정부에서) 43조원과 87조원을 들여 해야겠다고 했을 때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눈과 귀를 의심케 한 MB의 문건 흔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