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백마늠름하게 주차장에 서있는 이번에 구입한 차량
송진숙
버릇이라면 버릇이랄 수 있는 것이, 운전하는 중에 못보던 차종의 차가 지나가거나 외제차 또는 특이한 차들이 보이면 바로 뇌에 신호가 전달된다. 궁금하다. 어떤 차종인지. 지나가는 차를 보면 이제 웬만큼은 알아볼 수 있다. 물론 기능이나 성능까지 모두 알 수는 없지만 최소한 관심목록에는 입력된다.
물론 모두 다 타보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다. 그냥 보는 재미가 있는데다 저절로 관심이 간다. 그 중에 하나, 타보고 싶은 차가 있었다. 고가의 차였다. K사의 대형차 '오OOO'였다. 디자인이 너무 맘에 들었다. 집식구들이 그 차만 지나가면 '엄마차 지나간다'고 할 정도였다. 굳이 한국에서 그런 차 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운전해보고 싶고, 타보고 싶었다.
어느날 '오OOO'에 대한 관심을 접었다. 그리고 소형차쪽에 관심을 두고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차를 유심히 관찰했다. 아이들이 물었다.
"엄마 왜 수준을 낮췄어요?""그 차는 갖고 싶기보다 운전해보고 싶었고, 승차감이 어떤지 궁금했을 뿐이야. 그런데 아무리 봐도 우리집 능력으로는 평생 그차를 살 수가 없을 것 같아서 관심을 끊었어." 딸이 말한다.
"엄마 내가 나중에 돈 많이 벌면 사줄게.""딸, 말만이라도 고맙다."
이렇게 작년 한 해 보내고 올해도 봄부터 고민을 해왔다. '차 한 대 살려면 돈이 수월찮은데 가진 현금도 없으면서 할부로 사서 감당할 수가 있을까'를 수없이 생각하는 동안 올해도 한해가 저물어간다.
아들한테 들어가던 학원비가 10월로 끝났다. 한 달에 100만원 이상 들어가던 학원비가 안들어가게 되어 생활비에 대한 부담이 좀 줄었다. 게다가 자동차 구입 혜택이 파격이었다. 10년 이상 탄 노후차에 대한 할인혜택과 취득세와 등록세 할인 혜택도 큰 편이었다.
'빚 지고 못산다'던 인생관, '오늘을 즐겁게'로 바꾸다옆자리 앉은 동료가 먼저 샀다. H사의 'I 30'이었다. 좋아 보였다. 자동차 구매의욕이 좀더 생겼다. 주변 사람들 얘기를 더 주의깊게 들었다. 자동차 대리점에 가서 견적도 뽑아봤다. 두군데 정도 뽑아보고 인터넷 검색도 해서 여러가지 정보를 수집했다. 처음엔 겁이 났다. 차사는데 드는 돈이 적은 돈이 아니었다. '남편의 동의 없이 이렇게 큰 돈을 써도 되나' 하는 생각에 적잖이 불안했지만 어차피 내가 갚아야 할 돈인데 걱정 말자고 했다.
요즘이 딱 적기일 것 같았다. 노후차도 12월까지만이라니 늦으면 그나마 혜택도 못받을 것 같았다. 어떤 차로 결정할까? 산다고 맘을 먹으니 관심이 온통 차에만 쏠렸다. 보이는 게 다 차였다. 구입 가능성 있는 모델을 압축하여 몇가지를 놓고 망설였다. S사의 차는 이미 주문이 밀려 있어 12월 안에 차를 인도받을 수가 없기 대문에 노후차 혜택을 받을 수가 없다 했다. H사의 요즘 잘 나가는 'YFOOO'는 주문이 밀려 있기도 하지만 지금 내 처지에선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1000만원 가까이 더 주어야 했다. 객기 부려 살 일이 아니었다. 깨끗이 포기했다.
H사의 '아OO'로 결정했다. 처음엔 계약금 10만원과 금융회사 수수료 및 탁송료 포함 62만원을 냈다. 300만원은 신용카드로 결제하고 나머지1000만원은 36개월 할부로 계산했다. 이자는 5.5%라고 했다. 한달 불입금이 30만2000원 정도였다. 두 아이 대학등록금에 생활비에 버거울 걸 알지만 과감하게 실행했다. 3년 동안 적금을 부어서 차를 살 땐 차값이 또 오를 것이었다. 그러나 차를 먼저 사고, 곗돈 붓듯이 3년을 내면 차는 내 것이 될 것이다.
계약을 하면서도 내심 불안했다. 여러 번에 걸쳐 남편에게 얘기를 했는데도 남편은 동의하는 기색이 없었다. 자기가 크게 보태줄 형편이 아니므로 좀더 두고 보자고만 했다. 내 입장에선 언제까지 남편의 동의를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기다리다가 물 건너 간 것이 어디 한 두번이던가? 계약을 해놓고는 며칠 동안 내색을 안했다. 언제 말을 꺼낼까 분위기만 보고 있었다. 11월 19일쯤 계약을 하고 차를 25일날 인수하기로 했는데, 말을 선뜻 꺼내기가 쉽지 않았다.
만류하던 남편 몰래 계약했지만...분위기를 보던 끝에 토요일 밤에 "나 차 계약했어"라고 했더니 남편의 안색이 달라졌다. 말은 "알아서 잘했어" 하면서도 그 날부터 각 방이었다. 이불 싸들고 마루로 나갔다.
차 색깔을 고를 때 남들은 은색으로 하는 게 어떠냐고 권했지만 은색이 땡기지 않았다. 15년 동안 은색만 탔기 때문이다. 청남색이 좋았지만 주변에서 극구 말렸다. 금방 싫증나기도 하고, 혹시나 중고로 팔 때에도 가격이 낮다고. '여러 사람 얘기를 들어서 나쁠 건 없겠지. 그럼 은색은 싫으니 흰색으로 하자' 결정했다. 차 나올 때까지 하루하루가 길게 느껴졌다.
그동안 운전했던 차는 내 의지보다는 상황에 의한 것이었다. 처음 산 차는 6년된 중고차 '액셀'이었고, 다음 차는 시어른이 사주신 경차 '아토즈'였다. 이번에는 내 의지로 처음 사는 차이기에 설렜다.
어쨌건 기다리던 차를 25일날 받았다. 드디어 차가 나왔다. 새 차는 좀 더 크기도 하고 기어도 좀 달랐다. 후진기어 넣는 법이 달랐다. 그동안 스틱으로만 운전해왔기에 새 차도 수동으로 샀다. 오토에 비해 139만원이 적었다. 고장도 적고 연비도 높다기에 망설이지 않고 수동을 선택했던 것이다.
하필이면 비가 조금씩 내려 아쉬운 감은 있었지만 하얀색 귀티 나는 모습은 이미 내 마음을 사로 잡았다. 차종이 달라져서 걱정스럽기도 했다. 물론 조심스럽게 운전을 하면서 감각을 익혀야 하겠지만 어쨌든 새차는 좋았다. ABS브레이크 장치에 조수석까지 에어백장착에, 차 내부계기판 부분도 파란색 블루톤으로 고급스러웠다. 고급승용차 탄 기분이다. 대리점에서 자동차를 인도해 주면서 해준 설명을 듣고 조심스럽게 시운전을 했다. 딸을 태우고.
오롯이 내 차, 봐도봐도 예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