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배출권 거래' 문제로 막말 논쟁을 벌인 전현직 야당 당수들을 보도한 호주 신문 웹사이트.
데일리텔레그래프
"국정 현안을 진지하게 논의하는 게 정치의 본질이지만, 정치인은 득표 가능성부터 먼저 계산하는 습관이 있다."호주의 저명한 정치평론가 로리 오크가 최근 '탄소배출권 거래(Emissions Trading Scheme, 이하 ETS)' 법안 통과 여부를 놓고 큰 혼란에 빠진 호주 정치계를 비판하면서 한 발언이다. 그러나 그게 어디 호주 정치계에만 국한되는 현상이겠는가.
세종시 계획안 수정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한국 정치인들도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득표 가능성을 계산하는 건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만 세종시와 연계된 지역구도에 초점을 맞추는 한국과는 달리, 호주에서는 환경정책과 맞물린 이념적 노선투쟁에 돌입한 형국이다.
언뜻 보기엔 환경문제와 이념적 갈등이 별개의 사안으로 보이지만, 거기에다 득표 가능성이라는 변수를 적용시키면 어렵지 않게 로리 오크의 비판에 동의하게 된다. 지지그룹의 이념적 성향에 따라 환경문제와 얽힌 이해관계가 극명하게 갈리기 때문이다.
탄소배출권 거래 법안은 '세금 폭탄'인가?7일,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에서 제15차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 총회가 개막됐다. 호주 노동당 정부는 이번 총회 이전에 ETS 법안의 의회 통과를 위해 야당과 끈질긴 협상을 벌여왔다.
그러나 친 기업 정책을 적극 지지하는 야당은 "ETS 법안이 '세금 폭탄'으로 변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강하게 반발했다. 그 결과 야당 의원 절반 정도는 법안의 폐지를 주장하고, 나머지는 수정안을 내놓고 노동당 정부와 협상을 벌이자는 쪽으로 갈렸다.
한편, 최근에 당권투쟁을 통해서 선출된 자유당 토니 애보트 신임 당수는 "탄소배출권 거래 법안은 1200억 호주 달러(약 120조 원)나 소요되는 엄청난 '세금 폭탄'이다. 가뜩이나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들에게 부담이 너무 크다"면서 법안 통과를 반대했다.
극우파(far right) 정치인으로 분류되는 애보트 당수는 취임연설을 통해 "보수정당인 자유당은 시장의 자유와 국가 이익을 우선으로 꼽는다. 그런데 ETS 법안은 호주의 가정과 기업에 감당하기 어려운 세금고지서를 발부하게 만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같은 자유당 소속이지만 중도우파(right-wing)에 속하는 의원들은 "세금 부담을 염려하는 건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호주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지켜야할 의무이고, 하나밖에 없는 지구를 건강한 상태로 후손들에게 물려줄 의무를 외면할 수 없다"면서 ETS 법안 지지를 천명했다.
정치적 스펙트럼이 다양한 호주 의회이렇듯 호주에서는 같은 당 소속이라고 해서 이념의 디테일까지 같은 건 아니다. 정치적 스펙트럼이 워낙 다양해서 구분이 어려울 때가 있다. 그러다보니 중도우파와 중도좌파(left-wing)를 한데 묶어서 중도파(center)로 분류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최근에 불거진 자유당 당권경쟁도 그런 이유로 발생했다. 노동당이 제출한 ETS 법안 통과 여부를 놓고 자유당 내의 중도우파와 극우파가 충돌한 것. 결국 극우파가 간발의 차이로 승리했지만, 그에 따른 후폭풍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쯤에서 호주 의회의 정치적 스펙트럼을 간략하게 소개해보면, 농민을 지지기반으로 삼는 국민당 소속 의원들과 자유당 소속 의원 일부가 극우파 그룹을 형성하고, 자유당 소속 중도우파와 노동당 소속 의원 대부분이 중도파로 분류된다.
거기에 2000년대 이후 제3정당으로 급성장한 녹색당이 극좌파(far left)로 자리매김 됐다. 물론 노동당 소속 의원들 상당수가 극좌파 성향을 지녔지만, 캐빈 러드 총리가 중도좌파에 속하기 때문에 별도의 목소리를 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