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를 하며 늘 신경쓰는 사람이란?
작게는 저와 함께 고생하는 저희 의원실 식구들이고 크게는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특히 제 주변에 늘 가까이 있는 방식구들은 버선속 뒤집듯 저의 모든 것을 알고 느끼고 어림잡을 것입니다. 왜냐면 오래 저와 같이 했고 실은 제 가족들보다 함께하는 시간이 더 많아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정치의 유혹'을 그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이겨냅니다. 저 자신이 그들에게 '괜찮은 친구'라는 인식과 믿음을 줄 때 지역구민은 물론 이 나라 국민에게도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회의장 회의를 가다 의장실 복도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 천정배의원 등 세 의원을 보았습니다. 이 세분은 미디어법 재논의와 자신들이 낸 의원직 사퇴서 처리를 요구하며 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참 제가 답답하고 부끄러웠습니다. 우선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 세 양반의 보좌진들은 이미 사표를 냈다고 합니다. 당연히 이 겨울에 실직자가 되어 봉급도 받지 못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세 의원은 여전히 법적으로는 '의원신분'입니다.
그리고 세 의원은 국회의장에게 사퇴서를 처리해달라고 요구하는 농성을 합니다. 이것은 분명한 코미디입니다. 자신의 보좌관은 다 사표를 내게 했으면서 본인들은 의장에게 사퇴서를 내라고 농성을 하고 있는 현실 말입니다.
보좌관들, 의원 뜻에 따라 깨끗이 사표냈습니다.
항명하고 싶기도 했겠지만 나름대로 일신상의 '이유'라는 넓은 범위 안에서 쉽지않은 결정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세의원은 '여전히 국회의원'입니다. 보좌관도 지닌 자신의 '거취에 관한 의사결정'조차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장에게 사퇴서를 처리하라고 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그중 비례대표의 경우에는 번짓수도 틀렸습니다. 비례대표는 굳이 의장 찾아갈 것 없이 탈당계만 제출하면 그 즉시 '사퇴의 염원'을 이룰 수 있습니다.
저는 지난 노무현정권 때 12월 19일 대선에서 승리를 하지 못하면 그날로 의원직을 사퇴할 생각이었기에 절차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간단한 것이었습니다 . 비례대표의원은--
그러나 이것은 간단하고 복잡하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조그만 회사에서도 자기 거취는 분명히 하는 것이 당연한 직장인으로서 예의입니다. 국회의원이 되는 것도 엄중한 일이지만 사퇴의 결단도 엄중해야 합니다. 일단 입으로 사퇴하겠다고 했으면 이는 지켜야 마땅합니다.
분명 세 의원도 고뇌 끝에 내린 결단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고뇌의 진정성 나아가 거룩함을 증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정치적 책임의 문제입니다. 자신의 보좌관은 사퇴시키고 자신은 국회의장실 앞 바닥에서 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상황은 제게 진정성 있게 보이지 않습니다. 가장 가깝게 책임져야 할 자신의 보좌관은 바닷속에 빠트리고 자신은 구명조끼를 입고서 '날 익사시켜주세요' 하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나홀로 헌법기관이라고 했습니다. 대한민국의 국회의원-해머로 문을 부수며 대한민국 정치의 부끄러움을 세계만방에 떨쳤습니다. 이제 국회의원을 그만두겠다며 정작 사퇴서를 수리해달라고 국회의장실앞 바닥에서 농성하는 모습도 국제적인 망신꺼리입니다.
확실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본인에게 거취결정권이 있습니다. 사퇴라는 말은 함부로 꺼낼 일도 아닙니다. 또 정 사퇴할 마음이 없으면 지금이라도 농성장에서 일어나 이 추운 겨울날 실직의 불안함 속에 있을 보좌관들에게 전화하십시오.
'우리 다시 일해보자. 그게 답이다'라고 말입니다.
2009년 12월 2일
전여옥 올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